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를 파하고 부리나케 집에 달려오면
엄마가 하시는 부업 일감이 집에 한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집 근처의 유리 공장에서, 화장품 샘플 병을 만드는데...
그 병에 스티커(@@@화장품 스킨, 로션..이라 쓰여있는 투명 스티커)를
하나하나 붙이는 일이 엄마의 부업이었습니다..
한 박스를 붙이면 얼마씩 주는 것이었는데..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개당 5원 정도 했던 것 같네요...
세 자매 중에서
셈을 잘 하는 저를 앉혀 놓으시고는,
엄마가 스티커를 붙인 병의 갯수를 세어서 박스에 담으라고 시키셨어요..
허리가 아프다고 징징 대면서 한 박스를 채우면, 엄마가 300원을 주셨답니다..
아버지 사업 실패 후 만화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네 자식의 학비에 보태려고 부업까지 하시면서 밤을 새시는 엄마 옆에서..
철없는 딸은 300원이 적다고 투덜대면서 병의 갯수를 세었지요...
그 300원씩을 모아서..."이달학습"이라는 책을 샀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다른 아이들 다 맞는 시험 문제를 저만 틀렸다고 나무라시던 담임 선생님께 보여드리러 달려갔습니다..
(당시는 이달학습,다달학습에서 시험 문제가 종종 나왔습니다..
언니가 물려 준 3년 전 전과밖에 없는 저로서는 맞출 수 없는 이상한 유형의 문제가 가끔 있었지요)
저도 이제 이 책을 샀으니까...다 맞을 수 있다고...
미처..그동안 이달 학습 한 권도 없이 거의 올백을 맞아왔다는 것을 못 믿으시겠다는 듯..
담임 선생님께서 제 얼굴과 제 손에 들린 책을 한번씩 번갈아 보셨습니다...
(그 일 이후..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선생님께서 각종 문제집을 제게 매달 주셨었죠..)
아마..그 선생님은 가능성 있는 제자가 흔한 문제집 한 권 사려고, 유리병을 몇 천 개나 세고 있었던 게 가슴이 아프셨었나 봅니다..
하지만 저는, 선생님이 주셨던 다른 문제집들보다
제가 모은 돈으로 샀던 그 이달학습이 얼마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다른 애들 다 맞는 문제를 반에서 1등 하는 너만 틀리다니.. 도대체 말이 되냐?" 고 무조건 혼 내시던 선생님께... 그 문제집을 들이밀 때...
어린 마음에도.. "돈이 없어서 틀리는 문제...이 책만 있으면 나도 안 틀린다"고 항의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왜 어린 시절의 일이 떠올랐냐구요?
실은 어제 우리 큰딸이 다니는 유치원 담임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너무 기특하다며...
어찌 된 사연이냐면..
감기 때문에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큰애가 이쁜 꽃 반지를 갖고 싶어하길래
하나 사서 손가락에 끼워 유치원에 보냈죠...
담임이 예쁘다면서 한 번 끼워 보자고 손가락에 대 보았는데...
유치원 선생님 손을 우리 딸이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눈물을 흘리더랍니다..
선생님은 "가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한 번 끼어 보려고" 하면서 서둘러 달랬는데..
우리 딸이..
"그게 아니라요..울 엄마 손은 선생님 손처럼 안 이쁘고...울퉁불퉁해요...
공부(일)을 많이 해서요.." 하더랍니다..
제 직업이 글씨를 많이 써야 하는 터라...펜을 잡는 세 번째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배겼는데..
그게 너무 커져서 사마귀처럼 보이거든요...
어린 딸의 눈에...제가 반지를 안 끼는 것이, 아마 손가락이 미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엄마는 참 훌륭하신 분이구나" 하면서 간신히 달래셨답니다..
그 말을 듣는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요..
우리 딸이 어느새 엄마의 고단함을 알 정도로 큰 걸까요?
어릴 적 ..집에 쌓여 있던 유리병과 밤새 스티커를 붙이던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저도 엄마의 뒷모습이 애잔해서 차마 문제집 사달라고 조르지 못하고, 밤새 뒤척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이 벌써 그만큼 컸다니...정말 대견하고...가슴 벅찼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성실함 하나로 네 자식 모두를 대학에 보내신 울 엄마...
저도 나날이 사랑스러워지는 두 딸과,, 두 달 남짓 후면 태어날 셋째 딸에게..
그런 성실한 엄마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세 자매에게 끈기와 성실을 가르치신 엄마처럼..
저도 제 세 딸들에게 올곧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겠지요...
사족:
꾸물거리는 날씨 탓인지... 일을 시작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오늘따라 시친결 님들 생각이 간절하네요..
오래간만에 들어와서 읽기 지루한 길 글만 남기고 갑니다...죄송..
모두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다음 주 수요일 마감 넘기고 다시 들어올게요..
총총..(참... 그새 독오른딸기님 컴백하셨네요..방가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