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도 올랐고 예식장 식대도 올랐지만, 무엇보다 축의금은 '관계에 대한 예의와 성의'라고
생각하기에 코로나 이후로는 아무리 안 친해도 최소 10만 원을 원칙으로 해왔습니다.
5만 원짜리 봉투를 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주 오랜만에 그 원칙을 깨고 5만원만 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있는 단톡방에 20년가까이 연령차이도 나는 제각각의 연령대인 6명방이 있습니다.
(나이차가 있는만큼 평소 대화가 오가는 단톡방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에 12학번 후배 녀석이 결혼식 딱 일주일 남겨두고
툭 한마디 던지더군요.
"형님들 안녕하십니까. 저번 모임 때 말씀은 드렸는데 벌써 결혼식이 일주일도 안
남아서 이렇게 톡방으로 늦게나마 인사드립니다. 직접 일일이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해요ㅠㅠ"
그러고는 모바일 청첩장을 올리네요.
읽는 순간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정중한 초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알린 것도 아닌
참 애매한 방식. 그 메시지의 본질을 직시하니 딱 이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던져는 놨으니, 올 사람은 오고 돈 낼 사람은 알아서 판단해서 내시라."
저는 꼰대니까 괘씸한 마음에 톡방에 형식적인 축하 인사조차 남기지 않았어요.
당연히 예식장에도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후 축의금 액수를 두고 두 가지 선택지를 고민했습니다.
1.10만 원을 보내고, 감사 전화가 오면 "그런 식의 청첩장 전달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짧게 훈계한다.
2. 5만 원만 보내고, 아예 관심을 끄며 감사 전화가 와도 일절 대꾸나 훈계 없이
형식적인 덕담만 하고 상황을 종결한다.
처음에는 1번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참 소모적이더군요.
내 돈 10만 원을 온전히 지출하면서, 내 아까운 감정과 에너지를 써가며 훈계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그림 자체가 내가 곧 꼰대고 나만 손해라는 계산이 섰습니다.
훈계도 상대가 알아들을 지능이 있고 교정의 여지가 있을 때나 투자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결국 2번(5만 원 송금 후 완전한 신경 끄기)으로 확정했습니다.
이건 돈 몇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상대가 보여준 무례에 맞춰,
내가 가진 관계의 장부에서 해당 자산의 가치를 정확하게 '가치 할인(Devaluation)'하여
반영한 수치라 생각해요. 선배로서 대우할 성의는 못 받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모른 척
등 돌릴 사안도 아니니 딱 5만 원의 가치만 매겨 처리하는 것입니다.
추후 감사 전화가 오더라도 훈계는 일절 안 할 겁니다. 그저 "그래, 축하한다.
잘 살아라" 단 한 문장으로 끝내고 제 리스크 리스트에서 영구 삭제할 예정입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 해보는 5만 원짜리 축의금인데, 조금 착찹하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