안녕하세요. 이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기까지 11년이 걸렸네요.
그 10년, 20대의 세월동안 가정에서 일어난 불행이 너무 크고 고통스러워서 다 외면하고 잊어버려야 살 수 있어서 그리 살았나 봅니다.30살이 된 지금에야 아주 조금씩 들춰보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 같은 제 위로 어른분들이 많은 이 곳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부모님은 옛날 시골 사람들이라 남성 위주 가부장적인 내력이 있었습니다. 부모를 장남이 모셔야했고 홀로 있던 남자의 어머니, 시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어릴 떄부터 함께 살았습니다. 할머니가 병이 들고 누워서만 생활하게 되자 몇 년동안 가정주부였던 어머니께서 병수발을 드셨습니다. 자식이 4명이나 되는데도 저희 어머니가요. 그렇게 사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아서 17살 때 어머니께 왜 당신이 수발을 드냐 얘기한 적이 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누나, 시누이인가요? 저에겐 고모되는 사람에게 못 한다는 말을 못해서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제게 대신 말 좀 해달라고 그러셨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아버지의 부재. 새벽에 돈까지 버셔야 했던 어머니는 잠도 못 자며 사시다가 폐암 4기 판정 받으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1년 후 가셨습니다. 사는 게 지옥같아서 폐에 병이 난 거지요.
그 때. 저 말을 들은 그 때. 저라도 나서서 어머니를 이 상황에서 구했어야 했는데.16,17,18살이었던 제게 그만한 힘은 없었나봅니다. 그 말을 듣고서도 저는 무심히 제 일상을 살 뿐이었으니까요. 그 때라도 제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어머니는 4기가 아닌 3기나 2기 정도에 발견해서 살릴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어머니의 기구한 인생,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저를 평생 아프게 합니다. 한이 됩니다.이미 저도 만성적 정신질환이 있어서 건강하지 못 합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사셨는데 딸인 제가 행복하다면 염치없는 죄같고 11년이 흘렀는데도 고통의 기억은 선명해지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