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을 사는 천계의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으로 500세가 되는 해 성인식을 치른다. 성인식의 의식이 행해지는 방식은 계층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아이가 비로소 어른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같은 마음이 담겨있다.
하지만 천계를 지배하는 주 세력인 황족과 왕족에게 성인식은 단순히 그들의 아이가 하나의 성인이 됨을 축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핏줄에게 권력을 되물림 할 수 있느냐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였다.
황족과 왕족의 아이들은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마계와 천계 사이에 있는 아미산에 올라 산꼭대기의 신성한 호수에 몸을 담가야만 했다. 그 의식에서 인정을 받은 아이는 몸의 한 곳에 천계의 상징인 문양을 얻게 되지만 아미산의 저주를 받은 아이는 문양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문양을 받은 아이는 고귀한 혈통과 권력을 이어갈 자로써 환영받으며 돌아오게 되지만 저주받은 아이는 아미산에 버려진 채 주위를 떠도는 마계의 괴물에게 먹이로 바쳐지거나 병에 걸려 죽는 것이 운명이었다. 혹은 음지에서 죽는 것보다 못한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세 개의 만월이 모두 떠오른 밤, 천제가 사는 천황성에서는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내일 아침 떠나게 될 황족과 왕족의 아이들을 위한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올해 성인식에 참여할 아이는 천제 비류천의 제 3황자 관지(寬智)와 남쪽의 왕 증장천왕의 아들 제공(除供), 서쪽 광목천왕의 딸 비영(毘榮), 북쪽 다문천왕의 딸 소예(韶禮)였다.
넷은 행실이 바르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모두 무사히 성인식을 치르고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연회는 어느 때보다 흥겨웠고 비류천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 관지와 성인식 후 관지의 약혼녀가 될 비영을 위해 예전없이 화려한 연회를 열었던 것이다.
비류천은 즐거워하는 귀족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오른 팔과 다름없는 동쪽의 왕, 지국천왕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지국천왕은 얼굴 가득 슬픈 빛을 띄고 있었다. 천제는 그제서야 모두가 기뻐하는 이 자리가 지국천왕에게는 잔인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천제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지국천을 위로했다.
" 지국천의 아들이 살아 있었더라면.....올해 성인식을 치루었을테지?"
지국천왕은 자신이 목숨을 바쳐 존경해 마지 않는 천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애써 밝은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 기억해주시니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흠,...어린 나이에 세상을 떴다니. 안됐어. 아들 이름이 무엇이라 하였던가?"
" 설무랑(雪武郞)이었지요. 박복한 팔자를 가진 아이었으니 누구를 탓하겟습니까?
제 3황자께서 저리 장성하시어 내일이면 성인이 되시오니 이 나라의 복이자 전하의 기쁨이시겠습니다"
천제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에 감정을 숨기지 않고 웃었다.
"하하..그래. 기쁘고 말고. 지국천이 늘 자기 자식처럼 아껴준 덕이지. 내 알고 있네"
"가당치 않은 칭찬이시옵니다. 전하"
둘은 술잔을 부딪히며 즐거워했다.
역대 천제들 중 가장 힘이 있는 천제 비류천이었지만 천계는 여전히 음모술수가 판치고 있었다. 그런 천계에서 천제는 누구도 믿지 않았지만 단 한 사람, 동방 지국천왕만은 곁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비류천이 보위에 오르기 전인 태자 시절, 지국천은 그의 좋은 벗이었고 제위에 오른 후에도 한 번도 그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목숨을 걸고 그를 위해 싸웠고 지금은 곧 태자에 오를 관지의 훌륭한 스승으로써 자기 몫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국천은 어린 아들을 병으로 일찍 떠나보낸 탓인지 황자 관지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어쩌면 죽은 아들 설무랑과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연관성 때문에 관지에게 더욱 애착을 보이는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천제는 그런 지국천을 아주 좋아했다.
내일이면 성인식을 치르기 위해 아미산으로 떠날 네 명의 황자와 왕자, 공주들은 한 곳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증장천왕의 아들 제공은 술잔을 높이 들고 실없는 농담으로 모여든 모두를 웃기고 있었다. 사실 연회에 모인 대부분의 여자들-늙었거나 젊었거나 시중드는 시녀이거나 귀족 아가씨거나-너나할 것 없이 제공에게 관심이 쏠려있었다.
하늘에서도 남쪽지방은 미인들이 많은 고장이었는데 특히 증장천의 왕가는 대대로 천계 최고의 미인들이 태어날 정도로 혈통이 좋아 황비들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었지만 제공은 그 중에서도 역대 최고로 일컬어질만큼 미모가 뛰어났다.
여자들도 상대가 안 될 정도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타고난 끼가 넘쳐 그는 어떤 도도한 여자도 며칠 안에 무릎을 꿇고 그를 사랑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였다. 보드러운 연녹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눈부신 미소를 짓는 그는 기고만장하게 독신을 주장하던 천제의 첫째 딸, 지우황녀를 굴복시킴으로써 그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