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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숲

골룸 |2004.09.05 13:44
조회 1,976 |추천 0

* 이 영화를 곧 볼 예정이신 분께서는 읽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이 복잡하면서도 단순했던 영화를 두고 무슨 말을 먼저 해야할까.
그래, 먼저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영화의 절반 이상은 다름아닌 '꿈'이라는 것. 의식불명 상태에서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온갖 압축, 검열, 묘사, 이차가공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역시 프로이트의 도움이 필요하다.

강민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을 가지고 성장한 인물이고, 극중 현 시점에서도 큰 정신적 외상-아내의 죽음-과 갈등-국장과의 불화, 황수정에게 느끼는 애정으로 아내에게 느끼는 미안함-속에 묻혀 있다. 이런 인물의 꿈은 정신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왜곡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직업인 방송국PD가 갖는 스토리의 구성능력이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왜곡을 더욱 치밀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14일간의 혼수상태 동안에 꾸는 꿈이 이 영화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현실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어떤 비극의 복선이 깔려있는 아내와의 대화 -> 아내의 죽음 -> 황수정과의 만남 -> 국장과 황수정의 불륜을 인지 -> 국장과 황수정 살해 -> 교통사고... 이게 전부이다. 나머지는 그의 꿈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강민은 국장과 황수정을 살해하기로 이미 계획하고 그들의 불륜현장을 덮치게 되는데, 그는 이를 위한 일련의 준비과정을 마치 제보를 받아 지방으로 취재를 가고 그곳에서 우연히 그네들의 불륜을 목격하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왜곡시킨다. 그에게 배달된 필름이라던가, 정체모를 남자의 전화 역시 왜곡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14일간의 혼수상태 동안에 강민이 꾼 꿈, 다시 말해 욕망을 왜곡하는 과정을 지켜보자. 먼저 어린시절의 떠올리기 싫은 기억-어머니의 부정-을 민수인에게로 치환하고, 민수인을 죽은 아내의 대체 인물로 부각시켜 자신을 거미숲으로 인도한다. 이런 전위를 통한 왜곡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대체를 통해 완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선 자신의 살해행각은 압축을 통해 완전히 빼버리고 자신을 목격자로 등장시키는데, 이를 위해 정체모를 숲속의 괴한이 필요해서 등장시키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괴한 역시 자신의 다른 모습일 뿐이므로 그의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지워버렸다(물론 나중에는 역할이 바뀌어 나오게 되지만). 말하자면 그 두 사람 모두 강민이란 인물이긴 한데, 첫번째 강민은 이드, 두 번째 강민은 에고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강민은 민수인(=아내)의 도움을 받아 거미숲을 빠져나오게 되고, 그로써 그의 혼수상태도 끝이 난다.

의식이나 무의식 상태에서 치명적인 사건을 저지르거나 겪게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나 치명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그 충격때문에 파괴될지도 모른다.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은 너무도 신비한 것이어서 정신이 분열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적당히 망각시키거나 왜곡시켜준다.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것이라던가, 충격적인 꿈이 잠에서 깨자 즉시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리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영화이다. 복잡함 속에서 해석을 놓쳐버리더라도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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