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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조건없이 주세요

김귀철 |2004.08.26 08:30
조회 263 |추천 0

  내가 한국골수은행협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전 직장(은행)이었다


내가 있던 은행은 정기적(1년 1회)으로 본점에서 헌혈을 하였는데 내가 본점에서 근무하던 1997년 간호사로부터 골수기증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농담반 진담반 동의를 하고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1998년 강남에 있는 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나오던 마지막 날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다름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혈액암 판정이 나셨으며, 길어야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 직장에서는 직원 부모에 한해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였지만, 건강검진 실시 후 몸이 안 좋다고 생각하신 어머니께서 직접 병원에 찾아가 종합검진을 받으셨던 것이었다.

그해 나는 다른 직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은행을 퇴직한 후 퇴직금으로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고 지금의 직장에 둥지를 틀었다.


2000년 초 한국골수은행 이영민 과장님으로부터 골수채취를 하셨는데 유전자가 같은 아이가 있다고 지금도 할 의사가 있냐고 전화가 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말의 주저 없이 하겠다고 명쾌하게 대답을 하였다. 물론, 가족과 상의 없이 내린 결론이었고 그 이유는 갑자기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스크롤 되는 것 같았으며, 내가 부유하다면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겠지만 살림이 넉넉지 않아 남을 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퇴근 후 어머니께 전화와 아울러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나는 가장으로서 아내와 큰아들 동혁이, 쌍둥이 동우, 동하에게 왜 골수를 기증하는 것인지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특히 쌍둥이 동우는 안면신경마비, 혈소판 감소증후군도 있어 내가 좋은 일을 하면 애가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보상심리였다.


그해 9월 어머님의 돌아가신 후 나는 더더욱 고귀한 생명을 살려야 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2000년 10월 드디어 수술날짜가 잡혔고 나는 지금의 직장상사에게 보고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소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내 가족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웃으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한숨 푹자고 일어났을 때 이미 내 골수는 그 병원을 출발한지 6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수술 후 약 1주일 행동에 약간 부자연스러움이 있었지만 나의 발걸음과 가슴에는 그 어느 때 보다고 가볍고 자랑스러웠다.


그 후 나는 그 꼬마가 걱정이 되어 한국골수은행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나와 같은 골수를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넓은 운동장을 뛰어 다닌다는 것에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던지.

나의 순간의 아픔과 맞바꾼 고귀한 생명에 다시 건강한 몸을 만들어 기회가 주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기증하리라 마음먹었다.


지금 내 지갑에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발행한 장기기증 희망 등록증을 가지고 다닌다. 내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할 수 있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며 약간의 관심과 용기를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병상에 누워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보람스럽고 행복한 선택은 여러분 자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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