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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의 표상

은하철도 |2004.06.18 11:26
조회 294 |추천 0
 

무심의 표상



인구 이백 만 시대부터 서울에서 살던 나는 그 열배의 인구인 천 이백만 명이 바글바글 거리는 서울을 대할 적마다 현기증을 느낀다.  그러니 밖에만 나서면 고층아파트가 빙글빙글, 사람들이 복작복작, 자동차들이 줄줄...... 정신이 없다.  밤이면 휘황찬란한 네온간판들이 공중을 뒤덮어 달과 별이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대낮에도 공해로 물든 뿌연 하늘이 자주 보인다.  가끔 상념에 젖는다.  왜 우리는 이렇게 모여서 살아야 하는가,  사람과 사람간의 간격을 조심스럽게 재본다.  인구 백만 시대에는 약 100미터, 오백만 시대는 50미터, 천만시대는 25미터, 그리고 지금의 인구밀도로 봐서는 거의 비비적거리며 사는 것이 분명하다.  인구 이백만 시대의 서울은 전차가 한가한 종로를 달랑거리며 달렸었는데, 그 후로 길이 넓혀지고 전차가 사라진 후에 급격하게 늘어난 자동차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제는 땅속에 굴을 이리저리 파고는 동서남북으로 전철을 달리게 하니 그 분주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제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 7억원을 간다는 자동차가 선 보였다. 

나는 눈을 찡긋했다.  어떤 멍청이가 저렇게 비싼 자동차를 산다는 말인가,  물론 남북통일이 되어서 북한을 통하여 만주벌판, 그리고 중국이나 소련 땅을 마구 달릴 수 있다면 그런 자동차도 필요하겠지만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달려봐야 겨우 500키로도 안 되는 우리나라의 넓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도로는 이미 자동차로 꽉 덮여 있기 때문에 속도도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성질내며 달렸다가는 곳곳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철컥철컥 찍혀서 날아오느니 교통위반딱지다. 그 비싼 자동차가 시중에 나오자마자 벌써 서너 대가 예약된 상태라고 하니, 돈이 많으면 저절로 멍청이가 되는 모양이다.  아니면 돈지랄이겠지,  부산을 내려가라고 그 차를 나에게 준다고 해도 나는 안 탄다.  그냥 고속철 타고 내려가면 비용도 싸게 들고, 빠르고, 편하고, 교통사고 당할 염려도 없다.  무엇보다도 항상 내가 미안해하는 공해유발을 하지 않아서 좋은 것이다. 


공해라고 하면 나의 책임도 크다.  왜냐하면 나의 운전경력이 16년을 넘어서는 것이니, 지구를 열 바퀴는 더 돌았을 것이다.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휘발유를 공중에 날렸으며 공해를 뿌리고 다녔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섬뜩하다.  앞으로 지구의 재앙은 자연으로부터 온다고 이미 백악관의 비밀문서에서 밝혀진 바 있다.  지구의 온난화현상으로 남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높아지면 그만큼 육지가 바다로 변한다는 것이고, 온난화현상으로 기존의 지구시스템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변화의 가속력이 붙게 되면 하루아침에 우리는 노아의 방주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해수면온도의 상승으로 날마다 태풍이 몰아치고 생태계의 변화로 온갖 동물과 식물이 혼란을 일으켜서 열대의 바나나가 지리산 꼭대기에 열리기라도 한다면 참으로 기쁜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다.  쯧, 서울에 야자수 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데.


가끔 서울의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에 꽉 들어찬 자동차를 바라보며 한숨을 퍽퍽 쉴 적도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뒷골목까지 꽉꽉 자동차가 들어찬 서울인데 어찌하여 저렇게도 사람들이 자동차에 연연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가용을 몰고 나가면 시간약속을 할 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 차량통행이 막혀 공회전만 붕붕거리고 서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주차공간도 없다.  그럭저럭 안전한 곳에 차를 세워두려면 유료주차를 해야 하는데, 멀쩡한 날에 돈 뜯기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으면 전철을 이용한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들락거리는 것은 영 마뜩치 않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바로 전철이다.  빠르다. 정확하다. 가면 금방 탈 수 있다.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온다.  신문도 한가하게 앉아서 볼 수 있다.  물론 이때는 탑승자가 별로 없을 때이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자동차에 대한 매력을 상실해버렸다. 

7억원 자리 좋아하네.  재주 있으면 달려 봐. 날개 달린 자동차야?  내 차는 팔아봐야 25만원, 그것도 작년 이야기로 25만원 준다고 했는데, 내가 앞에서 얼쩡거리면 7억원 자리 자동차는 분해서 어떻게 내 꽁무니에 매달려 내가 푹푹 뿜어내는 매연을 먹으며 서 있을까?

한마디로 논센스다.  물론 부자인 상류층을 고객으로 노린다고 판매회사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아무리 돈이 많기로서니 그 비싼 자동차를 매연에 찌든 거리에, 꽉꽉 막힌 도로에, 곳곳에 무인카메라가 설치된 고속도로에 갖다 놓는다는 말인가,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찍히면 돈으로 때우며 기분 내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돈지랄하려면 해 봐라.  국가재정에 이익 되는 일이니깐,  애국도 별의 별 애국이 다 있군.


못 마땅한 얼굴로 한참 궁시렁거리고 있다가 나는 퍼뜩 스치는 생각에 벌떡 일어섰다.  어젯밤에 건물 뒤에 있는 주차장이 꽉 차서 집 앞의 도로에 그냥 주차시켜둔 나의 자랑스러운 25만원 자리 자동차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론 7억원 자리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  계산이 안 된다.  7억원 나누기 25만원이면? 

궁시렁궁시렁.


주차위반에 견인까지 당하면 7만원이 기본이다.  그리고 시간당 주차요금이 또 올라간다.  언젠가는 견인당한 내 차를 일부러 안 찾아온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싹 돌아서서 뭔가를 살짝 하는 사이에, 별안간 주차단속요원이 싹 나타나더니 노란딱지를 탁 붙이고 사라진 것이다.  불과 5분 사이의 일이었다. 

히야, 눈뜬 채로 베인 코다.  살벌함의 극치였다.  그래서 열 받아서 그냥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차는...... 보나마나 앞다리 펄쩍 쳐들어진 채 질질 어디론가 끌려갔겠지.  열흘 후에 집으로 날아온 딱지가 있었으니 내 차를 잘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친절한 내용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돈 털자는 수법이지.

한참 고민했다.  25만원 자리 자동차니깐 그냥 내버려두어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과태료와 그 동안의 주차요금을 계산해 보니 20만원이 넘었던 것이다.  내 계산도 똑똑하다.  아무래도 차를 찾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그러나 사람만 정인가, 물건도 귀하게 쓰다보면 정드는 법이거늘 야박하게 돈만 따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법대로 하는 것뿐이에요.”하는 징수요원을 옆눈으로 힐끗 째려보며 돌아섰다.

“법 좋아하네.”


이럭저럭 서울에서는 자동차가 애물단지로 변해갔다.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구석에 쳐 박혀 있는 자동차는 언제 희희덕거리며 같이 시골길을 드라이브했냐는 듯 시쿤둥한 모습이었다.  나도 역시 좀 미안한 마음이었다.  마치 싱싱했던 마누라가 쭈그러지자마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혼자서 밖으로 도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점점 식어가는 자동차에 대한 애정을 직접 목격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급히 자동차를 쓸 일이 있어서 주차장에 가보니 자동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얼래?  누가 내 자동차를 훔쳐 갔지?” 황당한 기분에 넓지도 않은 주차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자동차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단 도난신고를 내야 하겠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는데, 문득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난 것이다.  며칠 전에 자동차를 몰고 나가서 일을 보고 돌아왔는데, 갈 적에는 자동차를 가지고 갔지만 돌아 올 적에는 깜짝 자동차를 잊고 전철을 타고 그냥 돌아온 것이다.  도대체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다.  16년을 자동차를 끌고 다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몰고 나간 자동차를 중간에 그냥 깜빡 잊고 노상에 방치한 후...... 전철을 타고 돌아오고...... 그 사실을 싹 잊어버리고 며칠을 지난 후에...... 주차장에 내려가서 내 차를 찾고 있다가...... 도난신고를 낸다고?


무심이었다.  무심은 자동차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항상 잔잔한 정을 주지 않으면 큰 정도 잃어버리는 이치와 같다.  복잡한 거리와 공해로 자동차에 대한 혐오감을 느꼈던 내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황급히 달려간 거리에 내 차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로 이산가족상봉과 같은 기분이었다.  며칠 동안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키를 꽂고 시동을 걸자 원망스러웠던 마음이 싹 돌아서면서 나를 끌어안았음일까,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바퀴는 굴러갔다. 

 

 

글 / 은하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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