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스물 여섯 먹고도 기어이 학생 신분을 고수하고 있는 여자입니다.
제겐 1년 반 정도 사귄 동갑인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친구로 시작되었고, 제가 먼저 고백하고 사귄거라, 늘 저는 조금 더 사랑을 원하고 남자친구는 친구같은 관계를 원해서 싸우곤 했습니다.
그 사람이 워킹으로 호주에 간 지 반 년..
남들은 떨어져 있는데 뭐그리 싸우냐고 의아해 하지만..한 두달에 한 번은 싸웠네요.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하루에 약간의 시간이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안부를 묻고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한 저와 그걸 버거워하는 그 사람.
힘들면 이야기하고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저와 여유가 없으면 자기만의 성에 틀어박히고 싶어하던 그 사람(하지만 워낙 급한 제 성미탓에 그것조차 마음대로 못하고-_-;)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한 게 처음이고, 누가 마음을 줘도 두려워서 받지 못했었기에, 정말 이 사람이라 생각하고 흠뻑 사랑 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었던 저와, 그렇지 못했던 그 사람.
늘 저런 이유로 싸웠고, 어떻게든 하루 이틀 동안 대화로 서로의 입장을 얘기 해보고, 서로 미안하다 말하고 한 동안 애교 부리는 걸로 넘어갔었죠.
하지만 실은 제자리를 맴돌았을 뿐, 또 그 약발 다하면 싸우고 하기를 계속...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르네요. 근 1주일간 서로 돌아가며 화나서 몇 번이나 싸우다 말았다 하다가.
어제 오늘 끝장을 봤습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의 골자는 제가 매일 연락하는게 부담스럽고 자기를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솔직히 애교부리고 그러는 거 짜증난다. 자기 싫을 땐 그냥 좀 냅둬라. 살찌고 꾸미지 않는 제가 싫다. 입니다.
제 외모도 성격도 다 싫다는 말인데 왜 저랑 사귄건지..
그 외에도 제가 물어봐서 이것저것 본심을 말하던데,
그중에서도 가장 쇼크였던 건 역시 저와는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는 그 말이네요.
처음 시작하던 그 날, 그 사람이 다음 누군가를 사귀면 결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싶다고 말한 걸 계기로, 결혼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던 제가 그 사람을 대상으로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 네 살 짜리 남자애가 사귀기 전에 저 떠보려고, 아니면 저 떨궈 내려고 변명처럼 한 이야기를 믿은 저도 어리석었지만요. )
그 사람 워킹 가기 전에 한 동안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말을, 저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있되, 결혼에 대해 구체적인 예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서로 상대를 결혼 상대로 염두해 두자는 식으로 얘기했고 납득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 그 사람에게 제가 꿈꾸듯이 결혼 계획 이야기하고, 너랑 결혼하면이란 전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적금 2년 짜리 넣을까 3년짜리 넣을까 금리 0.1%때문에 고민하고...이런 것들이 모두 제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답니다.
자기도 그런 얘기 꺼낸 적 있었으면서..그건 뭔지. 그냥 저 혼자 생쑈하면 불쌍하니까 장단 맞춰준거겠죠.
여하튼, 저랑 결혼할 맘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니 모든게 이해가더라구요.
나는 그 사람을 어느새 결혼 상대로 대하는 바가 없지 않았고.
어딘가 늘 부족했던 그 느낌과. 약간의 불안함에, 튕기는 행동이나 밀고 당기기같은 건 할 줄 모르니 그냥 다 보여주고, 제발 지금보다 더 좋아해달라고 했으니..
질리는 그 마음도 이해가 가네요.
일단 헤어지는 건 유보했지만. 왠지 착잡해서 일촌도 끊고 사진도 지우고 방명록도 지우고 그랬네요.
아직 사귀는 거라 생각하는 그 사람에 대한 예의는 아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건 집착하게 될 것 같아서요.
저도 전화 좀 덜 하고 튕겨보고 싶은데, 절대 안되더라구요.
솔직히 하루 종일 목소리 듣고 싶어서 안절부절. 제가 하루 한 번은 전화했었죠.
또 싸우면 싸우는대로 저는 돌아서서 분이 안 풀려서 다시 전화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네거티브 네거티브 네거티브의 연속이라 정말 제가 죽어야 모든 일이 풀릴것만 같은 기분이 되기 때문에...저를 위해서 상대의 페이스를 신경 써 줄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은 시간을 들여 기분을 삭히고, 생각할 시간이 있어야 하는 데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죠.
한 번은 기분 나쁜 티 내고 싶고 짜증나서 연락 안하려고 일하는 가게 냉장고에 일부러 폰을 두고 퇴근한 적도 있습니다.
여하튼, 그 사람이 준 유보를 감사히 받고 조금씩 마음 정리를 해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솔직히 그동안 쓸 데 없는 부분에서 많이 주고, 정작 그가 원하던 걸 주지 못해온 게 아깝고 아쉽고, 이래저래 같이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미련도 많이 남고, 좀 얄밉기도 하고..
이래저래 그 사람이 해주기로 했던 것들 받지 못해 아깝기도 하지만(아이고 속물근성!)
안 좋은 부분은 닮고, 정작 중요한 부분은 다른 두 사람이 여기까지 사귄 것도 대단하다 생각하고 인연이 아니라고 여기려구요.
다음에 누굴 만난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주고 싶지 않네요.
저란 인간이 쿨하지 못하다는 거 너무 잘 알게 되었어요.
정말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습니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 보다, 둘인데도 외로운게 더 잔인하네요. 그리고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좀 더 멋진 여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고, 한 인간으로서도 당당해지고 싶네요.
항상 명치쪽이 아프고 답답한데 오늘은 왠지 더 심하네요.
조금만 더 아파하면 웃는 날도 오겠죠. 그 사람과 함께 건 아니건..
두서도 없는 글이라 그저 죄송하네요. 경황도 없고 울다가 쓴웃음 짓다가 정신줄 놓은 상태로 써서요. 죄송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