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사기꾼
사기(詐欺)라 함은 타인을 기망하여 그릇된 판단에 빠지게 하는 행위다. 그로 인하여 사기당한 사람이 손해를 볼 경우는 범죄가 성립된다. 보통은 손해 본 재물보다도 신뢰를 배신했다는 점에 더욱 비난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거짓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 할 수도 없다. 우리는 크건 작건, 또는 서로가 모르고 당하건 아니면 그냥 속아 넘어가주건 관계없이 서로 사기치고 사기를 당한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이나, 1950년대에 상류층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수많은 여성을 유린한 박인수라는 바람둥이는 그래도 순진한 편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가 분명히 사기성이 있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하고 고단수의 사기꾼은 그렇게 어설프지 않다. 사기 당한 사람들에게 조금도 억울함을 느끼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사기를 쳐 달라고 사람들이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자마자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흑인이 한국인 여성을 목 졸라 살해한 사건인데, 법정에서 여자의 목에 난 손톱에 긁힌 자국이 과연 흑인의 손톱에 의한 것이냐를 따지는 중이었다. 흑인은 미리 손톱을 짧게 자르고 출정했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미국인 변호사가 엉뚱한 변론을 펼쳤다.
"흑인은 손톱이 자라지 않습니다."
판사와 검사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 당시만 해도 육이오동란 전이니깐 미군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았던 시절이었고, 더구나 흑인을 먼발치에서라도 보면 신기한 눈으로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하던 때였다. 어찌 보면 아프리카 원숭이처럼 생긴 흑인이었으니 판사와 검사는 미국인 변호사의 자신감 넘치는 일성에 침묵하고 말았던 것이다. 변호사의 지시에 따라서 두 손을 활짝 펴 보이는 흑인의 손가락 끝에는 손톱이 짧은 형태로 붙어있을 뿐이었다. 이런 경우는 완전히 법정사기다. 지엄한 판사와 검사에게 사기 쳤으니 나중에 벌을 받아야 마땅할 일이겠지만, 법정공방을 주고받을 당시에는 판사도 몰랐다. 검사도 몰랐다. 흑인의 손톱이 자라는지, 안 자라는지...... 나중에 어떤 판결이 났는지는 모른다. 다만 기겁한 판사와 검사는 수선스럽게 오가며 물어보았겠지,
"흑인들은 손톱이 안 자란다고 하는데 맞는 말인가요?"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유럽에서 평생 동안 사기만 치며 산 사람이 있었다. 물론 사기죄로 수없이 처벌받았던 사람인데, 그가 확실하게 경찰을 침묵시킨 사건이 있었다. 돈을 확실하게 버는 비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신문에 광고를 내고는 회원을 모집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는 대가로 온라인통장을 통하여 거액을 챙겼다. 그리고 돈을 보내온 사람들에게 돈버는 비법을 적은 편지를 발송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준다며, 나처럼 신문에 광고를 내십시오. 회비를 받아 챙기십시오. 그리고 지금 보내드리는 이 내용을 그대로 상대편에게 편지로 보내십시오."
이런 경우는 사기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고차원적이다. 돈을 벌 수 있는 비법을 알려고 내가 돈을 보냈듯이, 나도 돈버는 비법이 있다고 광고를 내어서 그 비법을 알려는 사람에게 대가를 받으면 되는 것이다. 사건을 수사한 경찰들은 혀를 내둘렀다. 떳떳하게 사기를 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 사람을 처벌할 방도가 없었으니, 먼저 출발한 장사에 불과할 뿐이었다.
며칠 전에 데이비드 카퍼필드라는 세계적인 마술사가 내한했다.
12살부터 사람들 앞에서 마술공연을 했으니, 지금 그의 나이가 47세라고 하니깐, 삼십 오년을 사기 치며 살아온 셈이다. 마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눈속임이다. 뻔히 눈뜨고 당하면서도 사람들이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눈속임이라는 것을 미리 알기 때문이고, 또한 마술이라는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꿈과 동경을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비행기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거나, 두터운 만리장성을 그냥 뚫고 지나거나, 쇠톱날에 허리를 두 동강 나고도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는 장면은 모두가 눈속임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은 환호한다. 그리고 더 큰 사기를 쳤으면 하는 기대를 걸기도 한다. 세계적인 사기꾼에게 당하는 기분은 황홀하기만 하다. 사기는 지력싸움이다. 지적인 힘이 강해야 상대방을 속여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추앙받는 이유도 멀쩡히 뜨고 있는 눈앞에서 귀신 같이 속이는 기술과 정신력에 있다고 보여 진다.
내가 어렸을 적에 동네에 할머니 한 분이 사셨다. 할아버지는 한약방을 하는 분인데 좀처럼 보기가 힘들었으니, 약재를 구한다고 오랫동안 집을 떠나곤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대단한 난봉꾼이었다. 알고 보면 어떤 여자하고 눈이 맞아서 집을 떠난 것이었으니, 할머니의 말대로라면 "그 놈의 영감탱이는 계집질에 썩어 죽고 말거야."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처녀시절 때에 할아버지는 귀찮게 졸졸 따라다니며 할머니를 꼬였고, 할머니의 부모에게도 절대로 속 썩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잘 데리고 살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하고는 혼인했다. 그러나 난봉꾼 기질은 타고 태어난 것인지, 혼인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눈을 외간여자에게 돌리기 시작했으니 뻑 하면 약초 구하러 나간다는 핑계였다.
첫날밤에 아기를 가졌는지 결혼 한지 열 달 만에 덜컥 아기를 낳았으며, 어쩌다가 집에 들어온 할아버지와 모처럼 잠자리라도 할라 치며 영락없이 그날 밤에 임신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할머니가 가끔 "애새끼 깔려고 집에 들어왔다."라고 말했던 이면에는 뺀질뺀질하게 놀던 할아버지의 미운 행동에 대한 감정이 품어져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평생을 속상했던 일은 할아버지의 난봉기질이 아니라, 거짓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것이었다. 남자가 아내에게 죄를 지면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고,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멀쩡한 일도 그냥 거짓말로 때우려고 덤빈다. 그래서 할머니는 말했다.
"저 웬수는 숨 쉬는 소리도 다 거짓말이야."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오십 대에 들어서 동네의 젊은 여자하고 눈이 맞아서 또 도망쳤으니, 집안에 있던 돈 뿐만이 아니라 혼인할 때에 마련했던 할머니의 패물까지도 몽땅 가지고 떠났다. 그리고 오년 이상 소식을 끊어버렸다. 멀리 경상도 어디쯤에다가 그 여우같은 년하고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만 들릴 뿐이었다. 할아버지보다 두 살이나 연상인 할머니가 환갑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집 근처에서 어슬렁대는 할아버지와 저녁에 마주쳤다. 쌩 하고 얼굴을 돌리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집에 뛰어 들어온 할머니는 대문을 꽉꽉 잠그고는 자식들에게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자식들이 모두 나서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들어왔으니, 얼굴은 초췌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넘치던 기백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어림짐작으로는 젊은 여자에게 있는 돈을 몽땅 빨려버리고 그나마 여자는 다른 남자와 붙어서 도망친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골방에 쳐 박혀 졌다. 밥도 같이 먹기 싫다고 불처럼 펄펄 날뛰는 할머니 기세에 며느리는 골방으로 할아버지의 밥상을 날아야 했다. 안방에서 모든 식구들이 모여앉아 하하 호호거리며 밥을 먹을 때에도 할아버지는 골방의 문을 빙긋이 열어놓고 멍한 시선으로 혼자 수저를 떴다.
한 집안에서 할아버지의 눈조차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할머니의 행동은 오뉴월의 서릿발처럼 쨍쨍 했지만, 김치를 담글 적에 남의 눈을 피하여 얼른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굴을 한 움큼 더 집어넣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찬바람 도는 할머니에게 말도 못 붙이고 날로 수척해 갔으니, 남모르는 병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툇마루에 쓰러진 할아버지를 아들이 엎고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는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내렸고 한 달도 못 되어 할아버지는 운명했다.
가장 사랑한 사람이 가장 미운 법이고, 죽도록 미워한 만큼 떠난 사람이 애석한 법이다. 겉으로 내색을 안 하려던 할머니였지만 나지막한 언덕에 할아버지가 묻히는 순간에는 기어이 오열하고 말았다.
"이 못난 사람, 죽어도 싸지 싸, 먼 세상에 가서 실컷 계집질이나 하던지 해."
아들은 할아버지가 운명하기 직전에 "너무나 네 어미에게 미안하구나."라는 말을 했다고 할머니에게 전해 주었다. 울던 할머니는 그 말을 듣더니 발칵 성을 내며 아들에게 소리쳤다.
"네 에비가 한 말을 믿냐? 그 웬수는 죽는 것도 다 거짓말이야."하고 울먹였으니 평소에 할머니가 얼마나 할아버지를 믿고 싶어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매년 할아버지 제삿날만 되면 할머니는 제일 먼저 일어나 슬며시 음식장만을 했다. 가끔 아들과 며느리는 서로 눈짓을 하며 일부러 제삿날을 잊어버린 척 했다. 아침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아들이 오늘은 모두 나가서 외식이나 하자고 말을 슬쩍 던진다. 그러면 할머니는 달력을 먼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오늘이 음력 며칠이냐고 슬쩍 물었다. 나오는 웃음을 찡그리는 얼굴로 참고는 며느리가 달력을 한참 바라보다가 할아버지 제삿날이 오늘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띠며 수선을 떤다.
아무도 없을 적에 아들이 물었다.
"그래도 아버지를 무척 좋아하셨죠?"
그러면 할머니는 흰눈을 히뜩 보이며 한 마디로 내쳤다.
"내가 네 애비에게 사기 당해서 시집온 것만 알어."
아들은 또 추근추근 댔다.
"그래도 자식들은 사기가 아니잖아요."
어떤 사기꾼이라 하더라도 남편처럼 대단한 사기꾼은 없다. 모두 말뿐이지 도대체 지켜지는 약속이 몇 개나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토록 용서하고픈 사기꾼이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일단 아내에게는 말이라도 번드르르 하게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지켜지지 않는 뻔한 공수표라도 자꾸 떼어 주다보면 그나마 효력은 있다. 모든 관중이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더 큰 마술을 부리길 바라는 것처럼 우리의 아내는 알고 속아도 좋으니 남편이 더욱 큰 사기를 치기 바랄지도 모른다.
남편 묘비명: 평생을 아내에게 사기 친 자 여기에 잠들다.
아내 묘비명: 다 알고 속은 자 여기에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