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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소멸

ㅇㅇ |2025.04.07 13:30
조회 111 |추천 0

나는 지구다.

나는 부지런해서 주기적으로 청소를 했다.

그런데, 청소가 안되는 새로운 존재, 인간이 등장했다. 처음엔 별 거 아니었다. 불을 다루기 시작하고,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릴 무렵까지도 나는 그저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런데 이들이 너무 잘 자랐다. 너무 많이, 너무 빨리.

이젠 모든 동식물을 죽이고 지들만 살겠단 듯 움직인다. 초목은 베이고, 강은 오염되고, 하늘은 재로 가득 찼다. 숨이 턱턱 막힌다.

나는 몇 번이나 시도했다.
전쟁? 인간들끼리 조정 좀 되겠거니 했지만, 도리어 더 단단해졌다.
전염병? 잠깐 주춤했지만 결국 백신 하나로 다시 활기를 찾았다.
이러다간 내가 먼저 죽을 지경이다.

그래, 이대로는 안 된다. 정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력으로는 안 돼.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물러나게, 자연스럽게, 천천히.

나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을 심었다.
“너는 소중해. 네가 행복해야 해.”
이 단순한 말이, 어쩌면 가장 강력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애 낳지 마. 너무 힘들어.
결혼도 뭐, 네가 싫으면 안 해도 돼.
가족보다 너 자신이 먼저야.
반려동물, 반려식물… 적당히 키우고, 나만 잘 먹고 잘 살아.

그리고 씨앗은 퍼졌다.
사랑보다 자아실현을, 공동체보다 개별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출산율은 떨어졌고, 도시는 조용해졌으며, 숲은 천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 더 속으로 중얼거렸다.
좋아. 자연스러운 인구 소멸. 이젠 막을 방법도 없다.

나, 지구는 다시 한숨 돌릴 준비를 한다.
다음 세대가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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