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알포인트..

영화_사랑@ |2004.08.16 21:09
조회 3,895 |추천 0

“올 여름 우리 공포영화를 지킨 자존심”


- 알 포인트 -

‘알 포인트’(제작 씨앤필름·감독 공수창)는 베트남전에 대한 또 하나의 회고다. 누가 민간인이고 누가 베트공인지 구분이 안가는 미스터리 한 상황에서 미군이 손을 들고 말았던 전쟁. 미로 같은 땅굴을 통해 전쟁을 벌여나갔던 베트남전은 그래서 상대국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 베트남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었으니 영화는 바로 그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베트공이 아닌 귀신과 싸움을 벌어야 했던 부대원들의 이야기다. 올 여름 노골적으로 공포를 선보이겠다고 앞 다퉈 손톱날을 세웠던 여타 공포영화들이 이끌어내지 못했던 심리적 공포에 가장 근접해 있다.

알 포인트란 로미오 포인트의 약어로 호치민시 서남부 150km 지점에 위치한 섬이다. 수백 명의 병사들이 실종된 지역으로 귀신들린 밀림으로 불린다. 1972년 맹호부대 소속 소대원 9명이 실종됐고 6개월간 본부로 구조요청 무전이 걸려왔다는 단서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출병하는 곳이면 적이든 아군이든 누군가는 피를 봐야만 하는 최태인 중위(감우성)를 주축으로 실종된 대원들을 찾을 수색대가 꾸려진다. 일주일 수색하고 나면 비행기 태워 귀국시켜준다는 큼지막한 포상에 8명의 대원들이 자원한다.

섬에 상륙한 기념으로 대원들이 모여 기념사진 한방 찍고 사라진 대원들을 찾아 알 포인트로 향한다. 옛날에 호수였으나 시체들로 메워진 땅에 세워진 “손에 피를 묻힌 자는 돌아가지 못한다” 는 비석을 지나면서 미스터리 한 상황으로 한발씩 나아간다. 프랑스인의 휴양지였다는 건물에 들어가면서 대원들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된다. 그러나 정작 무서운 건 아무도 자신들이 귀신에 홀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데 있다. 9명으로 출발했던 대원이 1명이 자살하고 나서도 9명이란 사실. 그리고 그 자살한 대원이 알고 보니 자신들이 찾아 나선 실종된 대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원들 얼굴엔 두려운 빛이 드리운다. 이것은 비단 대원들뿐 아니라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 또한 마찬가지다. 쉽사리 누가 귀신이라고 지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낮에는 안개 때문에 찾을 수 없어 밤에만 찾아온다는 미군들의 모습은 실체 없는 베트공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미국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방인 미군의 요청으로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했지만 미군의 존재는 이곳 베트남에서 허상일 뿐이다. 미군은 사라지면서 다시 왔을 때까지 살아있는지 보자는 의미 있는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지지만 대원들은 그 말의 진위를 깨닫지 못하고 웃어넘긴다. 어떻게든 일주일만 버티면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돌아간다는 부푼 꿈으로 가득하니 오죽하랴.

노래가 흘러나오던 카세트에서 군인들의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고, 귀신을 본 대원들이 하나 둘 실종된다. 본부와의 연락도 두절된다. 고립된 상황은 공포를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밀림 한가운데 폐허처럼 세워진 휴양지에서 하나 둘씩 사라진다는 설정은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전형성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살인마가 아니라 인간스스로 공포에 질려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극한 상황은 할리우드의 가벼운 상업성이 따라올 수 없다.

이제 수색대는 실종된 대원들을 찾는 것 보다 자신들의 안위가 우선이다.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순간적으로 상대를 살해할 수 있는 총기 때문에 불안은 더욱 증폭된다. 전쟁터이기에 발생하는 알 수 없는 끔찍한 사건들. 여전히 미궁으로 남겨진 사건들과 맥락을 같이한다. “우리가 뭘 잘못했냐” 고 절규하는 한 병사의 외침에 답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베트남에 왔다는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영화는 베트남 전 자체가 미스터리, 미궁의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누구에게 귀신이 씌여 있었던 것일까? 소대원들을 살려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오히려 대원들을 살해하고 만 최중위 일까? 아니면 최중위가 본대로 대원들에게 귀신이 달라붙어 있었던 걸까? 여기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기란 쉽지 않다. 이는 전쟁이 만들어낸 불안함과 공포, 거기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이 영화가 진정으로 내민 공포의 근원이 숨겨져 있다.

이미 베트남 전을 그렸던 ‘하얀전쟁’과 ‘텔미썸딩’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공수창 감독의 데뷔작. 연출력에서도 가능성이 엿보인다. 감우성을 비롯한 손병호, 박원상, 오태경 등 대원들 각자 살아있는 캐릭터를 선보이며 극을 이끌어간다. 가벼운 상업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진중함 또한 엿보인다. 스릴러와 공포의 혼합이 적절히 배합돼 자칫 미스터리가 될 뻔한 올 여름 우리 공포영화를 지켜낸 자존심이라 칭하고 싶다. 8월 20일.

<영화칼럼니스트 김용필 ypili@hanmail.net>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연예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