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지방에서 작은 건설업을 하고 있는 남자야.
회사에서 혼자서 업무보다가 마음이 허해서 끄적여 보려고해.
벌써 2년전 일이야. 나는 결혼을 했었고, 지금은 이혼을했어.
무슨일이 있었냐구?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쓰레기 짓을 한 것 같아.
2년전 나는 유부남이었고, 사업도 꽤나 잘 나가는 상태였어.
20대 초반부터 사업을 했었고, 군대를 다녀와 코로나가 터지면서
사업이 망했고, 제법 규모있는 건설회사에 취직을 했었지.
내가 원래 건설업 전공을 했었거든. 나에게 이 길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준
단 한사람. 내 아내였어. 정말 에쁜 사람이었지. 착하고, 순수하고, 나밖에 모르고.
우리는 20대 초반에 대학에서 만나 끌리듯 사랑을 하게 됬어. 당시에 나는 양아치 기질이
남아있었고, 그녀는 그런 나를 곁에서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었지.
우리는 동갑이었어. 하지만 집사람은 빠른년생으로 나보다 한 학년 높은 상황이었어.
당시 20대 초반의 나는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집에 형편이 어려워져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어.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던 나를 그녀는 내 곁에서 끝까지 지켜주었고,
나역시도 그런 그녀를 죽는날까지 지켜주리라 다짐을 하며 살아왔지.
20대 중반 어느날 나는 군대를 계속 미루며 사업을 했었지만, 더이상 미룰 수 없게되었어.
당시의 나는 20대 중반 꽃다운 나이의 여자친구를 홀로 두는게 너무나 마음이 아팠던 걸까?
군대 입대 하루 전날, 내 차 안에서 그녀에게 헤어짐을 통보했어. 그리고 다음날 군대에 입대를
했어. 그녀에게는 군대에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꿈이 있어 멕시코에 사업을 하러 간다고
말하고 돌아 오지 않을테니, 기다리지 말아달라고 했지. 그녀는 차 안에서 울었고,
나는 아무말도 없이 차를 돌려 그녀를 집앞에 내려주었어. 그렇게 입대를 하고, 훈련소
수료식날 어머니와 그녀가 함께 수료식에 왔어.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나더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헤어지가고 했는데, 그런 그녀를 다시보니 무너지는 듯 했어.
내가 조금 보수적인면이 강한 사람이라, 어려서부터도 절대 울면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
비슷한게 있었어서,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지.
그녀는 나에게 활짝 웃어주었고,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
나는 자대배치를 받아 서울로 가게되었고, 그런 나를 그녀는 정말 자주도 보러 와주었어.
그즈음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여 작은 회사에 취직하였고, 휴일이나 특별한날
나를 보러 면회를 와주었어. 그렇게 군복무를 마치고, 나는 이전에 하던 사업을 다시 시작하며,
그녀는 그녀대로 조금도 규모가 있는 회사로 이직을 하게되었어. 그렇게 10년....
이라는 세월을 함께 하던어느날 갑작스럽게 코로나가 시작되었지.
그녀의 업계는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는 업종이었고, 나 또한 코로나로인해 사업의 유지가
힘들어 진 상황이었지. 그렇게 둘이서 시간이 남아돌아 함께하는 시간은 더욱 많아졌고,
나는 결국 사업을 접게됬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의 상태에서 나는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고작 100만원짜리 다이아반지 뿐이었지만 그녀는 행복한 듯 울음을 터트리며
결혼을 받아들여줬어. 30대 초반의 백수를 뭘보고 결혼을 해주었을까..
그렇게 순식간에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는 함께 살게되었어. 그녀는 나에게
나의 대학전공인 건설업을 추천해 주었고, 나또한 그런쪽으로 흥미가 많았던 상태여서
이쪽 업계로 진입하게되었지. 그렇게 작은 건설회사에 입사를했고, 마치 물만난 물고기마냥
나는 승승장구 하게 되었어. 입사 1년만에 대규모 프로젝트와 다수의 계약건을 진행시키며,
6개월 실적이 다른사람들 1년실적보다 더욱 높은 상황까지 가게되었어.
회사의 규모가 대기업은 아니기에, 나같은 초짜에게도 많은 기회가 왔고 나는 그 기회를
사업을 하면서 익힌 스킬로 잘 캐치하여 진행을 시킨거였지.
하지만 일이 잘되면 잘되는 만큼 고객 혹은 현장팀과의 술자리가 잦아졌고, 집에 못들어가는
날도 많아졌지. 그런 그녀는 아무말 없이 나를 잘 내조해주었어.
그렇게만 살았다면, 지금쯤 내 인생이 어땠을까. 대략 2년전.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들과 마음을 모아 작은 나만의 건설업체를 하나 차리게되었어.
일거리는 문제가 아니었지. 영업을해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자신이 그당시의 나에게는 있었어.
역시나 일은 항상 밀릴만큼 많았고, 벌리는 돈의 단위가 달리지기 시작했어.
한달에 못하면 1000만원부터 정말 바쁘면 2000~3000도 가능할 정도였지.
옛말이 틀린게 없더라. 남자가 돈이 있으면 바람을 핀다는말.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멍청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
무료한 일상, 남아도는 돈... 심심함... 자극을 갈망하게 되었어.
20대 초반부터 한여자만을 사랑해왔고, 13년을 한 여자만 보아왔어.
20대때는 집안사정으로, 30대때는 가장의 책임으로.. 너무 지쳐있었던 걸지도 몰라..
사업하는 사람들은 알거야. 사업이 얼마나 힘든지..
남밑에서 일하잖아? 남들쉴때 다쉬고, 남들 놀때 다놀고..
경우에따라 다르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1년에 쉬는 날이라고는 2~3일정도 였고
주말도 없이 일하며 13년을 살아왔었어.
이제 사업이 궤도에 올라오기 직전이었고, 무언가 긴장의 끈이 탁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었어.
그러다가 한 여자를 알게 되었어. 젊고 예쁜 여자였고, 남자로써 끌리는 사람이었어.
나는 그 여자를 보기위해, 몇시간이고 밖에서 기다리며 아내에게는 사업을 핑계로
집에 들어가지않는 날이 많아졌어. 맞아. 외도를 한거야.
지금의 내가 그당시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지만,
그 당시의 나는 객관적, 이성적 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 여자와 6개월 정도 만나게 되었고, 그냥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
외박은 잦아졌고, 아내는 그런 나를 걱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왔지..
그때까지도 내가 외도를 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
정말 착한 사람이지. 그런 사람을 나는 바보로 만들어버렸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어. 나는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하였고, 외도사실을 밝히지는 않았어.
그녀는 나에게 3개월만 서로 노력해보자고 권유를 해주었어..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을
하고, 외도상대에게 이별을 요구했어. 하지만 당연히 조용히 헤어져줄리는 없고,
아내는 나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어....
아... 이제 일하러 가야겠다... 그냥 이틀을 밤새며 작업을 하다가... 너무 무료해서 몇글자
끄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