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끝난지 일주일 됐는데 아직도 좀 멍해서 적어봅니다.
결혼 13년차고 애들은 초등학생 둘이에요
본가는 전남 순천이라 명절마다 다섯시간 넘게 운전해서 내려갑니다
올해 추석 3주 전쯤에 와이프가 저녁 먹다가 조용히 그러더라고요
나 올해부터 명절엔 안 내려갈래
당신이랑 애들만 다녀와
그 대신 명절 전에 따로 한번 인사드리러 갈게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어요
근데 표정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무섭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까 13년 동안 명절에 전 부치고 설거지하고 올라오는 차에서 매번 울었대요
저는 그걸 한번도 몰랐어요 차에서 자는줄 알았거든요 창문 쪽으로 고개 돌리고 있길래요
어머니가 특별히 모질게 하신것도 아니에요
그냥 시골이다 보니 여자들은 부엌에 남자들은 거실에 그게 당연한 분위기였고
큰형수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와이프는 그게 13년 쌓인거죠
그래서 이번엔 정말 저랑 애들만 갔어요
어머니한테는 와이프가 몸이 좀 안좋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니가 딱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래 쉬어야지
그 말투가 서운한건지 화나신건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명절 내내 눈치만 봤습니다
큰형은 제수씨 요즘 무슨 일 있냐고 묻고
큰형수는 부엌에서 혼자 전 부치다가 저한테 동서 진짜 안와? 하고 웃는데 그 웃음이 좀 그랬어요
결국 제가 소매 걷고 전 부쳤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요
두시간 부치고 나니까 허리가 끊어지는줄 알았어요
와이프는 이걸 13년 했구나 싶더라고요
밤에 작은아버지들 술자리에서도 얘기가 나왔어요
요즘 며느리들은 편하게 산다 우리땐 상상도 못했다 이런 얘기요
평소 같으면 저도 같이 웃고 넘겼을 텐데 이번엔 웃음이 안 나오더라고요
술잔 내려놓고 설거지하러 갔더니 작은어머니가 니가 왜 그걸 하냐고 깜짝 놀라셨어요
애들은 엄마 왜 안 왔냐고 할머니한테 자꾸 물어봐서 그때마다 식은땀이 났고요
올라오는 길에 애들은 뒷자리에서 자고
저 혼자 운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와이프 말이 틀린건 아닌데 그렇다고 제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다
집에 오니까 와이프가 갈비찜 해놓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고생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웃었어요
전 부친 얘기는 아직 안 했어요 왠지 생색내는 것 같아서요
내년 설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