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1인데 요즘 너무 우울함.
딱히 야망이나 인생의 목표도 없고 돈을 많이 벌고 싶지도 않음.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은 그냥 평화롭게 살면서 가끔가다 사람들 만나고 취미생활 하는 거임. 결혼은 하게 된다면 할거지만 안 되는 거 억지로 할 생각은 없음. 되고 싶거나 하고 싶은 건 딱히 없는데 굳이 따지자면 심리학이나 과학 관련 학과 전공하고 싶음.
근데 부모님은 내가 의대를 진학하기를 바라심. 지금 내신이 1.3 정도인데 의대 가기에는 좀 낮고 지방 일반고인데다가 아직 1학년이라 여기서 떨어지면 더 떨어지지 높아질 것 같지는 않아서 의대는 못 갈 것 같음. 오히려 주위에 의대 포함 대학 간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인서울만 해도 완전 땡큐일 것 같음. 그런데 부모님께서 자꾸 의대를 가라고 하시니까 되지도 않는 꿈을 꾸는 것 같고, 생기부에 의학이나 생명 관련 내용 적을 때마다 이게 맞나 싶고, 학원 선생님들한테 의대 가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쌤들이 속으로는 개나 소나 의대 간다고 하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됨.
엄마가 맨날 악착같이 치열하게 이 악물고 치밀하게 죽을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 밥 먹듯이 하시는데 ㄹㅇ 들을 때마다 진절머리나고 ptsd 올 것 같음. 진짜 악착같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울고 싶어짐. 걍 그 단어만 나오면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음. 내가 덜렁거리고 허술한 스타일인데 나를 겨냥하는 단어 같아서 더욱 그런 것 같음. 또 내가 애들 좋아한다고 하니까 너는 소아과 의사 하면 잘할 것 같다는 둥, 유퀴즈 얘기 하면 최근에 티비에서 정신과 의사가 나왔는데 엄청 멋있었다는 둥 모든 대화가 다 이쪽으로 직결되는데 무언의 압박 같고 괜히 나 떠보는 것 같아서 미칠 것 같고 숨이 턱턱 막힘. 요즘 엄마랑 너무 대화하기 싫은데 사실 엄마는 나한테 잘못한 게 없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데 그 자체가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받음.
엄마가 성적 안 나오는 과목마다 전부 학원 과외 바꾸시거나 새로 붙이시는데, 내가 원래 정이 많은 스타일이라 학원이나 과외 바꿀 때마다 스트레스 엄청 받음. 특히 학원 선생님들한테도 정 엄청 주는 스타일이라 엄마가 이 쌤은 못 가르치시는 것 같다, 이런 점이 문제다 이런 말을 하시는 걸 듣는 것조차 너무 힘듦. 올해에만 수학학원 3번은 바꿨는데 바꾸는 게 머리로는 낫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안 따라줘서 너무 힘들었음. 게다가 중간 때 사회 망쳐서 사회 학원 다니기로 했는데, 이제 전 과목 학원 다니게 생겼음.
솔직히 다니는 것 자체는 좀 힘들지만 참을 만함. 근데 드는 비용 생각하면 걍 안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듦. 사교육도 공부 잘하는 애들이 백 퍼센트 활용해야 가치가 난 그렇지 못한 것 같고 그리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음. 근데 남들은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걸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셔서 다니는 건데 이러는 것 보면 복에 겨운 것 같고 걍 다 핑계인 것 같아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우울해짐. 요즘 이 생각 하루에 몇 번씩은 하는 것 같은데….
따지고보면 내가 공부를 손에 놓지 않는 이유는 걍 주위 사람들한테 멍청한 사람으로 기억되기 싫어서임. 동기조차 남을 의식하고 지극히 수동적인데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애들이랑 장기적으로 상대가 되겠음?
근데 결국 현실은 의치한약수 졸업하고 전문직인 사람들이 여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음. 결국, 내가 심리학이나 과학 관련 학과 전공하고 싶다고 하는 건 걍 현실이랑 동떨어진 얘기인거임. 요즘 뉴스에 청년 실업 문제랑 캥거루족 얘기 엄청 나오는 거 보면 나는 죽어도 저렇게 되기 싫다는 생각이 듦. 근데 결국 그렇게 되지 않는 방법은 의치한약수 졸업해서 전문직 되는 거고,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 날 위해서 하는 소리인 거임. 날 이렇게 진심으로 신경 써주고 지원해주고 충고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혼자 쓸데없이 우울해하는 거 보면 걍 사람 자체가 미성숙하고 ㄹㅇ 복에 겨웠다는 말이 딱 맞음.
근데 또 내가 의대를 가지 않거나 가려는 노력조차 안하면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 같음. 지난 학기 생기부를 의학으로 밀어버렸는데 이제 와서 가기 싫다 하면 걍 아직도 진로 못 결정한 전교에 몇 안 되는 학생 중 한 명이 되어버리는 거잖음.
이제 와서 보면 의대를 가고 못 가고의 문제가 아님. 내가 하는 꼴 보면 의대는 몇수를 해도 못 갈 것 같음. 그냥 공부할 기본적인 자세가 안 되어 있는데 거기서 뭘 더 하려고 하니까, 한마디로 나 스스로도 이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걸 아니까 자괴감 들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거임. 또 이상이 쓸데없이 높으니까 현실 직시하고 더 괴로워하는거임.
근데 주위만 봐도 나보다 열심히 하는 애들이 널렸고 내가 이런 글 씨부리고 있는 동안 대치동 애들은 학원 뺑뺑이 돌고 있을 거임. 별로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혼자 자의식 과잉에다 열등감에 찌들어서 별것도 아닌 걸로 스트레스받음. 진짜 요즘 주위 사람들 말 한 마디 한 마디 과대해석하고 남 ㅈㄴ 의식하는데, 나 스스로도 내가 예민해졌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 이유가 별것도 아니니까 걍 결론은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한거임.
엄마가 윈터스쿨 신청하래서 했는데 처음에는 가기 싫었다가 요즘에는 그냥 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함. 기계적으로 공부만 하면 이런 쓰잘데기없는 생각도 안 하게 될 것 같고 내 학원비랑 식비랑 생활비 전부 합하면 윈터스쿨 등록 비용 정도 나올 것 같음. 어차피 둘 다 똑같이 등골 빨아먹는 건데 집에서 서로 힘들게 할 바에는 걍 떨어져 있는 게 나을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