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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코트 & 카바이트.

엠블렘 |2004.07.08 14:00
조회 362 |추천 0

옷을 입는다는 것에서는 이미 초등학교 때 부터 까다로웠다.

그것은 초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다주신 맥그리거 점퍼 때문이 었을 것이다.

왼쪽 가슴에 자전거그림과 영어로 맥그리거라고 씌인 옷을 길거리의 당시 여고생들이 하나같이 야 너 좋은옷 입었구나 하고 내게 말해 주었다..나중에 생각하면 70 년대 말에나 한국에 맥그리거가 들어왔는데 그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대부분 부모가 사다주는 대로 군소리 없이 입고다닐 당시부터 나는 까탈스럽게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로 입지 않았다.

해서 옷을 살때는 항상 같이 골랐다.

그런지경이니 내 10 대의 시절은 어떠 했으랴...어머니에게 부탁해서 미제물건 보따리 장사에게 미군용 레인코트를 사입었다.

특히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면 나는 미군용 레인코트를 꺼내 입고 길거리를 쏘다녔다.

짧은 학생 머리였지만 옷 차림 때문에 휴가나온 카투사 정도로 보였는지 대부분의 업소에도 무상 출입이었다.

단 한번도 신분증을 보자고 한적이 없었다...사실 보자고 한들 학생증 말고는 보여줄 것도 없었다.

 

70 년대 말과 80년대 초반의 종로 무교동 거리에는 좋은 음악 감상실이 즐비 했다.

한국 최고의 클래식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 인기 D.J. 박원웅이 운영하던 무아, 통기타 가수의 라이브가 이어졌던 약속, 타임 같은 유명한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물론 선비촌,세시봉, 같은 닭장,,이른바 밤10시까지 하던 미드나이트 고고장도 즐비했다...물론 불량 청소년이었던 나는 닭장도 무상 출입했다...중학교 3 학년 때 부터 종로와 광화문 거리의 꼴통들을 다 알고 지냈다...그리고 나 역시 그 꼴통중의 하나였다.

 

그해 가을과 겨울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어느날 역시 부슬 부슬 비가오는 날 나는 살인의 추억의 살인마 처럼 미군용 레인코트를 줏어입고 혼자 무교동 거리를 걷다가 타임에 들어갔다.

조금 추워서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생맥주를 시켰다...그리고는 통기타 가수의 노래를 혼자 들었다..

... 조 동진의 겨울비 ...

그 순간  단 한줄의 시귀절에 단 한구절의 노래에 자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가 진짜 시구나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날의 겨울비는 감동적이었고 충동적이었다...

내가 주머니에 쥐약을 넣고 다니던것은 그날 이후 였다...주머니에 쥐약을 넣고 다니는 10 대에게 세상에 무서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해 겨울 나는 결국 쥐가 먹는 약을 털어 먹은 이유로 해서 병원 응급실에서 입을 못 다물게 하는 것을 강제로 입에 물리운 채로 고무관을 위에 집어넣고 몇번씩 주전자의 물을 집어놓는 위 세척을 받아야만 했다....내 그렇게 많은 물을 마시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다...아마 전기 밥통만한 찌그러진 주전자로 5번 쯤 호스위의 깔데기에 드리 붇고 토해내게 했다...물고문이 따로 없었다.

어설프케 음독을 시도하다가는 죽음보다 더 고통 스러울 물고문을 당할수 있다...그것도 침대에 꽁꽁 묶여서...

병원에 10일 쯤 입원해 있는동안 졸업식이 있었고,,내 책가방을 들어주던 친구들이 충실하게 졸업장을 병원에 가져다 주었다...당시의 맨날 주사를 놓던 이쁜이 간호사 이름이 옥경이 였는데 그녀는 심심하면 링거주사의 투명 비닐라인으로 반지를 만들어 내 열손가락에 다 끼워 주었다..

 

P.S. 그래서 아마도 나같은 전력이 있는 인간이 ' 나 물 먹이지 마 ' 라는 말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그 말은 근래에는 '나를 물로 보지마' ...라는 식으로 진화 됐다..

그리고 쥐약의 맛은 70 년대 포장마차를 비추던 카바이트 불빛의 카바이트..바로 카바이트 냄새가나는 맛 한마디로 오바이트 할 것 같은 맛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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