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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성(城)을 향해 가는 길 [11]-마법의 주문을 외우다.※

미강 |2004.07.28 09:58
조회 3,863 |추천 0

 

 

 

11. 마법의 주문을 외우다.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해도 지금처럼 놀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놀랐다는 말로는 절대로 설명될 수 없었다.

 

 

모든 시간의 흐름이 딱 멈춰 버리고,

 

뛰고 있던 심장마저 멈춰 버린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웠다.

 

 

 

이건 아니야.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내가 너무 그리워 한 나머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그래, 맞아!

 

 

꿈이 아니라면 내가 이런 근사한 곳에

 

보기도 아까울 만큼 멋진 드레스를 입고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릴 리가 없잖아.

 

 

꿈이야! 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아니면 헛것을 보고 있던지.

 

 

그러나 하연의 정신없이 회전하던 꿈이라는 믿음도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꿈이 아니라서 안타깝군. 저런, 정말 놀라 버렸군. 괜찮아.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건 틀림없는 현실이니까.”

 

 

 

민혁이 손을 뻗어 하연의 볼에 갖다 대는 순간 꿈이라는 믿음도 깨졌다.

 

 

아니, 꿈이라고 믿고 싶었던 확신조차 없어져 버렸다.

 

 

따뜻한 감촉.

 

하연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마치 영화 속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앉아서

 

물컵을 집어 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유리가 이빨에 부딪혀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직도 그 사람은 하연의 뒤에 서 있었다.

 

하연은 두 눈을 있는 힘껏 꽉 감았다가

 

다시 반짝, 떴다. 또 다시, 뒤로 돌아봤지만 그대로였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서, 서…있네요, 당신. 두 다리로…땅을 딛고…이, 있어요….”

 

 

 

휠체어에 의지했던 그 남자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하연의 뒤에 서 있었다.

 

 

거짓말이라면 차라리 믿을 만큼.

 

사람이 너무 놀라면 태연하다고 했던가.

 

하연이 바로 그랬다. 목소리는 조금 떨렸지만 태연했다.

 

 

 

“…내가 물을 마셨고, 당신의 손을 느꼈고,

 

체온을 느꼈고, 숨소리까지 듣고 있으니까…그러니까…이건 현실이 맞는 거죠.

 

안 그래요?”

 

 

 

그런데도 이 남자는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창하게 말을 하던 사람이 입이 붙어 버렸는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하연은 자꾸만 마른침을 삼키며 테이블 위에 놓인 냅킨을 잡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번번히 떨리는 손 때문에 놓쳤다.

 

마침내 민혁이 그런 하연의 손을 붙잡으며 말렸다.

 

 

 

“이러지 마. 이럴 필요도, 이럴 이유도 없어. 그냥 돌아온 것 뿐 이야.”

 

 

“…그, 그럼 여기가 과거인가요? 당신, 과거로 돌아온 거에요? 그래요?

 

아니잖아요. 그럴 수 없잖아요.

 

그런데 당신이 왜…왜…그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거에요?

 

이런 당신 모습 본 적 있어요. 그 사진 속에서. 거기서 봤어요….”

 

 

 

“진하연! 하연아!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정신 차려!”

 

 

 

“…놔…줘요. 여긴 당신 과거니까…난 여기 있을 필요…없어요. 날…놔줘요.

 

나 갈래요. 가고 싶어요. 놔줄 수 있죠…?”

 

 

 

민혁은 숨죽이며 하연의 손을 가만히 놔 주었다.

 

하연은 천천히 옆에 놓아 둔 파우치백을 손에 들고서 테이블을 벗어났다.

 

 

한 걸음…두 걸음…세 걸음…네 걸음….

 

 

정확히 일곱 걸음 만에 하연은 풀썩 쓰러졌다.

 

 

하연이 카펫 위로 쓰러지기 바로 직전에 민혁이 가까스로 쓰러지는 하연을 안아들었다.

 

 

 

“…돌발상황이군. 때때로 기절할 수 있는 것도 도움이 되긴 하지.

 

깨어나면 괜찮을거야. 괜찮아. 이미 말했지만 난 다시 돌아온 것 뿐 이니까.”

 

 

 

민혁은 하연의 귓가에 대고 소곤거렸다.


 

 

 

☆★☆

 

 

 

 

 하연의 몸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하연은 어렴풋이 들려오는 음성과

 

덮여 있는 눈꺼풀 위로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한 불빛에 집중하기 위해 애썼다.

 

 

무엇인가가 있는데…뭔가 있었는데…그게 뭐더라…뭐였더라.

 

 

누군가의 손이 하연의 입술을 가만히 벌리고 차가운 물을 흘려 넣어 주었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맞아. 난 정신을 잃었었지.

 

 

눈앞이 빙빙 돈다고 생각했을 때 난 이미 쓰러지고 있었어.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하연은 눈을 번쩍 떴다.

 

 

 

“쉬…. 뭐라고 말하기 전에 물 한 모금만 더 마셔 봐.”

 

 

 

하연은 귀에 들려오는 말대로 했다.

 

한 모금 더 마시자 이젠 정말로 또렷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민혁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닿을락 말락하는 약간의 거리를 앞두고 있었다.

 

 

그제서야 하연은 자신이 민혁의 품 안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어린 아기를 두 팔로 안 듯이 민혁은 하연을 튼튼한 팔로 안고 있었다.

 

 

매우 단단한 성벽이 둘러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편안해서

 

하연은 스르르 또 다시 눈을 감을 뻔 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흩어지려는 정신을 모아서 눈에 힘을 주었다.

 

 

 

“…음. 이제 된 것 같군. 완전하게 정신을 차렸군.”

 

 

“허, 허리가 아파요. 내려 주세요.”

 

 

“나도 팔이 아파. 그런데 내려주기 전에 잠깐 옆에 앉지.”

 

 

“…왜, 왜요?”

 

 

“단추를 모조리 끌러 놨거든. 당신이 기절했기 때문에.”

 

 

 

사람이 기절했을 때는 일단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도록

 

꽉 조이는 단추를 풀어 놓는 것이 가장 첫 번째다.

 

 

하연은 민혁의 배려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도 단추를 하나씩 잠글 때마다

 

등이 화끈거렸다.

 

 

서른 한 개의 단추를 잠그는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민혁은 조심스레 단추를 잠그면서 하연의 목덜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잔머리가 살짝 덮인 하연의 곧은 목선은 민혁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민혁은 언제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단추를 차례차례 잠궈나갔다.

 

 

바짝 움츠린 하연의 등이 애처롭게 눈에 박혔다.

 

곧게 뻗어 내린 척추가 얇은 속옷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끝났어.”

 

 

“친절하시군요. 냉정하고 인정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비난은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하는 거야!”

 

 

 

민혁의 말에 하연은 돌아앉아서 민혁을 응시했다.

 

이미 흉측한 흉터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왠지 낯선 생각이 들어서 말끔한 민혁을 쳐다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가까스로 용기를 낸 하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도 돼죠?”

 

 

“아니. 안 돼!”

 

 

 

민혁이 하연의 손목을 꽉 움켜쥐고는 성큼성큼 예약된 자리로 데리고 갔다.

 

무시무시한 손아귀 힘에 질린 하연은 어쩔 수 없이 민혁의 손에 끌려갔다.

 

 

의자를 빼고 하연을 자리에 앉힌 민혁은 하연을 향해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내 허락 없이는 한 발자국도 못 움직여!”

 

 

 

하연은 민혁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사진 속의 모습보다 훨씬 더 멋진 모습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수려한 얼굴 속에서는 아직도 어둠과 그늘이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다.

 

 

눈 아래, 그리고 입술 주변…군데군데

 

어둠 속에서 세월을 보내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해!

 

 

그런 그늘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뗄 수 없을 만큼이나 멋져 보인다는 게

 

하연은 너무나 불공평하게 생각 되었다.

 

 

 

흉측한 흉터가 사라진 자리에는 약간 피부가 헐어 있었지만

 

창창한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연이 민혁의 변한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는 동안 음식이 나왔다.

 

 

 

“…속였어요.”

 

 

“일단 먹어. 먹고 나서 얘기해도 늦지 않아!”

 

 

“성격은 여전하군요. 모습은 바뀌었…!”

 

 

“훌륭한 음식을 앞에 두고 입을 비워놓는 건 모독이야! 먹어!”

 

 

 

하연은 못이기는 척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쥐면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야.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속은 그대로야.

 

 

제멋대로인 성격, 상대방의 말을 싹둑 자르면서 내리 누르는 말투.

 

 

너무나 낯선 그의 겉모습에 당황하다가

 

여전히 변한 데가 한 군데도 없는 민혁의 태도에 하연은 안도하는 중이었다.

 

 

익숙한 말투와 익숙한 눈빛, 너무나 당연스러운 그의 위압적인 태도.

 

 

 

“…안심해도 좋아!”

 

 

“네? 무, 무슨 말이에요?”

 

 

“의심했잖아! 나는 나야! 그러니까 불안해 할 필요 없어!”

 

 

“…불안해한 적 없어요.”

 

 

“거짓말은 언제나 불쾌해! 당신이라 참는 거야!”

 

 

 

하연은 자기도 모르게 배시시 번지는 웃음에

 

황급히 고기 조각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지나칠 정도로 마음과 몸이 함께 반응하는 게 가끔은 문제다.

 

 

양 옆으로 벌어지려는 입술 근육들을 붙잡아다가

 

억지로 우물거리려니 볼 근육까지 당겨왔다.

 

 

먹는 모습조차 그는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음식에만 집중하면서

 

이따금 맛을 느끼는지 잠깐 멈추었다가 먹기를 반복하는 그가 지금 하연 앞에 있었다.

 

 

또 다른 접시를 가져오자 민혁이 손을 들어 다시 물렸다.

 

 

 

“…과일?”

 

 

“아뇨. 생각 없어요. 냉수만 있으면 돼요.”

 

 

“됐어, 그럼.”

 

 

 

민혁은 냅킨으로 입을 닦은 뒤 한참동안 하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굴곡을 그리고 있는 하연의 맵시,

 

시뇽형으로 틀어 올려 진 머리카락,

 

언젠가 한 손에 쥐고 팔딱거리는 정맥을 느꼈던 곧게 뻗은 목,

 

가볍게 들썩거리는 가슴.

 

 

무엇보다도 살짝 홍조를 띈 하연의 보드라운 볼을 만져보고 싶었다.

 

 

그만큼 민혁 앞에 앉아있는 하연의 모습은 최고로 아름다웠다.

 

 

잘 차려 입기는 민혁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하연도 민혁의 잘 차려 입은 멋진 모습에 놀란 후였다.

 

 

주름 하나 없이 깔끔한 양복과 빳빳한 셔츠 깃,

 

커다란 커프스단추까지 흠잡을 데 없는 모습.

 

 

 

“…생각했던 대로야. 맘에 들어.”

 

 

“전…불편해요.”

 

 

“나도 거추장스러운 옷을 오랜만에 입으니 편하진 않군.”

 

 

“정말…멋져요. 거짓말 아니라는 것쯤은 알죠?”

 

 

 

그리고 또 다시 침묵. 멀리서 우수수수, 하며

 

나뭇잎이 몸을 떠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하연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일렁거리는 마음을 잠시나마 진정했다.

 

 

두근거리는 것도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것도 일단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지금은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지치지도 않고 놀라게 만드는 사람.

 

 

 

“…날 속였어요.”

 

 

“당신만 속인 게 아니라 다 속였지. 내 마음부터 이 세상까지 다!”

 

 

“어쨌든 날 속인 건 맞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래. 속였어. 그리고 이렇게 이실직고 했잖아! 그걸로 끝!”

 

 

 

하연은 지나칠 정도로 사람의 접근을 기피했던 민혁을 떠올렸다.

 

 

아무리 더운 날씨라 해도 집 밖으로 나설 땐 반드시 무릎담요를 덮고 있었고,

 

심지어 집에서조차 담요를 덮고 있었다.

 

 

원래 다리를 오랫동안 쓰지 못하면 근육부터 약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가로 가릴 필요가 있었으리라.

 

이제야 모든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얼굴은 어떻게 된 건가요?”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기술이지. 난 잠깐 그걸 빌린 거고.”

 

 

“덕분에 피부가 헐었군요.”

 

 

“…금방 나아지겠지.”

 

 

 

역시 하연이 생각했던 게 맞았다.

 

 

말끔해진 피부와 살짝 헐어버린 눈가를 보면서

 

하연은 특수분장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더랬다.

 

 

눈 주위의 피부가 가장 약하기 때문에 접착제로 인한 피부 손상은 감수해야만 했을 테지.

 

 

 

“당신 참 무서운 사람이에요. 그렇게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숨 막힐 정도로 무섭네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속였어.”

 

 

“…속인 게 아니라 감춘 거야!”

 

 

“그게 그거잖아요!”

 

 

 

어쩐 지 강인해 보이는 뒷모습.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몸의 한 부분이 불편하다면

 

반드시 약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손가락에 작은 가시 하나가 박히거나

 

얇은 종이에 살짝 벤 것도 극도로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만큼 인체는 유기적으로 한꺼번에 움직인다.

 

 

유난히 툭툭 불거진 민혁의 힘줄을 봤을 때 눈치 챘어야 했다.

 

 

왜 그걸 몰랐을까.

 

집 안의 모든 구조와 시설물들을 장애에 맞게 설계해 둔 것부터 시작해서

 

자유자재로 수동식 휠체어를 능숙하게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민혁에게

 

하연은 겁이 났다.

 

 

무서운 집념과 강철 같은 정신력으로 무장한 남자.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가요?”

 

 

“…죽어가는 내 마음을 살려달라는 건 진실.

 

그것만 알면 돼! 거짓은 그냥 다 버리면 끝나는 거야.”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말아요!

 

알 듯 말 듯한 말로 날 설득하려고 하지 말아요.”

 

 

“좋아! 당신에 대한 마음!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

 

그리고 당신한테 맡긴 내 심장! 됐어?”

 

 

 

민혁은 주저하지도 않고 군더더기도 없이 딱 잘라 말했다.

 

 

확신이 없는 것은 아예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고

 

확신하고 있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믿음대로 행동하는 거침없는 남자.

 

 

그 남자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하연은 드디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참고 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안 받아요! 그런 것 따위! 누가 받을 줄 알고? 흑….”

 

 

 

하연은 흘러내린 눈물을 손으로 쓱, 닦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왜 이런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그 누군가의 마음도 확인했다.

 

모든 준비가 다 끝났는데.

 

난 왜 이렇게 미적거리고 있는 거지.

 

 

 

민혁은 하연의 손목을 가만히 붙잡았다.

 

마치 신호처럼 하연은 민혁의 어깨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놔요! 놔! 당신 같이 제멋대로에,

 

당신 같이 비밀 투성이에,

 

당신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사랑을 몰라!

 

날 속여놓고! 놓으란 말이에요! 놔!”

 

 

 

별안간 발버둥치던 하연의 몸이 잠잠해졌다.

 

 

손은 이미 민혁의 커다란 손에 의해 결박당했고

 

튼튼한 팔 안에 하연의 몸이 가두어졌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던 하연의 눈은 이미 감겨 있었고

 

민혁을 향해 소리를 지르던 입은 민혁의 입술에 의해 막혀 버렸다.

 

 

순식간에 다가온 그의 얼굴과 입술로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

 

 

속삭이듯,

 

살살 달래듯, 민혁의 입술이 하연의 촉촉한 입술을 타고 움직였다.

 

 

아랫입술에 머물던 촉촉함이 턱을 타고 내려오다가

 

서서히 위로 움직여 빠짐없이 탐색했다.

 

 

 

처음엔 깊고 부드럽던 키스가

 

애태우듯 닿을락 말락하는 잔키스로 바뀌고

 

또 다시 깊어졌다.

 

 

민혁이 입술을 떼었을 때 솔잎향을 머금은 바람이 하연에게 불어왔다.

 

 

난생 처음 느끼는 부드러움에 하연은 이미 넋을 잃고 있었다.

 

민혁은 살짝 벌어진 하연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런 거짓된 모습으로 당신에게 다가서긴 싫었어.

 

그건 내가 아니니까.

 

당신에게 진실을 밝힌 뒤에 다가서려 했던 거야.

 

이제 발버둥치지 않겠지?”

 

 

 

“…미, 믿지 말아요!”

 

 

“그럼 놓아줄 수 없는데.”

 

 

“…아, 알았어요. 가만히 있을 테니까…! 좀 놔줘요!”

 

 

 

민혁의 품에서 벗어나자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제대로 놀라지도 못했던 하연이었다.

 

 

두 손으로 심장을 꽉 누르며 진정하는 하연의 모습을 민혁은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이젠 더 이상 그림자 속에 숨어서 몰래 훔쳐보지 않았다.

 

밝은 빛을 받으며 당당한 눈빛으로 하연을 바라보았고,

 

하연도 그런 그의 시선을 느꼈다.

 

 

 

“그만 봐요! 아무리 당신이 쳐다봐도 난 당신처럼 변신하는 능력은 없으니까.”

 

 

“…또 도망치려고 해 봐. 지금처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릴테니까. 앉아!”

 

 

“싫어요!”

 

 

“앉아!”

 

 

“싫…! 아, 알았어요. 앉을게요. 됐죠?”

 

 

 

하연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민혁에게 황급히 말하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신경질적으로 얇은 치맛자락을 움켜쥐며 하연이 말했다.

 

 

 

“백작 칭호는 없나요?”

 

 

“없어.”

 

 

“…유감이군요. 비밀의 성에 사는 백작. 딱 들어맞지 않나요? 조금 실망스럽네요.”

 

 

“또 다시 입을 막아야겠어?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

 

 

“알았어요. 발언권 당신한테 넘길 테니까 하고 싶은 말 하세요.”

 

 

“원래 그렇게 말을 잘했나?”

 

 

“아뇨. 한 달 동안 입을 너무 닫고 지냈나 봐요. 술술 잘 나오는 걸 보면.”

 

 

“내가 몹쓸 짓을 많이 했군.”

 

 

 

정신없이 입을 놀리고 있었지만 하연은 아직도 입술이 화끈거렸다.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보다 훨씬 더.

 

마치 불이 붙은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자꾸만 종알거리는 것이었다.

 

 

민혁은 그런 하연을 바라보며 짐짓 굳은 표정으로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이군.”

 

 

 

쿵! 하연은 심장이 떨어지는 듯한 충격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역시!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지금 이 남자는 자신이 결정한 기간을 번복할 생각 따위는 없는 것이다.

 

 

입맞춤이 남기고 간 열기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확, 가라앉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황홀함에 빠졌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하연은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낸 하연이 대답했다.

 

 

 

“나, 나도…알아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거.”

 

 

“그거 말고 다른 할 말은 없나?”

 

 

“아, 아뇨…. 많아요. 많은데…안 할래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겠지!”

 

 

 

이것 보세요, 이민혁씨!

 

당신 정말 마지막까지 날 힘들게 하는 군요.

 

빨리 말해요! 빨리 말해버리란 말이에요!

 

그 동안 고마웠다는 얘기는 바라지도 않을게요.

 

 

그냥 잘 지내라는 말 한 마디로 얼른 끝내버리란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사람 고문 하지 말라구요!

 

 

난 너무 힘들다구요.

 

당신 마음대로 휘둘리는 내 모습이 그렇게나 재미있나요?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일어나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면 끝이잖아요!

 

어서 끝을 내란 말이에요!

 

 

 

“내 생각은 변함없어.”

 

 

“…네. 알아요. 그럴 거라고 생각 했어요.”

 

 

“앞으로도 그럴거고.”

 

 

“그것도 알고 있어요.”

 

 

“…일어나지.”

 

 

“먼저 일어나세요. 전 나중에 갈래요.”

 

 

 

톡― 톡― 톡― 민혁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는 소리에 하연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느 새 하연의 속눈썹 끝으로 물기가 젖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민혁을 올려다보던 하연은

 

다시금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에게 필요없는 존재.

 

 

곁에서 돌봐줄 명분도 이유도 남지 않았다.

 

시간으로 장난을 치기엔 너무나 무모했다.

 

 

잘 된 거야.

 

오히려 잘 된 거라고 하연은 생각했다.

 

 

앞으로 잘 지낼까, 도와줄 손이 필요할 땐 어쩌나…하는

 

소소하고 잡다한 걱정들 중에서 절반은 덜어낸 거나 마찬가지니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제야 끝났다는 생각이요.”

 

 

“이제야 끝났다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일어나.”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하연을 참지 못한 민혁은

 

재빠르지만 조심스럽게 하연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하연은 민혁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그의 눈 속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도대체 알아 낼 수가 없다.

 

 

이제부터가 시작? 시작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시작…이라뇨?”

 

 

“끝이 있으면 시작이 뒤따른 다는 사실, 몰랐나? 멋대로 끝낼 생각 하지 마!”

 

 

 

하연은 그제서야 민혁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비로소 하연의 눈동자에 생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들여다보며 민혁이 잠깐 틈을 두고 말했다.

 

 

 

“거절 할 거라고 생각 하지 않아!”

 

 

“…다, 당신은 정말이지…제멋대로에…자신만만하고…오만하기까지 하군요.”

 

 

“…그리고 당신은 오만한 날 사랑하고 있지!”

 

 

 

민혁의 거침없는 마지막 일격에 하연은 패배했다.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하연의 귓가를 속살거리며 파고들었다.

 

 

거친 파도 같은 남자.

 

하연은 자신의 마음이 들켜버린 것을 탓하기라도 하듯

 

민혁의 품속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하연은 민혁의 품속에서 쏴아아아 하는 파도 소리를 들었고,

 

아련한 그리움처럼 퍼지는 뱃고동 소리를 들었고,

 

짭조름한 바다 내음을 맡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 남자의 오만함까지도 사랑하게 된 자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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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와서 죄송해요...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답니다. ㅠ_ㅠ

 

댓글은 제 긴 글로 대신하려고 해요.

 

여러님들의 바램처럼 민혁이가 빛 속으로 걸어 나왔답니다.

 

그 바램에 대한 제 작은 선물이자, 보답이자, 마음을 담아서 글을 올렸답니다.

 

 

이제 제가 나름대로 정해 둔 1부의 이야기가 끝나고 2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민혁과 하연, 진실함을 담아 응원해주시고 부족하지만 지켜봐주시길.

 

 

몸이 아프면 못 찾아 올 지도 몰라요...더위 속에서 이런 저런 여러가지 일들로

 

바쁘다보니...죄송해요. 이해해 주실거죠? ^^

 

북토피아(http://www.booktopia.com)와 바로북(http://www.barobook.com)을 통해서

 

제가 이제껏 썼던 몇몇 작품들이 전자책으로 묶여 졌답니다.

 

 

민혁이의 행복한 소식과 저의 기쁜 소식으로 여러님들에게

 

기쁨 바이러스가 퍼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저도 마법의 주문을 외워 볼까요? ㅎㅎ

 

어질어질~ ㅎ 이만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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