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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적고 사는게 힘들다고 하시는분들께 #2

스마일 |2009.04.21 14:00
조회 25,020 |추천 3

헐... 난생첨이자 마지막으로 쓴 판이 헤드라인에 걸리다니.. 이런 ..ㅎㅎ;;

긴 글을 읽어주시고 일부러 댓글까지 남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어찌 갚아야 할지... 대구에 오시면 연락이라도... 야쿠르트라도 한잔...)

사실 요즘..... 악플이 심심찬캐 나오는 상황인지라 혹시 있진 않을까 후덜덜 거리면서 봤는데... 없네요? (브라보)

 

댓글에 어머니 생신에 대한 글이 있길래 생각나서 적네요...

 특례생활을 할때는 어머니 생신때 내의나 조그마한 선물로 맘을 전달 해 드렸습니다.

복학을 하곤 그럴상황이 되질 않아서 전날밤 준비를 마치고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미역국을 끓였어요(얼마전이라 어머니께서 일이 없으실때라서요... 일있으실때였다면....ㄷㄷㄷㄷ)

7시에 미역에 밥 조금 말아서 김치랑 내어서 어머니 깨우곤 드렸는데 ... 원래 아침엔 밥이 잘 안먹히잖아요? 근데도 한그릇 뚝딱 하시더라구요. 그리고나서 설겆이 한다고 부엌에 가서 다 하고 학교 간다고 나서는데 왜또 울고 계시는건지... 일부러 못본척 하고 큰소리로 '갔다올께!' 하곤 나오는길에 저도 울컥 하게 됐습니다. 능력이 안되서 끓여 드린게 더 큰 감동이 된것일까요... 전날 출근하고 늦게 자서 몸은 피곤했었지만 밥도먹지 않았지만 어머니 식사 하시는 모습만으로도 배가 부른 하루였습니다.

 

단지 어머니 생신뿐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생일때도... 몇시간이나 아파하시며 진통을 겪으시며 우리눈에 빛을 보여주신건 어머니 십니다. 그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우울한 내용이지만 싸이 공개 해도 될까요..; 첨이자 마지막인 판인지라ㅠ

http://www.cyworld.com/hanjangmin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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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톡을 즐겨만보던 난생처음으로 톡을 쓰는-.-; 25살 남아 입니다.

일캐 시작해야된다죠?

 

 '월급적고 사는게 힘들다고 하시는분들께'라는 글을 적어놓으신분 글을 보니 저도 제 이야기쫌 하고 싶어져서요. 저분글이나 제 글을 읽고 힘들어하시는분들께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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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8평짜리 단칸방에 살았습니다. 가족은 부모님 누나 저 4식구 이구요. 아버지의 능력이 부재와... 가정불화로 하루하루 어머니 눈물 보지 못한적이 없었고 어머니는 이런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아서 밤이되어 아버지가 돌아오실때만 되면 나가서 옥상이나 사람이 없는 공사판에서 주므셨습니다. 칼로 자살을 시도하던 모습도 본적이 있었습니다. 저때 제 나이 초등학교 3학년. 저희누나가 고등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저땐 제가 늦둥이로 태어나서 빨리 커서 돈벌고 싶다. 돈이 없어서 가정 불화가 오는거 같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아직도 어머니는 저더러 삐뚤어져주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시더군요-.-;그닥 그럴 용기도 없었는거일수도..? ㅋㅋㅋ;

 

제가 쫌 착실한 녀석이였나 봅니다. 초중고 통틀어서 급식비나 등록금 같은건 내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귀여움을 한몸에 차지 하고 있.......-_-었는건가요? 꺄르르르;

 

초등학교때는 급식하고 남은 밥이나 국 반찬을 위생팩같은곳에 넣어서 큰 검은봉다리 두곳에 가득넣고 양손 무겁게 편도 20분 거리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저나이땐 부끄러울만도 한데 버려지는 것들이 아까웠거든요. 게다가 집에 도움을 줄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도와 주시더군요.

 

중고등학교때도 그다지 질 좋은 학교가 아니였는지라 담배 피고 술먹는 친구들이 많았것만, 배우고싶지 않더군요. 아버지 담배 냄새가 참 싫었거든요. 술도 그렇구요.

 

그리고 중3때 아버지께서 집을 나가셨습니다. 그당시 생각에 잘됐단 생각도 들더군요.(지금은 아닙니다.)

그리곤 어머니께선 큰결심을 하십니다. 지금 말씀해주시던데 '이거 못하면 내새끼들 굶어죽는다' 라는 생각으로 임하셨다고 합니다.  '노가다'입니다.  

어머니께선 어릴적부터 몸이 약하셔서 남매들중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많은 신경을 쓰셨다던데. 그런분이 노가다 라뇨... 손을 보면 꾸둥살이 말도 아닙니다. 어머니이기전에 여자인데....

 

고등학교때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전산응용기계제도기능사. 흔히 알고들 계시는 cad라는 설계프로그램 기능 자격증 입니다. 그리곤 취업을 나갔습니다. 용돈이라고 궂이 받아온것도 그럴 형편도 안됐었지만 저때부터가 제가 사회에 몸을 들인 시작이군요.

캐드 기능을 좋게봐서 선생님께서 그런일을 하는곳으로 보내주고 싶었다고 하시는데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왜관에서 QC일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하는데. 이후의 진학 및 취업 일을 위해서 부모님중 아무나 모셔 오라고 하더군요. 그때 어머니는 제가 학교 다니는 이래 첨으로 학교에 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좋은말로 어머니를 달래 주셨습니다. "민이는 잘하고 있습니다. 교내에서 1등이라고 생각 하고 있고 착실하고 해서 선생님들이 모두 귀여워 해주고 있어요."

저런말씀을 해주시는 선생님께도 감사드렸지만 생전 첨으로 아들 학교에 오셨고 그리고 선생님의 저런말에 어떤반응을 보여주실까..? 웃어주실까..? 라는 생각에 기대를 하고 어머니를 보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선생님과 면담이 끝날때까지 한결같았습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 뭐가 죄송하단 말씀이시지... 왜 죄송하단 말씀이시지...' 저때 당시엔 저런생각을하면서 어머님이 답답하기도 했었어요. 나중에 여쭤보니 학교에 얼굴한번 못내민게 죄송하단 말씀이셨다네요.

 

진학을 하기로 했습니다. 집이 지긋지긋해 일찍부터 독립한 누나는 2년제로 빨리 졸업이나 해서 돈이나 벌것을 추천했지만 전 그래도 아직 4년제 나오는게 맞다는 주변 형들의 말을 듣고 제가 사는곳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없는돈에 비싼등록금 내는 학교에 왜 들어갔냐는 분들도 있으실꺼 같습니다만 최대한 멀리 생각해봤을땐 그게 맞을듯 했거든요.

 

수능은 치지않고 수시입학 성적우수로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1년간 학교를 다니다가 병역문제로 휴학하고 입대날자를 받아놓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나는군요 2005년 4월 15일 현역1급 입대...-.- 어머니께 보여드리니... 이번에도 의외의 반응...

"요리로 저리로 빠져볼까 그딴생각 하지말고 조둥이 닥치고 가따온나."(사투리 그대로 쓴거임;)

... 음... 어머님이 노가다 생활 하시면서 남자들사이에 홀로 일하다 보니 말씀이 많이 억쌥니다.

그리고 2005년 3월 30일... '특례병'이라는 제도가 있는걸 알게됐고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글을 올려봤습니다. 고등학교때 딴 자격증도 있었으니깐요. 바로 다음날...전화가 오더군요. 면접보러 오랍니다. 갔죠. 이것저것 여쭤보셨는데 사장님과 면접엔 부모님 생신이랑 연세를 여쭤보시더군요. 평소 알고 있는바라 별다를 생각없이 말씀 드리고 면접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31일 4월 1일부터 출근하라더군요.

 

근데 그다지 반가울수 없었습니다. 조둥이 닥치고 다녀오라는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거든요-_-; ... 그래서 밤에 조용히 가서 대화를 청했습니다.

"마덜"

"와"

"이런게 있어서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서 글을 올려놓고 면접갔다왔는데... 출근 하라는디...이거 하면 안될랑가..? ☞☜... 아니 뭐 엄마가 걍 가따오라 캄 갔다오고..."

 

전 ... 군대갔다오면 얻는게 많다는 그런말때문에 궂이 보내실려는줄 알았습니다만 그게 아니더군요. 또 예상외의 반응..... 울음을 터트리시는 어머니................안그래도 달력보고 그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얼마나 속이 답답하시더라고... 잘됐다고...

 

특례생활은 힘들었습니다. 자리는 설계쪽 자리였으나. 현장에 일손 모자르면 가서 용접이랑 뺑기칠(페인트칠)을 해야했고 손님오면 커피 태워드러야했고 경리아줌마들 은행가면 태워드려야했고..뭐 ...월화수목금금금이였고 국가공휴일에도 출근을 해야했으니..; 아침 8시까지 출근인데 문을 제가 열어야 해서 30분정도 일찍 출근해야했고 집에서 출근거리 1시간 거리라 일찍 일어나야 했으나 퇴근시간은 뒷정리를 제가 해야해서 11시 12시는 되야지 집에 갔었죠.

그런생활도 1년을 넘기니 익숙해졌으나 몸이 피곤하다는 느낌은 없어질수가 없더군요. 시급제 였으나 100만원 이상나오면 100만원선에 잘라 버리는... 켁...

하지만 좋았죠 작은돈이나마 가정에 도움이 될수 있으니깐요.

후에 훈련소 가서 알게된일인데 더 좋은곳에 일한는 사람도 있었지만... 완전 외국인 노동자 취급받는 친구도 있더라는...;

 

그렇게 2년 4개월일을했는데 결국 부도가 나더군요. 그래서 경기도에 있는 회사로 나머지 기간을 채우러 갔습니다. 거긴 참 일이 깨끗했어요. 출장에 산전수전 겪은 저로썬 완전 놀고 먹으면서 할수 있는일들...-.-; '이래서 공부를 하고 좋은댈 가야되는구나' 라고 느낀곳..

 

나머지 시간을 다 채우고 2008년 4월달에 전역. 복학했습니다. 초기엔 경기도 회사에서 '공부만 열심히 해라 지원해주겠다. 졸업하면 오너라.' 라는 명목으로 몇개월 월급을 주셨는데, 거기도 휘청; 해서 더이상 바랄수 없게됐죠. 그래서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마덜"

"와카노"

"나 학교다니면서 엄마 일하는데 용역으로 들어가서 일하면 안될까?"

"중간에 관두면 죽인다."

 

 

-_-

 

글캐해서 학교다니면서 토욜 일욜 화욜. 화욜엔 수업이 없었서 노가다를 하게 됐습니다. 용역으로 들어갈랬는데 총반장님이 그럼 용역소에 10프로 때줘야된다고 아깝다고 직원으로 넣어주시더군요; 우리어머니. 강합디다. 그곳에서 어머니 일하시는게 '목수'일 이란걸 알게됐고 참 많은 이야길 들었습니다.

 

참 대단한 분이라고.

 

한결같이 모두 어머니를 우러러보더군요. 총반장 직속에 있고 ... 하기사 벌써 8년~9년 정도나 새벽 5시 30분에 나가셨습니다. 참 유능하신분 여러명 밑에서 일을 배웠고 경험이 엄청나시더군요.

실지 제가 일 갔을때도 오히려 반장 여려명에게 일을 가르쳐주고 계시더라는...

총반장님도 엄마 일 뭐할지 터치도 안하더라는...알아서 잘 하신다고...-_-;

 

겨울이 시작될때쯤에 일을 갔는데 ... 참... 눈물이 나더군요. 해가 다 뜨기도 전에 레벨기랑 삼발이랑 들고 올라가서 높낮이 맞추는걸 찍고 ... 눈이 안보여도 소리로 할수 있는일이라시면서...

먹놓는것도(먹을 뭍인 실로 바닥에 도면대로 표시를 해서 다른일을 시작하게 하는일) 총반장님이랑만 하시더라구요. 다른분은 숨넘어가면서 못따라 온다고...

여자 몸으로 연세가 53세 이신데.................

일한 첫날 눈물이 나서 억지로 움치면서 일을 하느라 혼났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 현제로 오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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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제는 2년 4개월동안 일했던...부도났던 회사에 사장님이랑 그 아들분이 다시 조그마하게 한다고 해서 거기 일 도와주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네요. 힘든상황이고 해서 그냥 점심이나 얻어먹는단 생각으로 와서 도와드립니다...^^;

요즘은 어릴때에 비해 참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릴땐 계란 후라이도 반찬으로 보기 힘들었거든요..; 넘어가는 집안 안넘어 갈 정도까지 만들었다랄까요. 저때보단 나아졌으니깐요; 어머니도 누나도 저도 참 많이 노력했거든요... 그치만 앞으로 더 노력 해야겠네요 아버지 빚이 2천5백만원 가량 있어서...Orz

 

시험기간인데 공부 하다가 잠시 쉴겸 판을 봤는데 제가 본 글쓴이분이 저와 비슷한 삶을 사신거 같아 글을 끄적이게 됐습니다. 이번학기도 장학금 탈려면 더 열심히 해야되는데 ㅠ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거 같기도 한데;;...다시 보니... 많은 이야기들이 빠졌지만 제 자서전 같군요;;

 제 인생을 되돌아보면 힘든 환경이였지만 언제나 긍정적이였는거 같습니다. 무엇이든간에 고민할땐 후회없는 선택이고 싶었고 선택을 했을땐 후회가 없도록 노력했습니다.

어떤일이든지 자부심을 갖고 임했고 스트레스가 싸이고 머리가 아플땐 내 지식이 된다 생각했고 몸이 힘들땐 돈을 벌면서 헬스장 다닌다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즐기려 노력했고 즐겼습니다.

 

자살같은 뉴스도 번번히 올라오는 요사이... 단점을 찾아 셀프스트레스 받는것 보단 자신을사랑하는 한가지 장점을 찾길 바랍니다.

 

생각나는대로 적다 보니 이야기가 서두도 없고 이건 뭐..-.-;

요즘 경기가 참 어렵네요. 이대로 졸업해봐야 취업이 힘들다고 하니 우리모두 자격증 공부를 준비해야겠습니다.. .^^;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첨에 적었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얻으셨길 바랄께요.

오늘도 모두 화이팅 합시다~

추천수3
반대수0
베플Borges|2009.04.22 08:29
어쨌든, 계셔주셔서 감사한 어머니와, 지켜줘서 감사한 아들과, 함께해줘서 감사한 가족들입니다. 앞으로도 늘 건투를..
베플킁킁이|2009.04.21 15:02
같은 남자로써 내가 너보다 형인데 좀 짱이다 너 . 그마음 변치말고 꼭 큰사람이 되길 기원한다. 무언의 박수를 보낸다 .
베플아무생|2009.04.22 10:16
각 없이 살고 있는 중생에게 큰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주신 글쓴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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