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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스쿨 출신 가희, 위기 고백 “‘노장돌’→‘발리댁’으로..정말 막막하더라”(‘세바시’)

쓰니 |2025.01.15 18:15
조회 41 |추천 0

 

‘세바시 강연’ 유튜브 캡처

[헤럴드POP=박서현기자]애프터스쿨 출신 가희가 댄스아카데미를 오픈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15일 유튜브 채널 ‘세바시 강연’에는 ‘애프터스쿨 가희, 완벽주의 아이돌이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된 삶의 진리’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공개된 영상 속 가희는 “저를 애프터스쿨의 리더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시다. 센언니, 군기반장, 모든 여자아이돌 중 제가 최상위권에 센캐릭터로 자리잡고 있다. 그때는 무조건 잘해내야한다는 부담감과 책임감에 쫓기면서 지냈다. 그때 별명이 ‘노장돌’이었다. 제가 데뷔하기엔 꽤 늦은 나이었다. 지금으로선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나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연예계 데뷔는 춤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됐다. 저희 아버지가 춤추는 것을 반대했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잡으러 오셔서 제가 ‘화장실 다녀올게요’ 하고 창문으로 도망쳤었다. 그대로 가출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해서 DJ DOC, 보아, 렉시, 지누션 등 당대 최고의 선배분들 무대에 있었다. 댄스 트레이너도 했어서 당시 베테랑으로 인정을 받았었다. 그런 저에게 아이돌 데뷔 기회가 찾아왔다. 춤을 좋아하게 된 것도 가수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 꿈을 계속 실패했기 때무네 머물고 있었던 거였다. 8년이라는 시간 후 저에게 기회가 왔고 연습생 3년 후 데뷔했다”고 설명했다.

가희는 “그러다가 멤버들과 헤어지는 일이 생겼다. 애프터스쿨 졸업을 하고 홀로서기를 했는데 그 후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세월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별명 ‘발리댁’이 생겼다. 결혼과 두 번의 출산 이후 발리로 삶의 터전이 바꼈다. 아이들을 낳은 것은 축복이고 행복인 것은 당연했다. 근데 치열하게 일했기 때문에 결혼은 저에게 회복이고 휴식이고 안정이었다. 평소에 제가 서핑을 좋아했다. 막상 발리로 이사가서 사니까 처음엔 선물 같은 시간들이었는데 살다보니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왜 여깄지. 애만 보다가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겠구나’ 싶더라”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정말 막막하더라.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늙어가는 구나’, ‘내가 아니라 가정의 엄마로 사는구나’ 했다. 그러다 작은 방에 있는데 혼자 춤을 췄다. 그때 췄던 춤을 기록해서 갖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몸을 주체 못하고 내뿜더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춤을 추지 않아서 답답했구나, 그래서 힘들었구나, 박가희는 춤을 춰야 살 수 있구나’ 깨달았다. 그때 경험으로 저만의 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근데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더라. 그래서 연습실을 만들었다. 거기서 지인의 아이들을 가르치며 에너지를 얻었다. 그렇게 댄스 아카데미의 꿈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돌아온지 1년 3개월이 됐다는 가희는 “이번에 돌아올 때는 춤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댄스 아카데미를 오픈하게 됐다”며 “남편이 없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다. 든든한 조력자이자 아이들을 잘 케어해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있기에 마음 놓고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자리를 빌려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감사함을 전해 눈길을 끌었다.

박서현 pop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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