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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해피와 긴 작별 인사를 했다.

325km |2023.11.11 17:55
조회 22,527 |추천 249

해피가 오늘 새벽 두시 급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갔다.

해피를 만난 건 2016년 코 끝 시리던 2월이었다.
인천 유기견 보호소에 블랙탄 치와와를 입양하러 갔다가 그 강아지는 다른 사람에게 입양이 됐다고 남은 치와와가 한 마리 있긴 하다며 보여주던 보호소 직원을 통해 해피와 나는 처음 만났다.
좁은 뜬 장에 열 마리 남짓 엉키듯 운집되어 소형견들 사이에 뼈만 남은 앙상한 검붉은 강아지..
그냥 돌아가기엔 마음이 쓰여 보호소 청소와 배식 봉사를 하는데 소형견 사이에서도 순하고 착해서 사료 한 알 먹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구석만 찾던 너에게 되는대로 사료를 한주먹 쥐어 입 앞에 갖다 놓으니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며 얘는 정말 살고 싶은 의지가 있는 아이구나 싶었다.
해피의 첫인상은 한쪽 눈은 어쩌다 다친 건지 뿌옇게 굳어 말라 비틀어져 있고 얼굴은 눈물자국으로 온통 붉은색 얼룩이었다.
피부는 피부병으로 곳곳의 원형 탈모, 귀와 온몸이 불에 탄 것처럼 까맸다.
그리고 피골이 상접하여 목뼈에서부터 척추, 엉덩이뼈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 고장난 강아지..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강하게 나를 해피에게 이끌었다.
짠하고 안타까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설령 앞으로 해피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하더라도 남은 인생 따듯하고 배부른 안락한 경험을 선물하겠노라 다짐했다.
어떤 고생을 했어도 단단히 한듯한 수척한 몰골에 편하게 노후를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무작정 집으로 데려갔고 그 몰골을 본 엄마는 해피가 지옥에서 온 강아지 같다고 했다.
해피는 거의 삼일 가까이 죽은 듯이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잠만 잤다.
인천 보호소에서 데리고 왔으니 인순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엄마는 마음에 안 든다며 행복하게 살길 바라며 전세계에 널리고 널린 고유명사 같은 이름 “해피”로 짓자고 했다.
당시에 엄마는 해피가 너무 무섭게 생겨서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후, 병원에 가서 기본적인 검사를 해보니 심장 사상충 3기 말이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치료도 오래 걸릴 것이며 치료를 하다 못 버티면 하늘나라에 갈 수도 있다고 했다.
해피는 그 힘들다는 치료를 작은 1.5kg의 몸으로 담담하게 받고 마침내 1년 3개월만에 완쾌했다.
뭔지 모를 이물질에 박혀 뿌옇게 혼탁했던 눈은 시력도 거의 없고 관리도 힘들다며 편의성을 위해 병원에선 안구 적출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안 그래도 충분히 안쓰러운 해피였기에 해피의 어느 것도 쉽게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안과에서 적출이 아닌 최대한 눈을 살리는 수술도 하고 8년 동안 매일 안연고를 넣으며 그 어떤 강아지보다 예쁜 왕방울 눈으로 잘 지내왔다.
그 외엔 별다른 관리 없이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몸무게는 두 배인 3kg가 되었고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이 너무나도 착한 강아지로 천사처럼 새벽까지 예쁜 모습으로 곁에 있어준 내 소중한 강아지..
숨을 거두기 좀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간식도 먹고 밥도 먹고 잘 자고 했었는데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이별이라 마음이 혼란하다.

추운 계절에 나에게 와서 그런가, 따듯한 곳을 유난히 좋아했기에 지난주엔 곧 창고에서 해피 전용 히터를 꺼내 줘야겠다 생각했는데..
해피는 더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긴 여행을 떠난 걸까.
평소 건강 체질이라 함께 할 날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다견 가정이라 더 많이 보듬어주고 챙겨주며 함께 하지 못한 게 그저 아쉽다.
떠나기 직전 숨을 몰아쉬다 어느 순간 그 어떤 움직임도 멈춰버린 해피에게 엄마와 오빠는 울부짖으며 어쩔 줄 몰라 연신 이름만 불렀다.
나는 연거푸 고개를 맥없이 떨구는 해피를 안은 채 신호를 무시해가는 운전을 하며 공연히 병원에 가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풀려버린 동공이나 어느새 핏기를 잃고 변해버린 혓바닥 색깔보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해피의 따듯한 온기를 믿고 싶었던 내 마음 때문이었겠지.
해피를 의사 선생님께 넘겨주고 진료실 문이 닫히자 그제야 뒤늦은 눈물이 터져 나왔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의사선생님께서 도로 해피를 안고 나오셨다.
병원에선 해피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직전 몰아쉬는 호흡 영상을 보시더니 아마 숨이 멎기 전에 왔어도 힘들었을 거라며 나이는 잘 몰라도 보아하니 노견이고 심장이 안 좋아서 하늘나라로 간 것 같다고 했다.
슬퍼하는 나를 보며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지금 당장 갈 수 있는 장례업체를 소개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찬찬히 해피를 보니 그저 곤히 자고 있는듯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수면제를 먹고 아침까지 곁에 두고 몇 시간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심호흡을 한 뒤, 옆으로 시선을 옮겨 해피를 보았다.
이제는 온기 없이 차갑게 굳은 해피를 담요로 감싸고 발꼬순내도 더 맡고, 통통한 배, 살짝 눌린 새가슴, 무슨 수로 관리하는 건지 타고난 건지 신기할 만큼 아기 발바닥보다 더 보드라운 발바닥도 여러 번 반복해서 만져보며 눈에 더 담고 나서야 마침내 보내줄 마음의 준비가 된 듯했다.
해피는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어떤 트라우마가 너무나 큰지 절대 사람에게 쉽게 곁을 주지 않아 오늘처럼 이렇게 마음껏 만져보고 가까이해본 경험이 나도 몇 번 없다.
나는 해피의 찹찹찹찹 물 마시는 소리와 사료를 쌀 알갱이같은 작은 이빨로 오드득거리며 씹는 소리를 듣고 보는것을 좋아했다.
또 수수하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은근 까다로운 노블한 입맛을 가진 해피를 사랑했다.
해피는 대부분의 시간을 햇살을 느끼며 나른하게 누워 보냈고 일어나 있을 때엔 음식 냄새를 맡으며 요리하는 사람이 있는 주방을 배회했다.
평소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 마냥 조용한 해피는 얼마나 얌전하고 착했으면 한 마리도 키우기 힘들다는 강아지를 나는 해피 같은 개라면 열 마리도 껌으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피는 맛있는 냄새가 나거나 산책을 나가 기분이 좋을 때면 몸통에 비해 짧은 다리로 연신 공처럼 통통 튀며 발을 굴렸다.
반면에 일상적으로 조심조심 걷는 세상 여성스럽던 발걸음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그 걸음을 참 좋아했다
그 모습들은 해피가 나에게 주는 소소한 행복이자 기쁨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냥 나는 해피의 모든 순간과 모습을 전부 사랑했고 아꼈던 것 같다.
내가 귀가할 때면 이젠 귀도 잘 안 들려서 내가 왔는 지 몰라 항상 느긋하게 누워있던 해피가, 목청 껏 부르면 멀찍이 서서 한시 방향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멀뚱한 표정으로 궁금해하던 그 모습을 더 이상 못 본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아프지 않게 이런저런 고생 안 하고 정말 효녀처럼 하늘나라에 가준 것도 고맙다.

해피의 장례를 치러주러 경기도 광주로 가는 길
한창의 단풍길과 햇살에 반짝이는 북한강을 지나쳐
흔하디흔한 이름 해피엔딩이라는 반려견 장례업체에서 잠시 잠든 것 같은 해피를 최대한 담백하게 보내주고 왔다.
마지막까지 해피는 나에게 예쁜 풍경을 선물해주고 갔다.
업체에서 해피를 화장하기 전 서류 작성하는 데 나이를 적는 칸이 있었다.
다섯마리의 유기견들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종종 맞닥트리면 항상 머뭇거리게 되는 순간..
동물 병원이었다면 실없는 말을 주절대며 잘 모르겠다고 그럴듯하게 둘러댔겠지만 이제와 사실상 의미 없는 숫자일 터니.. 순간, 나도 모르게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해피의 정확한 나이는 모른다.
다만 내가 키운 시간은 8년이었으니 8살이라 적었다
‘만약에 -했었으면 달라졌을까.’라는 답도 없고 끝도 없는 생각은 그만 접어두고
나는 해피가 자신의 수명대로 살고 갔으리라 믿는다.

작은 유골함을 열어보니 말 그대로 한 줌 남짓의 해피가 있었다.
나의 반려견과의 네 번째 이별이었다.









추천수249
반대수13
베플봄꽃|2023.11.11 21:38
담담하게 써 내려간 글에 눈물이 납니다. 해피는 많이 행복했을거예요. 마음 잘 추스리시고 꿈속에 해피가 와주면 많이 안아 주세요 해피야 그 곳에서도 행복하렴.
베플788|2023.11.14 17:01
애 죽었는데 뽀뽀하는 포즈 취하고 사진찍는거 개 소름
베플ㅇㅇ|2023.11.14 17:18
해피야 아름다운 무지개 다리 너머에서 쉬고있어.. 가족들 곁에서 만큼은 행복한 견생이었길빌어.
베플얼랑이|2023.11.14 17:00
해피가 무지개 다리 건너편에서도 나중에 나중에 주인님 만날때까지 친구들이랑 잘 놀고 있을겁니다. 거기서 작년에 떠난 우리 얼랑이도 만났으면 좋겠어요 ^^
베플ㅇㅇ|2023.11.14 17:21
아 ㅠㅠ 일하다가 괜히읽엇다 눈물난다 진짜....흐엉 해피야 ~ 조심히가렴 이번생은 진짜좋은주인품에서 가서 다행이다 ! 나중에 꼭 주인이랑 다시만나고 좋앗던 기억만 가지고 가고 나빳던기억은 훌훌털어버리고 가거라 ..~ 잘가 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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