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새해되어 서른 넘었구요..
그분은 저보다 한살 많더군요.
아는 후배가 지가 아는 후배를 통해 소개팅을 주선한지라 후배도 상대를 잘모르고
에잇, 정초니까 함 해보자하고 기초정보도 없이 만나러 나갔습니다.
제가 길을 몰라 늦었는데 매너 좋으시게 웃어주시고 간만에 구두신었다가 비틀했는데
자기 잡으라며 친절을 베푸시는데 전 부끄러워 벽잡고 걸었더랬습니다.
어쨌거나 반주한잔 하며 얘기 나누는데
사실 처음 보면 뻘쭘한데 취미도 같고 이것저것 취향도 같고 즐거웠어요.
그분도 제가 담배 싫어한다니 담배갑 아예 가방에 넣어버리시궁
좋아하는 남자 조건 물어보며 잘보여야겠다 하시더군요.
솔직히... 그분이 제게 강한 호감 표시하시는 걸로 알아들었죠.
(뭐, 그런거 있잖아요. 제가 뭔말만 하면 앗, 나두나두 맞장구치고
몸을 제쪽으로 거의 숙이고 음식도 안드실정도로 완전 집중모드 때려주시고..)
근데 좋아하는 노래 얘기 많이했더니 노래방 가고싶다며 추억의 노래를 부르자더군요.
초면에 무슨 노래방이냐 했는데 적극 원하시고 저도 에라 모르겠다.. 올초에 잘하면
솔로 탈출하려나보다하고 갔습죠. 그때도 화기애애~
살짝 스킨쉽 시도하시는게 (슥 어깨에 손올리기, 허리 슬쩍 감기 등) 좀 걸렸지만
뭐 싸대귀를 날릴정도도 아니고 제가 슬쩍 슬쩍 피했죠..
그리고는 아까 안주를 넘 못드셔서 배고프시다며 집에 조금만 늦게가달라합디다.
사실 서른 넘어도 울집은 늦게 들어오는거 꺼려하셔서 엄마 아빠한테 사정해서
"늙은 딸 시집 좀 가보자고.. ㅠ.ㅠ" 1시간만 더 있다가 술 절대 안먹고 귀가하기로 했습죠.
근데 이분 술집에서 음식을 먹여주시는겁니다.
전 원래도 사람많은데서 애정표현하는거 싫어해서 안받아먹었더니 기다립니다.
그래, 늙은게 부끄러운척 하면 추해보일수도 있다.
적당히 호감있다는 표시를 이제 나도 해줘야한다.. 선배들의 조언을 되새기며
저도 난생 처음 처음 본 사람에게 음식 받아먹고 한 젓가락 권해드렸습니다.
글고 그분도 저도 살짝 취했습죠.
이때부터 이분 반말 작렬.
물론 듣기좋은 말들이죠 "이쁘다, 귀엽다. 나이얘기 안들었음 훨 어리게 봤을거다"
"너무 귀엽다" "좀더 가까이 앉아라" 의자를 아예 쭈욱 당기셔서 옆에 앉혀놓고
볼 꼬집고.. 연신 웃으면서 행복하다 하시더군요.
남자야 원래 첨에는 간이라도 빼줄듯 하니 그런말 믿지는 않지만 기분은 좋습디다.
헌데 이분 내가 급히 서두르며 집에 가야한다하자 따라나오시더니 길 한복판에서
꽉 안아버리는겁니다. 허걱. 쿨한척 해야하나 화를 내야하나..멍한 틈에 뽀뽀까지...
완전 띵~
이게.. 참 문제가...나이가 있다보니 "어머, 왜이러세요"하기도 뭐하고
한대 때리자니 불쾌하지만 싫은게아니고.. 다만 이게 한 너댓번 만났으면 모를까..
너무 성급하신게 이분 나를 쉽게 봤나 머릿속이 복잡복잡...
물론 저도 이나이에 남친 없던것도 아니고 결혼 생각할만큼 진지한 연애도 했구요.
근데 전 좀 구식이라 절차와 순서를 따지는 편이라..
사실 그걸 버려야 연애가 쉽다는걸 알면서...
(누가 요즘에 우리 지금부터 사귀자 요이땅~ 하지도 않고 그런데 전 자꾸 확실한
내 포지션을 그가 정해주기전에는 너무 칼같이 어색하게 대해 첫 호감이 연애로 발전이
안되는 단점이 있었거든요. 심지어 니가 내 여친이면 좋겠지만 내 여친이 되기까지가
너무 피곤하다는 얘기를 듣고나서는 고치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연인되는 그런..)
순간, 제가 망설이는걸 알았는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근데 나 싫어?" "싫어?" 묻더군요.
싫고 좋고 문제가 아니라 좀 불쾌하다했더니 사과합디다.
그러더니 덥석 손 잡으시며 집에 안들어갔으면 좋겠답니다. 뭥미..
안되겠다 싶어서 얼른 택시를 잡으러 대로변으로 걷는데..
그가 뛰어오더니 저를 슈~욱 들어가지고는 건물에 델꼬 들어갔는데 비디오방입니다.
(전 제가 들린다는 사실에 깜놀. 요즘 살이 쬠 쪄서 고민중이었음.)
늦었다고 혼난다고 해도 자기 싫지않으면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같이 있고 싶다는데..
저 사실 비디오방 남친하고도 안갔습니다.
(제가 성격이 차라리 펜션 빌려 여행가면 갔지, MT는 안가는 주의. ㅠ.ㅠ)
무조건 싫다니까 자기는 같이 더 있고싶을뿐인데 너무한다고 투정을..
나 이런 남자 유형은 첨이라 안절부절.. 서른넘어 비디오방 복도에서 실갱이하는게 우스워
결국 딱 영화 한편만 더 보기로 하고.
엄마가 설마 때리실까? 아냐, 빨리 시집가라고 난리인데 봐주지 않을까..
아냐.. 아빠가 깨시면 진짜 죽지않을까...
그분은 진지하게 영화 고르시고 전 불안 초조했습죠.
제가 그분 맘에 들었나봐요. 지금 생각함. 저 원래 안그러는데...
여튼 영화 보고있는데 갑자기 안경 벗기시더니 키스해달랍디다.
집에 간다고 일어섰더니 자긴 나보러 왔는데 제가 영화만 본다며 자기 좀 보랍니다.
보면 부끄럽지 뭘 어떡합니까? 이 나이에 영화보는게 목적이 아니라 같이 있고 싶다고
첨부터 말했는데 나야말로 여길 왜 따라들어온건가 자책하며 그냥 집에 가자고
나가려니 미안하다 안그런다 조금만 더 같이 있자.. 쉽게 봐서 그런거 아니다.
근데 진짜 애가 탄다며 저보고 오히려 여우라더군요. 씁.
그러더니 "넌 언제쯤 나랑 자줄래?" 묻더군요. 귀 의심. 뭐 이런 쓰레기가..싶다가
남자들이 젤 싫은 여자가 줄듯 말듯 안주는 여자라더라.. 라는 말이 떠오르며
여길 따라온 내 행동이 문제가 있다.. 플러스 이 남자 진지하게 결혼이나 그외의 일을
생각하면 첫만남에서 이럴수 있나 싶어 과감히 나왔습니다. 뒤쫓아 나오더군요.
그분 어느새 달려나와 먼저 택시 잡아주시며 그런거 아니였다고 택시아저씨께
그새 한번 듣고 외운 울 집 주소 불러주며 잘 부탁한답디다.
쿡~ 웃음이 나오는데.. 정말 원래 쿨한 성격이신거니..뭐니..상태로 귀가.
엄마한테 등짝 두대맞고 그분과 헤어지고 학교앞이라 선배 만나서 술 더한거라고
거짓말로(엄마, 아빠 미안) 안심시켜드리고 씻고 누었죠.
귀신에 홀린거 같더군요. 잘들어갔냐 문자도 전화도 없길래 발정난 개였는데
내가 미쳤었나보다.. 늙으니 노안이 됐나보다.. 하면서 잠들었는데
아침에 깍듯한 존댓말로 "잘들어가셨어요? 많이 야단 맞으셨죠? 죄송해요~
오늘 주일인데 푸욱 잘 쉬세요" 문자 오더라구요.
너무 사람을 매도했나.. 싶어지고 필요없는 이해심.. (오랫만에 한 소개팅 분위기 좋고
저쪽도 나한테 호감있는것 같고 술도 적당히 취했고 아~ 땡긴다..할수도 있잖아?라는)
전 그냥 편하게 답 보냈죠 오빠도 잘 쉬시라구.. 잘 들어갔냐고 퍽도 일찍 물어보신다고..
그랬더니 바로 반말 작렬 "미안~ 짐 인났어. 해장 잘해. 난 속풀었더니 이제 살겠다"
제가 "오~ 너무 급 반말모드셔~ 잘쉬어요"했습죠.
그러고는 아직 연락 없습니다.
제가 보면 이런 경우는 없었지만 소개팅 당시 대놓고 호감 보이신 분들 대부분이
매일 문자 보내셨거든요. "점심 잘 먹었냐, 오늘 뭐했냐 등등"
바쁜 월요일이고 고작 하루연락 안온거지만 전 전화기 자꾸 확인합니다.
왠지 연락이 기다려져요. 미쳤나봐요. 흑...
암만봐도 신뢰도 100% 떨어지는데...
근데 진짜 먼저 연락 못하겠는거 있죠..
밀당이 아니구요.. 꼭 제가 그날 비디오방 계단에서 뿌리치고 집에 갔어야 하는거 아닌가
연락은 예의상이었는데 쉬운 여자처럼 보일가봐 겁나요. 흑.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