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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34. 친구 알렉한드로

무늬만여우... |2004.10.13 06:54
조회 2,903 |추천 0

결혼식이 끝난 후 한달이 하루 모자란 날 랑은 먼저 식구들과 아르헨티나로 떠났었다. 난 갑자기 결혼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미처 내 서류가 완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영주권을 먼저 만든 랑이 날 초청해야했다.

결혼하고 한달도 안되서 떨어진 신혼 부부. 말이 신혼이지 어린 나이라 그저 남자친구 내지는 풋풋한 애인 정도의 느낌이었다. 랑은 연애 기간동안 늘 내게 잘했듯 아르헨티나에 가서도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해줬다.

나 혼자 그 넓디 넓은 시댁에서 지냈는데, 랑의 전화가 늘 기다려졌었다.

아르헨티나는 전화세가 무지 비싸다. 아마 그 때 당시에서도 한국보다 전화세가 거의 열배 정도 되었던거로 기억된다. 다른 물가는 싼데, 전화세는 상당했다. 부모님의 눈치가 보였던 랑은 국제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국으로 가야했다.

랑은 거기에서 한국의 애인에게 전화를 걸러 온 알렉한드로를 만났다. 대부분의 이민 1.5세들이 가업에 매달려서 공부 보다는 가게를 주로 보던 그 시기에 알렉한드로는 미국 유학까지 다녀 온 친구라 랑하고 말도 잘 통했다. 물론 2살 때 아르헨티나로 갔기에 한국말이 많이 서툴렀다. 그에게 제일 쉬운 말은 스페인어, 그 다음이 영어, 그 다음이 한국어다.

몇 달 후, 랑은 초청장을 들고 나를 데릴러 한국에 나왔는데, 그 때 그 친구도 한국에 따라나왔다.

잘 생긴 얼굴에 잘 자란 그는 매너있게 굴었다. 이민 나와 자란 애들이 순진하고 착하듯이 그도 그랬다. 한국에 있던 애인은 두 달의 전화 통화 뒤에 그냥 바이바이 했댄다. 그래서 내 친구를 하나 소개 시켜주었다.

한국 말이 서툴렀던 그는 데이트 내내 심심하게 굴었나부다. 그래서 내 친구에게 딱지를 맞았다. ㅋㅋ 집에 돌아와 내게 하는말이

도대체가 한국말이 딸리니 어떻게 구워삶을 방법이 없댄다. 내 친구가 꽤나 이쁘고 맘에 들어서 자겁좀 할라고 했는데 안됐다나.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수원 시내를 돌고 온 그는 내게 말했다.

"제가요 버스를 타셨는데, 아가씨가 타서 자리 양보했더니 안 앉아요."

흐미. 지가 지한테 존댓말 쓴다. 그리고 뭔 할아버지 할머니도 아닌데 양보? 당근 안앉지. 아르헨티나는 할아버지도 아가씨에게 자리 양보하던 나라니 당연한거지만 어디 한국이 그런가.

그의 한국말 실력을 위해 랑은 고우영의 삼국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등등을 빌려다 주었다. 그는 밤을 패서 읽더니 한국말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이 아닌가. ㅎㅎ역시 만화의 힘은 대단하다.

암튼, 한국에 있는 내내 이쁜 여자만 좋아하던 그는 무쟈게 소개팅을 하고 하나도 맘에 안들어하다가 먼저 아르헨티나로 들어갔다. 맨날 탤런트 지망생이나, 모델 지망생들처럼 쭉빵하고 이쁜 애들만 만나서 눈이 이만저만 높은게 아니었다.

랑 친구이기도 했지만, 내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그 뒤로 아르헨티나에서도 수도없이 소개팅을 한듯하다. 우리가 한국에 나와 있던 그 시기에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소개팅을 했는데 제대로 둘이 서로 맘에 들었나부다. 애인이 생겼다고 전화가 왔다. 후후 궁금했다. 이번엔 어떤 여자일까?

 

이 기간에도 우린 친구들과 어울려 거제도로 놀러갔었다. 거기에 알렉한드로도 꼈었는데, 마지막 날 켐프화이어를 하며 놀았다. 랑 친구들이 다 재주꾼들이라 악기들을 가져와서 재미나게 노래도 부르며 놀았는데, 알렉한드로가 갑자기 자기가 춤을 춰본댄다. 다들 가져온 기타며 전자올겐으로 음악을 해줬더니 지금까지의 젊잖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는 격렬한 남미 살사를 추어댔다. 흐미 징그러. ㅎㅎ

 

난 남자가 그케 온 몸을 흔들어대며 추는걸 첨봤다. 생전 첨 접해본 남미 춤이었는데, 무쟈게 느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ㅎㅎ 그 춤이 살사란걸 모르고 지났는데, 나중에 페루에 오니깐 하나같이 그 춤들을 추어대서 알았다.

아버님이 양봉을 시작해야했는데, 랑이 아버님과 같이 양봉일을 시작하기로 했기에 급히 아르헨티나로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나랑 아들넘은 이왕 한국에 나온 김에 좀더 놀다 가기로 했다.

랑이 가고 나서 장롱 청소를 하다가 장롱 밑에서 사진 꾸러미를 발견했다. 거긴 8개월 반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여자들과 놀러댕긴 사진들이 있었다. 어휴 이 인간을 그냥.

내가 아끼던 짙은 파랑색 챙 넓은 모자가 있었는데, 같이 놀러갔던 여자에게 그걸 빌려줬는지 내 모자를 떡 쓰고 찍힌게 아닌가. 커플끼리 놀러갔는지 랑 고딩때의 친구도 커플이고 랑도 그 여자랑 커플로 찍혀 있었다. 그녀는 고딩 때부터 랑을 죽어라 쫓아다니던 여자였다. 랑이 나와 결혼한다니까 나 죽기만 기다린다고 했다나...그 여자네. 기가막혀서 웃음밖에 안나왔다. 그 모자를 찾아서 발로 밟고 으깨서 버려버렸다.

어머님께 말했더니 한 술 더 뜨신다.

"내가 다 버렸는데, 또 남았었니? 내가 말도 못하게 많이 버렸다 얘."

어구...내가 미쳐.

어머님은 내가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지 않을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휴.
내가 선택한 길이다. 그러니 어쩌겠나. 웬수. 뒷처리도 제대로 못하면서 바람은 무지펴요 암튼.

엄마랑 수원 장안 공원에서 아들을 데리고 사진을 찍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에게 기대가 컸었는데 이렇게 일찍 결혼해서 맘고생이나 시키고... 엄마한테 잘사는 척, 행복한 척했다. 그게 효도이지 싶었다. 그래서 서둘러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손톱만끔도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가야지.

일본 도쿄 공항에서 세시간 기다릴 동안 아들넘은 지도 긴장했던지 자는 중에 바지에 쉬야도 해버리고 토하기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빨래를 해서 대기실에다 널었다. 넓은 유리로 들어오는 햇빛에 바지 두개는 보송보송 말라가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멍청히 있다가 비행기가 떠난 다는 소리에 서둘러 탔다.

비행기는 이륙을 하고, 태평양 한 가운데 있을 때, 일본 공항에 널어 놓은 아들 넘 바지 두 개가 생각났다. 아유 아까워라. 그거 한 벌 짜리 이쁜 옷들인데...이를 어째.

아르헨티나...그 한가로운 넓은 길, 평화롭게 보이는 집들 맑고 푸른 하늘, 공기 좋은 아르헨티나 숲들. 공항서 내려 집에 오는 동안 여전한 아르헨티나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 사는게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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