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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에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집으로>라던가 <보리울의 여름>과 같은 류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가족애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폭력과 비극을 통한 '충격과 공포' 효과를 많이 사용한 것 같았다.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 당신에게 있어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인터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 내다버리고 싶다" 라고.
또 배수아는 <독학자>에서 이렇게 썼다.
'불행은 바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얼굴' 이라고.
가족은 따뜻하고 언제고 기댈 수 있는 아늑한 곳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이지만, 위의 단 두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 그것은 때론 내키지 않음에도 돌보아야 할 대상이고,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을 마주치며 불행을 확인시켜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떤 때에는 비상식적이고 절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체의 계산도 없이 맹목적으로 행해지는 감싸기가 바로 그것인데, 그것을 누린 사람은 훗날 또다른 가족 단위를 이루게 되었을때 마찬가지로 일체의 계산없는 짊어짐을 감당하게 된다.
모든 것이 대차대조표상으로 이해득실이 타당하지 않다면 존재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세상에서, 가족은 어쩌면 마지막 남은 인간성의 보루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정은의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 아버지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는 평생에 걸쳐 걸림돌로 작용하는 부분은 매우 상징적이다. 가혹하게 말하자면 어린 정은의 장난으로 인해 아버지의 인생이 뒤틀리게 되었고, 그로 인한 아버지의 좌절이 반대급부로 어머니에게 화풀이처럼 작용하였으며, 그때문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이제 정은이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는 기가 막힌 순환구조라니(어쩌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늦둥이 동생 정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환은 어머니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고, 실제로 극중 어머니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 가족이 함께한 마지막 밤에, 아버지와 정은은 자기 가족에게 주어진 가혹한 짐을 서로 자신이 짊어지겠노라고 결심을 하게 된다. 마치 7남매중에 막내아들이 수재인데 녀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첫째와 둘째 누나가 몰래 공장에 취직을 하러 서울로 야반도주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겐 이 특별한 자리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또, 곧 상주가 될 정환에게 하는 아버지의 당부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아버지(신구)에게 비디오 사용법을 가르쳐주다 화를 내고 마는 아들(한석규)보다 더 비장하고 가슴아팠다.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선수 홍명보가 어깨에 주장 표찰을 달고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늠름하게 해내야 한다는 비유도 탁월했다.
마지막 밤을 보내고, 아버지와 딸은 각자 돌진한다.
칼 손잡이를 힘껏 쥐고 발로 바닥을 박차 달려나갈 때, 그들에겐 어떤 사심도 없었다. 무모했고, 아주 미련했으며, 그럼으로 인해 그것은 숭고함과도 같은 이름이 되었다.
* 아버지의 유품을 챙기다 옷장 맨 밑에서 빛바랜 사진을 발견하곤 눈물흘리는 정은의 모습에서 점차 카메라가 멀어져간다. 눈내리는 밤, 하얀 소복을 입고 단정히 앉은 뒷태가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 '창원이형'이란 보스역을 맡았던 이름모를 배우는, 근래 보았던 영화중에서 기억에 남을 몇 안되는 강한 캐릭터중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