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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의 천주교가 불교의 "오직 자기수양에만 불과한가."

까니 |2025.02.24 19:10
조회 61 |추천 0
         



사람들은 종교라고 하면,
“자기수양”을 많이 생각한다.


불교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종교의 나라인 대한민국의 특성상
종교란 자기수양일 뿐이다.



그게 대표적이 되어버렸다.
신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특성상, 내세를 너무나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기독교의 양상 또한
“예수님을 닮자”와 “자기수련”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자기 수련.  




하느님이란 신의 성향을 잘 모르거나,
어느신이 되든지간에 내세를 믿는다는 모든 종교의 특성상,

자기가 선택한 종교의 오로지 한가지 초점은  
“다음 생에 잘 태어나자. 신은 있다”가 아닐까.    




신은 있는 건 확실한데, 다음생은 어찌될지 모른다가
어느 신이 가장 확실한지 밝혀지지 않았을 때의  

모든 종교의 초점이 아니었을까.  




“신은 있는데, 어떤 신인지는 모르니
착하게 단련하여 다음생에 잘 태어나자.”가

핵심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이것이 지금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불확실한 것 같던 다음생이란 미지의 물음표가,
자기수련보다는 “다른 사람의 구원에 초점을 맞춰라”라고  

강하게 뒤바꾸어 버린 것이다.        



나보다는 남을 생각한다면, 또한 사랑한다면
자신만을 위하는 자기 수련이

초점이 될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구원이 초점이 될 것은 분명하다.
사랑이신 하느님이시라면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도 아직까지 자기수련에만 극히 초점을 맞추는
어리석음의 사이클을 최대한 계속 돌릴 셈인가.      



어리석음의 무한궤도를 끝낼때도 되지 않았는가.      




어떻게 해서, 지금까지도 하느님의 사랑보다는 자기수련인가.    



한사람의 영혼을 더 구하는 것이
“절대자”라는 전세계의 1/2에 달하는 신자수와

“실제로 일어난다”라는 끔찍하게도 실제인 믿음을 가지고만 말씀하시는 “실제의 하느님을 제외하고”  
어떻게 아직도 예수님을 닮기에만, 즉 자기수련에만 정진하는

어리석음의 끝을 더 보여줄 셈인가.      



물론, 예수님을 닮는 것은 기본 베이스일 뿐이다.    




하지만 기초만 쌓아 놓기만 수없이 반복한다면,
수학 문제집의 앞장만 두세장 풀기만 반복하는

초등학생의 행동패턴이 될것이 아닌가.      



아직도 마귀에 손에 눈을 가려,
현실을 정면으로 똑바로 못볼셈인가.      



현재의 “절대자는 전세계 1/2의 실제의 하느님이시란 말이다.”




언제까지 어리석을 셈인가.
절대자란 위치는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자기수련보다는 사랑이라고.      




자기 수련보다 영혼의 구원이라고 수없이 외치는
지옥에서의 영혼들의 절규를 자신만을 바라봄으로  

전혀 듣지 못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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