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칸 2009-05-14]
첫 만남이라는 것이 그렇다.
설렘과 기대감이 앞서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존재한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랬다. 햇살 때문에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한 5월11일. 영국 맨체스터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타고 그가 있는 카링턴으로 가는 길 내내 기대감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검문소 2개를 지나 마침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훈련장에 들어섰다. 아우디를 타고 급하게 훈련장을 빠져나가는 판 데르 사르를 보면서 그와의 약속 시간이 다 됐음을 알았다. 그리고 잠시 뒤 건물 안쪽에서 박지성이 나타났다. 축구대표팀을 취재하며 여러 차례 얼굴 도장은 찍었지만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쉽게 말해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는 사이였다. 잘 모르는 남자끼리의 만남. 역시 어색했다. 하지만 축구라는 공통분모를 통한 탐색전이 끝나자 이내 어색함은 사라졌다.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굳은 표정으로 단답형 대답만 하던 박지성도 어느새 소파에 어깨를 기대며 미소를 보였다.
사랑과 이상형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박장대소하며 먼저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려운 소개팅 같았던 박지성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예정됐던 30분을 훌쩍 넘겨 1시간가량 진행됐다.
#축구 선수 박지성, “내 축구는 열정이다”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했다. 팀도, 개인적으로도 대단한 영광일텐데.
“팀이 작년에 우승했다. 2년 연속 결승 진출은 정말 힘든데. 너무 기쁘게 생각한다. 팀의 일원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퍼거슨 감독이 지난 6일 아스널전이 끝난 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번에는 로마에서 경기할 것 같은데.
“특별히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작년에도 (좋은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될지는 경기 당일까지 가 봐야 안다. 내가 할 일은 경기날까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다.”
△거스 히딩크 첼시 감독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는데 FA컵과 챔피언스리그 모두 못 만나게 됐다. 서운하지 않나.
“(웃으면서) 전혀 없다. 연락 안한지도 꽤 됐다.”
△지난해 준결승에서 만났던 바르셀로나와 결승에서 격돌한다. 바르셀로나를 어떻게 보나. 리오넬 메시에 대해서는.
“일단 세계 최고의 팀과 결승에서 붙어 좋은 승부가 될 것이다. 공격적인 모습이 좋다. 결승에서도 그런 모습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잘 준비해야 한다. 작년 시즌에 바르셀로나와 경기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메시는 호날두와 비교되는 세계 최고 선수 중 한 명이다. 상당히 위협적이다. 어떤 수비수를 만나도 자기 역할을 다 하는 선수다.”
△맨유와의 재계약에 대해 한국은 물론 영국에서도 관심이 많은데.
“들은 얘기가 아직까지 전혀 없다. 초조하지는 않다. 만약 구단이 원하지 않는다면 여기 계속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맨유에서 통산 12골을 기록하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사진을 보여주며) 통산 10호골까지만 준비했다. 개인적으로는 4호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기억에 남는 골을 꼽아달라.
“다 비슷비슷하다.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너무 적게 넣었다고 생각한다(웃음). 더 많이 넣었어야 하는데.”
△10년 후 또는 20년 후 축구 선수 박지성은 뭘 하고 있을까.
“뭔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 일단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뭘 하고 있을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유소년 관련 일은 확실한데 그 외의 다른 일은 잘 모르겠다.”
△한국축구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가장 필요한게 뭔가.
“유소년 시기부터 축구를 즐기는 것이다. 교육적인 시스템이 잘 적용돼야 유소년들이 좀더 좋은 마인드로 유럽 선수들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경기에 임할 수 있다. 유럽은 자기가 생각하는 축구를 많이 한다. 틀에 박힌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체벌도 있어 생각의 범위를 많이 좁히지 않았나 한다.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주저없이) 열정이다. 그동안 축구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었다. 열정이 다 하면 그만두겠다. 물론 열정은 그대로지만 몸이 안 따라줘도 그만둘 수밖에 없다(웃음). 마흔이 됐는데 열정이 그대로라고 계속 선수생활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축구선수 박지성의 꿈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보다 나은 선수가 되는 것이다. 많은 우승 트로피보다는 내가 얼마나 좋은 선수가 되는가가 중요하다. 선수로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은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좀더 좋은 선수가 되는 게 중요하다.”
△좀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특별히 고민하는 건 없지만 지금보다 좀더 좋은 경기, 경기장에서 좀더 좋은 모습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박지성에게 축구란, □□□□ 로 정의하면.
“살아있는 이유다. 축구가 없으면 내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축구를 할 것 같다.”
#20대 남자 박지성, “아직까지 뜨거운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20대는 일과 사랑을 동시에 좇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일에서는 성공했다고 보는데 사랑은 알려지지 않아 잘 모르겠다. 다른 20대처럼 뜨거운 사랑을 해 본적이 있는가.
“못 했으니 이러고 있지 않겠나(웃음). 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 같다. 한국에 거의 없으니 누굴 만날 수 있는 시간도 없다. 남들이 하는 연애 생활을 해보지 못했다. 아직까지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부모님의 도움없이 20대에 박지성처럼 크게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요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고민하는 20대가 많은데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내가 온 길은 전혀 다르다. 다만 힘들다고 하지만 이 시기에도 성공한 사람은 있다고 본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믿음과 열정,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분야든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기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나 역시 축구 인생을 따져보면 이제 20년이 다 되어간다.”
△자서전에서는 인내심이 많은 여자를 이상형으로 꼽았다. 변함없는가. 20대 일반 여성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웃으면서) 정말인가. 달라진 것은 없다. 내가 처한 상황이 남들과는 다르지 않은가. 그 점을 이해해 주고 인내하는 분을 만나고 싶다. 분야에 상관없이 그런 분을 찾는다. 하지만 이상형대로 만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한민국에 연애하고 결혼한 분 중 이상형을 만난 분이 얼마나 될까. 100%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외국 여성도 결혼이 가능한가.
“(단호하게) 아니다. 한국 여성만 가능하다.”
△축구에 관련된 것 말고 다른 고민이 있다면.
“특별한 것은 없다.”
△이번 시즌을 끝내고 휴가를 받아 한국에 가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대표팀 경기가 있어 휴가가 짧을 것 같다. 특별히 할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없다. 휴식하고 친구들 만나는 게 전부일 것 같다.”
△갑자기 생각난 질문이다. 지난 주말 김남일이 장거리 슈팅으로 자책골을 넣었다. 알고 있나.
“그랬나. 앞으로 못 넣으니까 뒤로 넣는구나(웃음).”
△이거 기사로 나가도 되나.
“괜찮다. 이 정도 이해 못해주면 끝나는 거다(웃음).”
TV를 통해서 보는 박지성의 인터뷰 모습은 한결같다. 모범생다운 답에 변하지 않는 톤의 목소리까지. 하지만 직접 만난 박지성과의 인터뷰는 TV와는 전혀 달랐다. 인터뷰 도중 나온 박지성의 어록을 모아봤다.
△“앞으로 못 넣으니까 뒤로 넣는군요. (이런 농담) 이해 못해주면 관계 끝나는 거지.”=절친한 사이인 김남일이 주말 J리그 경기에서 자책골을 넣었다고 하자.
△“어렸을 때부터 우정은 없었어요, 사랑이죠. (정)경호도 아마 사랑일 거예요.”=사랑과 우정 중 어느 것이 중요하냐는 질문에.
△“아~긱스를 넣을까 루니를 넣을까. 고민되네요.”=박지성의 ‘베스트 11’을 얘기해 달라는 부탁에 왼쪽 공격수 자리에 어떤 선수를 넣을지 고민하며.
△“이건 저 죽으라는 얘기죠.”=원더걸스와 소녀시대 중 어느 쪽에 더 맘에 드냐는 질문에 어느 한 쪽을 선택한다면 누리꾼의 집중 공격을 받을 거라며.
△“이상형과 반드시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요.”=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대답 후 하지만 주변에 결혼하는 분을 보면 꼭 이상형과 결혼하는 것은 아니라며.
△“(조)원희는 말을 안 들어서 안돼.”=국내선수 ‘베스트11’ 후보 명단에 조원희를 추천하자.
△“메시보다는 호날두죠. 동료냐 아니냐를 떠나 신체 조건이 호날두가 더 좋잖아요”=호날두와 메시 중 누가 최고 선수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 비슷하다. 다만 너무 적게 넣었다는 생각만 든다.”=맨유 입단 후 기록 중인 12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을 묻는 질문에.
‘내맘대로 베스트’였지만 박지성은 신중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선수들의 능력은 확신할 수 없다며 함께 뛰어봤던 선수들만 후보로 거론했다.
팀을 이끄는 ‘카리스마 부문’에서 박지성은 홍명보 20세 이하 한국청소년대표팀 감독과 로이 킨 입스위치 타운 감독을 꼽았다. 홍명보는 설명이 필요없는 한국 대표팀의 영원한 카리스마. 로이 킨에 대해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기만의 캐릭터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헤딩 능력’에서는 맨유의 동료 네마냐 비디치를 최고수로 인정했고 ‘심폐 지구력 부문’은 웨인 루니와 카를로스 테베스, 그리고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함께 뛰었던 필립 코쿠를 택했다. 이어 박지성은 “한국 선수들은 모두 심폐 지구력이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최고의 왼발’을 묻는 질문에는 “라이언 긱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했고, ‘최고의 오른발’을 묻자 “많은 선수가 오른발을 쓰기 때문에 고르기가 쉽지 않다”며 한동안 생각한 뒤 “폴 스콜스를 택하겠다. 정확한 킥력은 정말 탁월한 것 같다. 훈련 중 화장실 가는 동료들의 뒤통수를 장난 삼아 공으로 맞힌다는 얘기는 농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내맘대로 베스트 11’을 만들어 달라는 질문에도 박지성의 신중함은 계속됐다. 함께 뛰어보지 않았던 선수들은 일단 후보에서 제외했다. 물론 차범근 수원 감독처럼 예외는 있었다.
박지성의 ‘국내 선수 베스트 11’은 2006년 팬 미팅때 밝혔던 그대로였다.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박지성의 선택에는 변화가 없었다.
4-3-3 포메이션을 기준으로 황선홍 부산 감독을 원톱에 배치했고, 좌우 공격수로 자신과 차범근 수원 감독을 택했다.
미드필더에는 은사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과 유상철·김남일을 배치했다. 포백은 하석주 전남 코치·홍명보 청소년대표팀 감독·이임생 수원 코치·이영표로 구성했고 골문은 이운재에게 맡겼다.
교체 멤버를 묻자 “친한 선수들을 넣을게요. 정경호·안효연…(조)원희는 안되겠네요. 말을 잘 안들어서”라고 말했다.
해외 선수들로 ‘베스트 11’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처음에는 “생각하는데 한 30분은 걸릴겁니다”라며 난색을 보이던 박지성. 하지만 이내 “원톱에는 판 니스텔로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신중한 속내를 공개했다.
4-4-2 포메이션을 기준으로 판 니스텔로이와 카를로스 테베스가 투톱, 미드필더는 왼쪽부터 라이언 긱스(웨인 루니)·필립 코쿠·폴 스콜스·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택했다.
박지성은 “왼쪽 공격수가 고민이다. 긱스도 좋고 루니도 좋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 선택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수비라인은 맨유 동료가 차지했다. 왼쪽에 에브라, 중앙에 퍼디낸드와 비디치 콤비를 그대로 배치했다. 골키퍼에도 판 데르 사르를 선택했다. 다만 오른쪽 수비 자리는 비워뒀다.
〈스포츠칸 김종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