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안정형 남편 성격이 내 평범한 삶에 미치는 영향

쓰니 |2026.09.11 10:19
조회 28,873 |추천 134
안녕하세요.
늘 눈팅만 하다가 심히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글을 써봅니다.
인생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흔해서 음씀체로 써내려가 보고자 합니다.

(시작)

본인은 올해 만 40세가 된 흔녀임.
흔녀 중에서도 가장 평범함.

여중, 여고를 나와 공대를 갔음
20대 초반에 예비역인 같은 전공 공대 오빠를 만남
5년여간 연애하면서 단 한번도 싸운적이 없었음
나는 성격이 괴팍한 편인 데, 남친은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로, 바다마냥 모든 걸 받아주고 또 무한 신뢰를 주는 사람이었음
동선이 너무 투명한 사람이라 3일 동안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음
그리고 단 한번도 밤 12시를 넘겨서 집에 들여보낸 적이 없었음
한 번은 우리 부모님께 기안서 쓰고 컨펌을 받고나서 당일치기로 편도 3시간 거리 여행을 다녀왔음
부모님도 남친을 믿을 수 밖에 없었음

어차피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할 것 같아 큰 고민하지 않고 어린 나이에 식을 올렸음
20대 때 결혼해서 돈이 많지 않았음
부모님들께 손벌리지 않고 15평 남짓한 오래된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신혼을 시작했음
살림을 불려 나가는 재미도 쏠쏠 했음
사소한 것에 웃고 소소한 것에 감사했음
말도 안되는 나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고 시키지 않아도 청소, 빨래, 설거지, 분리수거를 알아서 해줘서 너무 고마웠음
남편은 겜돌이에 집돌이라 출장, 야근이 아닌 이상 밤 늦게 들어오는 일이 드물었음
나이가 들수록 서로가 베프이자 전우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임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많았음
나는 화장실에 떨어뜨린 머리카락을 바로바로 치우지 않았고, 남편은 양말을 뒤집어서 내놓았음
남편은 퇴근 직후 눕는 것을 즐겼고, 워킹맘인 내게 육아를 미루는 듯하여 그 꼴이 보기 싫어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음
다행히 싸움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이 다 참고 받아 준 것 같음

그래도 둘다 치약을 앞에서부터 짜고, 설거지는 몰아서 한꺼번에 하는 등 요상하게 맞는 부분도 많았음
게다가 남편은 변기를 쓰고 항상 커버를 내려놓고, 내 신발을 바로 놔두는 등의 작은 배려도 끊임 없이 하는 사람임

그리고 남편은 길치였음
연애할 때는 몰랐음
분명 공대 남자 답게 알아서 데이트코스를 짜서 잘 찾아다녔는데...
지금은 길을 가다 사거리에서 편의점 들어갔다 나오면 왔던 길을 다시 되 돌아가는 식이라고나 할까.
알고 보니 연애할 때 공강이 있는 날 오전에 미리 데이트 장소를 방문해서 길을 익혀 둔 후 저녁에 데이트를 했던 거임
이 사실을 무려 10년 후에나 알게 되었음
이걸 알고 뒤늦은 감동이 밀려왔었음

한편, 결혼을 하면 임신, 출산, 육아는 당연한 일인 줄 았았는데,
나는 습관성 유산으로 많은 아픔을 겪기도 했음
임신하여 배 나온 임산부가 그렇게 아름답고 예뻐보이고 부러웠음
그래도 기다리다보니, 머지 않아 감사하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들이 찾아왔음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한 날이 많았지만, 육아가 원인이 된 다툼도 하게 되었음
첫 아이 50일에 처음으로 박터지게 싸워봤음(나는 종일 굶었는데, 남편이 말도 없이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고 늦게 들어와서 서러웠음)
둘째 아이 50일 때 두번째로 박터지게 싸워 봤음(같은 이유였음)
셋째 아이 돌 무렵에 세번째로 박터지게 싸워 봤음(비슷한 이유였음)
싸울 때마다 내 마음은 이혼 법정까지 다녀왔다가 늘 남편의 말 한마디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음
생각해보니 단 한번도 냉전 시간을 12시간을 넘겨본 적이 없음

첫째가 중딩인데도, 나는 아직도 육아가 어렵기만 한데
눕방 육아, 발로 하는 육아를 즐기며 스트레스 받지 않는 남편이 그저 신기할 따름임

아이들 성격도 다행히 나를 닮지 않고 남편을 닮아 무던한 편임
우리집 가훈은 "그러려니..."가 되어 가고 있음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남편의 성격은 시부모님께로부터 왔음
어머님은 무뚝뚝한 아들만 넷 키우시다가 인생 첫 손녀를 보시고는 너무 좋으셨는지 한동안 매일 같이 우리 집에 오셨었음
그러다 갑자기 발걸음을 끊기 시작하셨음
알고 보니 어디서 들으셨는지, 며느리가 불편해 할 것 같다는 걸 깨달으셨다며…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었음
어머님이 오시면 아이를 맡기고 나는 집안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진심 좋았었음
그 사실을 알게된 날 우리집 비밀번호를 알려드렸고, 연락 없이도 언제든지 오시라고 했음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 집이 개판이어도, 냉장고가 엉망이어도 단 한번도 어머님은 잔소리, 쓴소리를 하신 적이 없음
"어머니, 저 이러고 살아요"
"아휴, 애가 셋인데 이러고 사는 게 당연하지. 나는 더 했어..."
우리 어머님은 내게, 20대 꽃다운 청춘을 오빠에게 바쳤다며 안타까워 하신 적도 있음

부모님께 잘하는 게 무엇인지 늘 고민을 했는데 어느 날 깨달았음. 
부모님 마음에 근심을 끼쳐드리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나도 내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칠 것 같음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오늘 코 끝을 스치는 가을 향기를 느끼며 걷는 이 평범한 출근 길이 유독 감사해서 글을 써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평범하지만 가장 행복한 삶들이 되시길...
추천수134
반대수11
베플ㅇㅇ|2026.09.11 11:58
사소한 것에 웃고 소소한 것에 감사했음 < 이 한 단어로 다 설명 가능한 글인듯 ㅎㅎ
베플ㅇㅇ|2026.09.12 08:55
글 읽는데 기분이 편안해요. 좋다.
베플ㅇㅇ|2026.09.12 07:20
시부모님도 잘 받아주시고 남편도 받아주는 성격이고 글쓴이도 선안넘네 이러면 큰 갈등없이 오래가지
베플남자슈슈|2026.09.12 08:55
글쓴이분도 좋은 사람이니까 그래요 앞으로도 남편분이랑 행복한 날들만 가득하시길
베플이모씨|2026.09.12 03:16
이런 수필 좋다.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