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끝났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장문)
ㅇㄹ
|2026.09.14 14:36
조회 1,192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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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명쯤은 있는 것 같다.
지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닌데, 이상하게 가끔 생각나는 사람.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어디에서 뭘 하며 사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사람.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아마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처음으로 그렇게까지 누군가를 좋아해본 사람이었다.
나는 원래 숫기가 없는 편이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웠고,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이상하게 그 사람한테는 용감해졌다.
무려 3년을 쫓아다녔다.
한 번 고백하고 차이고, 또 고백하고 차이고.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지독했다.
그런데 그때는 지독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냥 좋아했다.
그 사람이 좋으니까 거절당해도 또 보고 싶었고, 연락이 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몇 번의 고백 끝에 결국 사귀게 됐다.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연애였으니 얼마나 좋았겠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사귀고 난 뒤부터는 평탄한 연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사람 어머니에게 뺨을 맞은 적도 있다.
남동생에게 선빵을 맞은 적도 있다.
지금 누가 나한테 그런 연애를 했다고 하면 나는 아마 말릴 것 같다.
“그걸 왜 계속 만나냐”고.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냥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상한 일들을 겪어도 어떻게든 버텼다.
아마 그때의 나는 사랑이라는 걸 조금 잘못 배웠던 것 같다.
좋아하면 참는 거라고.
좋아하면 어떻게든 버티는 거라고.
상대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2년을 만났다.
그리고 어느 날 군대에 가게 됐다.
입대하기 이틀 전쯤이었다.
술을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사실 무서웠다.
군대에 가는 것도 무서웠지만, 더 무서운 건 그곳에 있는 동안 이 사람이 내 옆에 계속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꺼냈다.
“힘들면 억지로 기다리지는 않아도 돼.”
2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2년은 또 다른 시간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먼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은 괜찮다고 했다.
자기는 나 없는 듯, 있는 듯 잘 참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기다려주겠구나.’
그렇게 나는 군대에 들어갔다.
훈련소에 있을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편지가 오지 않았다.
다른 동기들은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받고 사진을 받고 간식을 받고 난리인데,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애써 이유를 만들었다.
바쁜가 보다.
정신이 없나 보다.
원래 편지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가 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불안했다.
사람이 이상한 게, 좋은 일이 생기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면서도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왜 편지가 안 오지?’
‘예전 같으면 이런 날에는 연락했을 텐데.’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계속하면서도 전화만 하면 또 괜찮았다.
목소리는 평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별일 없어.’
그렇게 자대에 배치됐다.
그리고 나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했다.
그때 이등병이었던 나는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었다.
30분 정도 통화하는 날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한두 시간씩 이야기했다.
그 전화가 하루 중 유일한 낙이었다.
훈련이 힘들어도,
선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몸이 힘들어도,
그 사람 목소리만 들으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믿었다.
‘우리는 괜찮다.’
그러던 어느 날 첫 훈련을 나가게 됐다.
하필이면 그 기간에 기념일이 있었다.
훈련 전날 전화를 해서 말했다.
“며칠 동안 전화 못 할 것 같아.”
그 사람도 알겠다고 했다.
나도 미안했다.
기념일인데 아무것도 못 해주니까.
그래도 훈련 끝나자마자 전화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죽어라 훈련했다.
3일 동안 제대로 자지도 못했고 씻지도 못했다.
몸에서는 냄새가 났고, 옷은 땀에 절어 있었다.
그런데 훈련이 끝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한 건 그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이등병이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전화하면 좋아하겠지.’
‘훈련 끝나자마자 전화했다고 하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풀리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전화를 걸었다.
받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이상했다.
반갑지 않았다.
시큰둥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냥 피곤한가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너 뭐 화난 거 있어?”
그런데 계속 시큰둥했다.
나는 서운했다.
아니, 솔직히 화가 났다.
나는 기껏 훈련 끝나자마자 너한테 전화했는데 왜 이런 반응인가 싶었다.
결국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하… 내가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만하자.”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몇 번 더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또 받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면 휴가였다.
그래서 그때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전화로는 뭔가 잘못 전달된 것일 거라고.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풀릴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휴가를 나왔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 우리를 소개해준 친구 A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A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야… 근데 걔가 너한테 연락 안 했으면 좋겠다고 전해달라는데.”
나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라고?”
그러자 A가 말했다.
“그리고…”
잠깐 뜸을 들이더니,
“걔 남친도 생겼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남친?
나는 아직 군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며칠 전까지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사람은 내 전화를 받았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했다.
그 사실을 나는 그 사람에게 직접 들은 것도 아니었다.
친구에게서 들었다.
그게 너무 화가 났다.
헤어진 것보다 그게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왜 나한테 직접 말하지 않았을까.’
‘왜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했을까.’
‘내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나.’
그때는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다.
A와 헤어지고 나는 그 사람 집 앞으로 갔다.
카톡을 보냈다.
잠깐만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카톡은 바로 읽혔다.
그런데 답장이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뚝.
바로 끊겼다.
그제야 알았다.
차단당했다는 걸.
나는 그때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한 번만 미친 짓 해보자.’
그래서 그 사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머니는 의외로 전화를 잘 받아주셨다.
휴가 나온 것도 알고 계셨다.
나는 인사를 드리고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잠깐 바꿔달라고 했다.
전화가 넘어갔다.
그리고 그 사람이 전화를 받자마자 한 말.
아직도 기억난다.
“너 미쳤어?”
그리고,
“구질구질하게 왜 이래?”
나는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데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은 네가 직접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왜 A를 통해서 말하게 하냐.”
“네가 미안해야지. 왜 A가 미안해하게 만드냐.”
그랬더니 그 사람이 말했다.
“난 내가 뭘 잘못한지도 모르겠고 별로 미안하지도 않으니까 빨리 끊어.”
그리고,
“난 너랑 말하기도 싫어.”
그게 끝이었다.
그때는 정말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갔다.
다음 날도 해는 떴고,
사람들은 출근했고,
나는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또 어린애 같은 짓을 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을 저격하는 글이었다.
우리 둘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 이야기인지 모를 수가 없는 글이었다.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속이 시원했다.
‘그래, 내가 얼마나 억울했는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이상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결국 글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그 사람은 봤다.
그리고 그 사람의 친구들에게 욕을 먹었다.
“니가 뭔데 걔한테 그러냐.”
“다 니 잘못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중 한 명과는 복귀 직전에 오해를 풀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 사람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말출 직전에 편지를 한 통 보낸 적은 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적었던 것 같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전역했다.
취직했다.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회식도 하고,
술도 마시고,
일에 치이고,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사람 생각도 조금씩 흐려졌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전역한 지 1년쯤 됐을 때였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형이 무심코 어떤 말을 했다.
정말 별것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 하나가 이상하게 그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계속 생각이 났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잘못한 게 많았네.’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보였다.
나는 그때 너무 어렸다.
내가 힘든 것만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만 생각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 사람이 했던 행동들이 전부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나 역시 완벽하게 떳떳한 사람은 아니었다.
갑자기 미안해졌다.
그래서 장문의 사과문을 보냈다.
그게 정말 몇 년 만의 연락이었다.
그런데 답장이 왔다.
“내일 시간 돼?”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무슨 의미일까.
왜 만나자는 걸까.
그때까지도 나는 그 사람에게 직접 사과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거의 3년 만에 그 사람을 다시 봤다.
막상 얼굴을 보니까 이상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설레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덤덤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들떠 있었다.
아마 기대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이야기할 수 있겠지.’
‘그때 왜 그랬는지 물어볼 수 있겠지.’
‘나도 이제는 그때보다 어른이 됐으니까.’
어쩌면 아주 조금은,
다시 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 사람이 나를 만나러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그 사람이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나는 당황했다.
카톡으로 이미 장문의 사과를 보냈는데.
“카톡 안 봤어?”
그랬더니 차단해서 안 봤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입대했을 때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런데 말을 시작하자마자 잘렸다.
“야, 너 조카 입대가 무슨 벼슬인 양 말하는데 아니거든?”
나는 순간 멈췄다.
그래도 참았다.
“말 끊지 말고 일단 들어봐.”
그런데 또 잘랐다.
“나는 너한테 이렇게 시시콜콜 얘기 들으려고 온 거 아니거든.”
그리고 말했다.
“난 너 보는 것도 소름 끼치고 짜증나.”
“본론만 말해.”
그 순간 나도 열이 받았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너는 여기 왜 왔는데?”
그 사람이 대답했다.
“너 페북에 저격글 남겼을 때 그때 너한테 욕 못 해준 게 너무 억울해서 욕해주러 왔어.”
그리고 욕을 했다.
미친 새끼라고.
왜 자꾸 나한테 지랄하냐고.
미친 새끼라고.
그날은 주말 오후였다.
사람이 많은 카페였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니, 사실 할 말은 많았다.
나도 똑같이 소리지를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이 했던 말 하나하나에 반박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어쩌면 주변 사람들은 나보다 그 사람을 이상하게 봤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내가 같이 소리치면 결국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냥 일어났다.
“너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냐.”
그리고 나왔다.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 한동안은 그 사람이 미웠다.
정말 미웠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그렇게 떠난 것도 미웠고,
나에게 직접 말하지 않은 것도 미웠고,
몇 년 뒤 다시 만났을 때 그렇게까지 나를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도 미웠다.
그런데 시간이 더 지나니까 미움도 조금씩 사라졌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그렇게 죽도록 미웠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그냥 추억이 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결혼했다.
아내가 있고,
아이도 있다.
얼마 전에는 아이의 첫돌도 치렀다.
내 삶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시 연애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지금의 내 삶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가끔 궁금하다.
그 사람은 지금 잘 살고 있을까.
간호학과에 갔던 건 기억난다.
어머니가 원하는 삶을 살라고 계속 이야기했던 것도 기억난다.
간호사가 돼라.
의사랑 결혼해라.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던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지금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간호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서 사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주 가끔,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도 한다.
그 사람도 나를 생각한 적이 있을까.
몇 년에 한 번쯤은 생각했을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름을 듣고 잠깐 멈칫한 적은 있었을까.
술을 마시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난 적은 있었을까.
그때의 내가 미숙했다는 걸 알았을까.
아니면 그냥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을까.
그게 궁금하다.
그리고 만약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나도 분명 잘못한 게 많았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좋아하는 것밖에 몰랐다.
잘해주고 싶었던 것도 많았지만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조금 달랐을까.
조금 더 어른이었다면,
조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말을 잘했다면,
조금 덜 서툴렀다면.
우리의 마지막도 달라졌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어쩌면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그 시기에, 왜 그렇게 떠난 거야?”
나는 그 말을 결국 제대로 묻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그 답을 듣지도 못했다.
3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어쩌면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는 욕을 먹고 돌아왔다.
그래서 그 질문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정확한 이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 사람이 한 번쯤 이렇게 말해줬으면 했던 것 같다.
“그때 너도 많이 힘들었겠다.”
그 말 하나.
그때 내가 군대에서 얼마나 불안했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훈련이 끝나자마자 씻지도 못한 채 전화부터 걸었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그걸 알아주는 말 한마디.
어쩌면 그게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말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나는지도 모르겠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원했던 방식으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서.
그런데 이제는 정말 괜찮다.
적어도 그렇게 말할 수는 있다.
나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다른 사람이 됐다.
그 사람도 그때의 그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됐을 것이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었든,
이제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정말 우연히라도 그 사람의 소식을 듣게 된다면 좋겠다.
“잘 지낸대.”
그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결혼을 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누구와 사는지,
얼마나 행복한지까지는 몰라도 된다.
그냥 잘 지낸다는 말.
그 말을 들으면 아마 나는 잠깐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래? 다행이네.”
그리고 그걸로 끝내고 싶다.
한때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었으니까.
한때 내 인생에서 가장 컸던 사람이었으니까.
다시 내 인생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사람이
어디선가 자기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 알면 될 것 같다.
그리고 가끔 아주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때의 나를 생각해볼 것 같다.
참 어렸고,
참 서툴렀고,
참 많이 좋아했고,
참 많이 아팠던 그때의 나.
그때는 몰랐다.
사람을 잊는다는 게 꼭 기억에서 지우는 건 아니라는 걸.
어떤 사람은 잊히는 게 아니라,
그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기억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라는 걸.
아마 그 사람도 이제 그런 기억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가끔 생각나고,
가끔 궁금하고,
가끔 그때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기억.
그리고 언젠가 정말 우연히 그 사람의 소식을 듣게 된다면,
나는 아마 아주 잠깐 생각할 것 같다.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
그리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