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말에 저희 할아버지 구순 잔치가 있습니다.
큰아버지 댁에서 식당 하나 잡아서 친척들 다 모이는 자리예요.
저한테 할아버지는 좀 특별한 분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맞벌이라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할아버지 손에서 컸거든요.
그런데 아내가 이번엔 안 가겠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작년 추석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작년 추석에 큰집 갔을 때 큰어머니가 아내한테 애는 언제 갖냐고, 나이도 있는데 너무 늦는 거 아니냐고 하셨던 일이요.
그 자리에서 아내가 많이 당황했고 저도 그때 그냥 웃으면서 넘긴 게 있습니다.
그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울었고 제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어요.
아내는 그 큰어머니가 이번 잔치를 주관하시는데 거기 가서 또 그런 소리 들을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당신 할아버지지 내 할아버지는 아니지 않냐고 하더군요.
그 말이 좀 걸렸습니다.
결혼한 지 4년인데 할아버지는 아내한테 늘 잘해주셨어요.
명절마다 손주며느리라고 따로 용돈도 챙겨주시고, 아내 생일엔 직접 전화도 하셨고요.
그런 분 구순에 손주며느리가 안 오면 할아버지가 섭섭해하실 게 뻔합니다.
아흔이시니 앞으로 이런 자리가 몇 번이나 더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제가 이번엔 큰어머니가 그런 말 하시면 내가 바로 막겠다고, 옆에서 한 발짝도 안 떨어지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작년에도 그렇게 말했다고, 근데 막상 그 자리에선 아무 말도 못 하지 않았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지금 저는 회사 그만두고 이직 준비 중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친척들 사이에서 말이 나올 것도 알고 있고요.
아내 입장에선 애 얘기에 남편 백수 얘기까지 듣게 될 테니 더 가기 싫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해요.
할아버지는 벌써 아내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지난주 통화 때 손주며느리 그날 오지?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가라 하시는데 거기다 대고 아직 모르겠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도 할아버지 생각하면 같이 가줬으면 좋겠는데
억지로 데려가면 그날 아내가 또 울 것 같아서 더 말을 못 꺼내겠습니다.
잔치까지 이제 3주 남았는데 아내랑은 그 얘기만 나오면 서로 말이 없어집니다.
혼자 가서 아내는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대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제가 아내를 한 번 더 설득하는 게 맞는 건지
제 욕심인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