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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되고 가장 서러웠던 것들의 이야기(슬픔 주의)

ㅇㅇ |2024.03.24 00:43
조회 5,551 |추천 16
편하게 반말로 할게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여름방학이었을 때 내 키는 125cm 쯤 됬었는데 그 때는 내 할머니가 나보다 35cm는 더 크셨어
할머니 턱 끝에도 못 닿았고 나보다 훨씬 큰 할머니가 늘 부러웠할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사시던 시골 집 화장실에는 높이 150cm의 작은 샤워기가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그 샤워기보다 작았고 할머니는 그 샤워기보다 10cm는 더 크셨어
그리고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오랜만에 할머니랑 같이 샤워를 하는데 할머니 키가 샤워기랑 똑같은 거야
할머니 허리는 많이 굽으셨었고 나는 키가 커서 165cm가 되었었어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사업으로 성공하셨었는데 그 돈으로 온갖 좋은 명품 옷 식기 다 사고 다니시던 할머니는 ‘할머니 되서 이게 무슨 소용이냐’ 며 내 도움을 받아 중고거래로 팔기 시작하셨어
내 눈에는 무얼 걸치시고 무얼 쓰던 언제나 우아하고 당당한 할머니인데 말로는 아니라 하시지만 거울을 보면서 흰 머리와 주름을 천천히 만지시는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고
나는 아직도 ‘우리 손녀 키 많이 컸네~ 나중에는 우리 손녀가 할머니 업고 다녀야 겠다’ 라고 하셨던 우리 할머니를 못 잊겠어
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암으로 돌아가셨거든


19살, 한창 수능 공부할 때였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혼자 남게된 내 할아버지는 내가 대학 어디를 가든 대학 등록금 전액을 납부해주시겠다 하셨어
처음엔 거절했지만 ‘내가 다 늙어서 네 대학 등록금 아니면 돈 어디다 쓰겠니 우리 손녀 대학 가는 거 보고 시집 가는 것도 보고 죽고 싶다’ 이러시길래 나도 해보자 한 번 이런 느낌으로 죽어라 공부했어
나름 할아버지께서 돈까지 주시는데 대학 못 가면 창피하잖아
몇 달 뒤 수능을 봤고 남들 흔히 말하는 인서울 4년제에 적당히 들어가 할아버지께서 등록금 얘기를 꺼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등록금 납부날이 되었고 할아버지께서 연락이 없으신거야
그래서 할아버지 집으로 찾아갔지
안 주셔도 상관은 없었고, 사실 등록금은 핑계였어
그냥 그 때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
수능 잘 본 손녀딸한테 연락 한 번 없으셨으니까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 서울 집에 갔는데 할아버지가 눈을 감고 계셨어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잘 있으라고 인사 한 마디 없이…
그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 비슷한 걸로 남아있어

있을 때 더 잘해드릴 걸
시골 가서 놀기만 하지 말걸
드라마고 뭐고 할머니랑 요리하고 할아버지랑 나무로 가구 만들걸
후회돼
눈 감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꿈에 나와서 내 이름을 힘없게 부르시는데
꿈에라도 나오시는 게 어디야 라면서 나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도 이제 지쳐
딱 한번만 내가 다시 할머니 무릎에 누워 잘 수 있으면 좋겠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추천수16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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