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신 글들을 쭉 읽어 봤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말씀인데 제 글도 쭉 읽어 보십시오~
글올리신 분이 어떤 분이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기독교에 대해 많이 아시고 그만큼 자부심 있으신 것 같습니다.
기독교 아전인수격의 경전해석이라고 하셨는데 기독교 역사라든지
교리 연구해 대해서는 전혀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올리신 글들 역시 전체적인 신학적인 공부를 하셔서 올리신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생각하고 계신 것을 올리신 것 같습니다.
첫번째로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원은 이렇다고 봅니다.
기독교인이든 바리새인이든 이슬람인이든 어떤 누구든지간에
살아계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구원을 얻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꼭 기독교인만 구원한다는 뜻은 전혀 아니죠.
그리고 구원할 사람은 예정 되있다. 이 말도 맞지 않습니다.
디도서 2장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고
디모데전서 2장 4절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이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런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서 서로 교제를 통하여 말씀을
나누고 하는 곳 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기독교 인이라고 구원을 얻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 말씀을 보면은 그저 사람 살기에 좋은 말이고 도덕적인 말이죠.
구원이라는 것은 있지도 않겠죠.
두번째 세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모르겠지만
교회도 제정이 좋은 교회도 있고 정말 힘들어 하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항상 회계를 하고 재정을 항상 관리 합니다. 교인들에게도 공개하죠.
오히려 불교 쪽이 기복신앙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많이 기부하고
그런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교 재정이 얼마인지는 잘 밝혀지 있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찰 주지스님이 되려고 많이 치열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막 12:13절에도 나와 있듯이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드려고
바리새인과 헤롯당들이 곤란하게 질문을 한것입니다.
대답을 잘못하면 로마의 대한 불순 세력으로 잡아넣으려고 하기 위함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휘말리시지 않고 적절하게 답변 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이 살아계셨을 당시에도 예수님을 모함하고 어떻게하면
꼬투리를 잡지 않을 까하고 곤란하게 만드려는 것을 볼수 있을 것입니다.
(안식일 논쟁, 예수의 권세 논쟁, 세금 문제, 부활 문제,
과부의 남편에 대한 논쟁, 모세의 율법 논쟁 등..)
그리고 전재산을 받치라는 그때 그 본문도 문맥을 보면
그 사람에 마음가운데 가장 큰 걸림돌이 재산문제 인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도 포기하고 나를 따를 수 있는가 하고 질문한 것이죠.
그때 그 사람은 근심하고 돌아갔다고 써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재산을 바치라고 말은 안하셨습니다.
헌금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이고, 십일조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본인이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안해도 무방하다고 생각은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것이 없는게 오히려 더 문제인 것 같네요.
세번째 바리세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입니다.
그 당시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센에파 여러 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딱히 예수님께서 바리새파인들을 싫어하셔서 바리새파 인들을
비유로 그런 말씀을 하신건 아닙니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신앙의 자세는 좋긴하나,
말 그대로 형식에 치우쳐져 본질을 잃어버린 결과를 놓고 말씀 하신 것 입니다.
때가되면 금식을 하고 기도 생활을 하고 말씀을 읽고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하지만 그것 뿐이였습니다.
마치 습관처럼 하듯이 하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겸손한 마음도 없고
마치 이글을 쓰신 본인 처럼 자신은 잘알고 많이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무시하듯이 글을 쓰시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 8:21~23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만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계신 아버지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 그때 사람들이 말하죠.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지만,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말씀대로 산다고 본인은 착각하지만
정말 내면의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있나 그것을 생각해봐야 됩니다.
이부분은 목사님이든 전도사님이든 어느 그 누구든 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부족합니다. 목사님도 여자 스캔들로 인하여 무너질 때도 있고,
말도 함부로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 유혹과 나약한 마음들을 하나님께 의지하여야 합니다.
네번째 순종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고 물론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님이 예배에 기쁨과 순종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구약 시대 때는 회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소유 양을 제단에 받치고
하나님께 예배와 경배를 드렸죠. 하지만 그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기 힘쓰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드시는 것을 보면
꼭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맞는 말이나, 상황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예배는 일주일에 주일 일요일날 드립니다. 물론 유대교에서는 안식을 지키죠.
이렇게 시간을 드려서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러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좋은말 듣고 돈내러 간다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면
예배에 기쁨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섯 번째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기독교를 떠나서 사람으로 기본으로 당연히 지켜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역시 자세히 모르시고 한부분만을 확대해석하는 오류를 범하신 것 같습니다.
님도 알고 있듯이 재물이 많은 청년이 주님앞에 나와서 주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보다
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그전에 대화는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예수님께서 그 말씀 하시기전에 재물이 많은 청년이 주님께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때 말씀 하신 계명들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했죠.
그렇다면 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말씀 누구든지 나에게 올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며 내 제자가 될수 없다 라고 말씀 하셨는데
그럼 이거는 모순인겁니까? 아니죠.
그말씀은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대한 마음이 기본이 되야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대로 가족을 사랑할 수 있고 그리고 예수님 보다 다른 것을 더욱 중시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여섯 번째 행위와 믿음은 별개가 아닙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바리새인들 처럼 금식을하고 기도시간 되면 기도하고
말씀읽고 하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신학교다니는 학생들 중에서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예수님 말씀 대로 살지 않으면
그것도 소용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행동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과 행동을 같이 하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것은
사람은 무지로 인하여 악한길에 빠지고 스스로 교만하여지기 때문에 한말입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많이 알지만 그 말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그의 제자 플라톤 또한 생각보다는 행동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도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뭐든지 어떤 일을 하던지 간에 지행합일. 생각과 행동이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안다고 교만만 떨고 행동하지 않고 자기는 착한일 하고 선한 일을 하니까
그 마음가운데 교만하여지고 예수님 말씀도 행동만으로서도
구원얻지 못하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만도 구원을 얻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도 머리로 순종하고 마음으로 행동했을때 더 가치
있다고 봅니다.
일곱 번째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과 땅에 주인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욥기에서 본것 같이 사단은 항상 이땅 가운데 사람을 시험하게 합니다.
믿음을 흔들리게 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흔들어보고 그사람에게 힘든 고통도 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만 불행하여지면
항상 다시 예수님의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물론 그부분에 있어서는 사탄의 시험도 있고
하나님이 그사람에 믿음을 위하여 주는 시험도 (욥처럼) 있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 1장에서 말씀하는
시험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게 아니고 제자들이 써서 신뢰가 가지 않으신다면
얼마나 주님의 말씀만은 잘지키고 따르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덟 번째 축복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축복의 종류를 쭉 보면 자식의 축복, 지혜와 지식의 축복이 있고
재물의 축복은 없는게 아닙니다. 8복에서 말한 축복은 어떻게 하면 복을 받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도 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주기도문을 알려주듯이.
물론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이생에서의 물질적 축복이지요.
그리고 헌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했을때도 감사를 표시 한다면 기분 나빠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감사한 것을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했을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생각이 드네요.
아홉 번째 귀신들도 구원을 받는 다는 말은 아닙니다.
약 2:19 에서 말씀하신 것은 17절 행함이 없는 믿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귀신도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그분 앞에 두려워 하는데
너는 어찌하여 하나님을 잘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다윗을 제일 존경하는데
그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성한 나라를 만들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유혹에 이끌려 우리아에 아내 밧세바를 취하게 됐을때
선지자인 사무엘이와서 다윗에게 경고를 합니다.
당시 최고의 자리에 있고 누구의 명령도 들을 필요가 없던 다윗이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 할줄 알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바로 회개했던
모습이 되게 인상적입니다.
열번째 목사는 신이 아닙니다.
다른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혼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이해하려고 애쓰며
말씀을 공부하고 하는 선지자요 대변자 입니다.
글쓰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계시와 환상으로도 알려주시고
묵시로 또한 말씀으로 또한 사람을 보내어 주시기도 합니다.
환상과 계시가 있지만은 말씀에 근거에서 빗나가는 환상과 계시를 조심해야 합니다.
열한 번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그건 당연히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의 역사간에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돌아가신 이후에
하나님은 예수님과 동일된 분이신가 선지자이신가(이것은 여호와의 증인에서 주장)
아타나시우스 라든지 아폴리나리우스 라든지 디오도로스라든지
하지만 분명 성경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1서 2장에 보면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4장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보라고 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꼐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것은 예수님 살아계셨을 당시에 직접 눈으로 기적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믿음에 눈이 없이 바라보니까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선지자인지 반란군의 선동자인지 구분을 못한 것 입니다.
그리고 요2서 7절에서도 계속 언급합니다.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이것 입니다.
구약은 약속된 말씀 신약은 성취된 말씀 그중에서도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하시며 우리의 죄를 위해 이땅에 오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게 신앙입니다.
열두 번째 비판 하지말라라는 말씀을 어느 교회 어느 목사님이
그렇게 쓰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비판의 말씀은 예수님이 말씀 하셨듯이
자신의 큰 잘못은 작게 보면서 남의 사소한 잘못을 크게 보느냐라고
지적 한겁니다.
건전한 비판 좋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보면은 건전하게 비판하는 사람을 많이 못 봤습니다.
남을 비판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합니다.
남이 잘못한 것을 보면서 자기는 저정도는 아니다라면서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술취하지말라는 말씀이 있는데 술먹지 말라고 안했다면서
말씀에 빗대어 자신을 합리화 하는데
그 말씀 하실때 같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5:16 술취하지말라 이는 방탕한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러면 술취하지만 안된다는 말씀은 잘지키면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라는 말씀은 잘 안지켜지는 것 같습니다.
남을 비판하면서 자기 자신은 정당하다는 것을 가질수 있기 때문이죠..
이글을 쓰시는 분도 이렇게 비판하시는걸 보면 건전한 비판이라고
생각되어지지도 않고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쭉보아오면서 글을 썼는데 믿음과 신앙의 말 보다는 소피스트와 같이
궤변을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에 글 중에 건전한 비판이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글들을 읽어보면 건전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이만 글을 씁니다.
기독교신앙에서 가장 중요한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글을 올리게 되셧는지 모르겠지만
교회에 안좋은 경험이 있다던지 아니면 본인 합리화이든 아니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알려주고 싶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리고 정말로 건전하게 비판하고 싶어서 글을 올리신거면
글을 올린 의도하고 주장하고 싶어하신게 무엇인지 들을 수 있을 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