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은 지상파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송하지만 우리는 히트한 그 프로를 케이블·위성채널들이 그대로 수입해 방영한다. 부모의 관점에서 보는 결혼을 다룬 온스타일의 ‘리얼 러브! 허락해 주세요’와 가난한 남성이 백만장자를 가장해 배필을 찾는 OCN의 ‘백만장자와 결혼하기2’, 좋은 조건을 가진 싱글 남성이 아리따운 여성 지원자들과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데이트를 즐기는 리빙TV의 ‘배철러’ 등은 결혼을 주제로 한 대표적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Q채널의 ‘현장고발 치터스’와 영화·오락채널 XTM의 ‘제리 스프링거쇼’는 엄청난 시청률을 자랑한다. ‘배신’이 소재인 ‘치터스’는 르포 형식이다. 배우자나 애인의 의뢰를 받은 취재진이 상대방을 사립탐정처럼 밀착 취재한다. 증거가 확보되면 배신자를 직접 대면시킨다. 흥미로운 것은 바람을 피우는 대상이 대부분 가까운 친지라는 점이다.
‘제리 스프링거쇼’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저질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변태는 무죄’라는 제목으로 여자 팬티와 브래지어 차림의 남편이 나와 자신의 변태성을 폭로했다. ‘여보, 나 바람 피웠어’ ‘동성애인이 있어’ ‘네 애인은 내거야’ ‘나 사실 남자야’ 등이 방송된 제목이다. 얼굴이 화끈거릴 만한 내용도 많고 프로레슬링을 방불케 하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과연 저런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엄청난 출연료 때문일까? 아무리 케이블과 위성채널이 요금을 내지 않는 이에게는 서비스하지 않는다 해도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의 극단을 보는 것 같다. 이런 프로그램의 양산은 지상파 프로그램이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심리적 기반은 관음증이다.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실수와 사생활을 보면서 허구적 동일시, 나아가 가상적 우월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철저하게 계산돼 시청자들과 한바탕 벌이는 쇼다. 그래서 ‘리얼리티+쇼’라는 모순된 단어 조합이 성립한다.
스포츠서울닷컴 동영상 취재팀이 분석한 ‘치터스’와 ‘제리 스프링거쇼’의 몇 가지 특징을 보면 그 용어의 의미를 이해할 만하다. 우선 싸움은 붙고난 후 어느 정도 지나야 말린다. 마음껏 욕하고 벗은 뒤 ‘삐’소리와 모자이크로 처리한다. 쇼킹한 내용을 점잖은 사회자가 진행한다. ‘치터스’의 진행자 토미 그랜트와 제리 스프링거는 낯 뜨겁고 저질스러운 프로를 너무나 근엄하게 진행한다. 흥분한 게스트에게 은밀한 대답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스프링거는 오하이오주의 상원의원에도 도전한 대표적인 토크쇼 진행자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인기 배우나 작가가 필요없으니 제작비가 보통 드라마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러고도 시청률을 올려주니 방송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거세다.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자 파시스트적 상품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간통죄가 없는 미국 등과 달리 우리의 정서와 맞지 않는 내용도 적지 않다. 점점 더 강한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어디까지 갈지 의문이다. 소재가 고갈되면 케이블TV는 한동안 후유증을 앓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2001년 프랑스에서 첫 리얼리티쇼 ‘로프트 스토리(Loft Story)’가 방영되자 프랑스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한 외딴집에 20대 남녀 11명을 모아놓고 26대의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사생활을 그대로 보여줬다. 욕실과 침실장면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기야 영화 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 프로가 야기한 사회 문화적 현상들을 분석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유행에 대해 문화평론가 배국남씨는 “사회와 사람들이 합리와 세련, 진지함과 엄숙주의로 무장하면 할수록 그 반동으로 가공되지 않는 날 것, 탈권위적인 것에 대한 욕구가 리얼리티쇼의 엿보기 방식을 성행시킨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자본주의의 규격화된 감성상품’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으려면 어느 정도 수술이 불가피할 것 같다.
서병기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