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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데갔다 왔노?"

큰가방 |2004.11.06 17:44
조회 542 |추천 0

  “어데갔다 왔노?”


11월에 접어들면서 아침저녁으로 싸늘해진 날씨가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달려가는 느낌입니다. 저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에 좋은 소식이 담겨있는 우편물을 가득 싣고 우체국 문을 나섭니다. 그리고 천천히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리고 오늘의 맨 처음 등기우편물을 배달할 보성읍 옥평리 유산마을의 맨 첫 집 마당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주인을 불러봅니다. 그러나 집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편물 도착통지서를 써놓을까 하다가 집 입구에 있는


“민박”이라는 글씨 밑에 휴대전화 번호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구수한 경상도 말씨의 중년 아주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십니다. “여보세요! 강철원 씨 가족 되시지요? 저는 보성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지금 사모님 댁에 등기 우편물이 한 통 도착했는데 사모님 댁을 와보니 아무도 안계시네요! 등기우편물을 어떻게 배달해 드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등기편지가 왔어요? 어데서 왔는데요?” “예! 현대카드회사에서 왔네요!”


“그래에! 아저씨! 그럼 지금 전화하시는 곳이 어딘데에?”“예! 지금 사모님 댁 앞에 있습니다!”“그래에! 그라문 지가 지금 집으로 가문 안되겠습니꺼? 승용차로 가면 한 10분쯤 걸릴낀데 그때까지 좀 기다려 주이소!”하시기에 “제가 지금 좀 바쁜데 이따 오후에 우편물 배달이 끝나고 오면서 다시 들리면 안 되겠습니까?” 하였더니 “그라지 마시고 지금 좀 기다려 주이소! 지금 카드를 꼭 쓸 일이 있거든에! 그래서 지금까지 아저씨 기다리다 집에서 방금 나왔는데 그새 또 아저씨가 오셨는갑네에!


쪼금 바쁘시더라도 기다려주시면 고맙겠네에! 승용차로 가니까 한 10분만 기다리문 될낍니더!” “알았습니다! 그러면 사모님 댁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대문도 담장도 없는 집이어서 천천히 마당 한쪽에 피어있는 빨간 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꽃이 제가 처음 본 꽃 같아서 “예쁜 꽃아! 네 이름이 뭐니? 오늘 처음 너를 본 것 같구나?” 하고 물었더니 빨간 꽃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수줍은 듯 얼굴이 더욱 빨개집니다.


저는 꽃 옆에 팥알 크기 정도의 진한 잉크 색 열매가 달려있는 나무를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더니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이제는 잎이 모두 져버린 빼빼 마른 줄기에 콩알 크기의 하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것을 보였습니다. 하얀 열매를 바라보니“아! 이제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 열매 바로 옆에 메뚜기 한 마리가 지난여름 입었던 녹색 옷은 벗어버리고 갈색의 가을 옷을 갈아입고는 지난밤 찬바람에 몹시 떨고 있었는지 꼼짝을 하지 않고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가만히 메뚜기를 잡아 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서 “메뚜기야! 이제 날씨도 추운데 왜?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지 않았니?” 하고 물었더니 “아저씨! 이제는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야 할까 봐요! 어젯밤은 너무 추웠어요! 그래서 지금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거예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응! 그랬구나! 그러면 겨울잠을 자러 어디로 갈껀데?”하였더니 “이제 따뜻한 곳을 찾아보려고요! 아저씨! 저 이제 그만 가볼게요!” 하고는 양 날개를 활짝 펴더니 갑자기 하늘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멀리 날아갑니다.


저는 메뚜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문득 시간을 보니 아주머니를 기다린지 벌써 20분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어! 이상하다? 아주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왜 여태 안 오시지?” 하고는 다시 휴대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여보세요! 저 보성우체국 집배원입니다. 지금 집에 도착하실 시간이 넘었는데 아직 오시지 않아서 다시 전화 드렸습니다!” 하였더니 “뭐라고에? 아니 그럼 애가 어디갔단 말잉교? 이상하다! 지금 갔다 올 시간이 넘었는데!” 하더니


“아저씨! 잠깐만에!”하더니 “아니! 너 지금 어디 갔다 왔노? 뭐라고? 우체국에 갔다 온다고? 아니 우체국에는 왜 갔는데? 편지 찾으러 갔다고? 아니 내가 언제 우체국에 가라 그랬나? 집으로 가라 안했나? 아이구야! 이일을 어쩌면 좋노? 지금 우체부 아저씨가 눈이 빠지게 지달리고 계시는데 왜 우체국으로 가나 우체국에 엉? 당연히 집으로 가야 안되겠나? 아이구야! 이일을 어쩌면 좋노? 시간이 이리됐는데 너는 와 그라고 말귀를 못 알아 듣노? 인자 아저씨 가버리문 어찌 할끼고? 그러니까 말을 잘 알아듣고 가라 안했나?”


하시며 누군가에게 마구 역정을 내시는 겁니다. 저는 전화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다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여보세요! 사모님!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조금 더 기다릴테니까요! 지금이라도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하세요!”하였더니 “그라문 아저씨가 더 기다려 주실랍니꺼?”하고 묻습니다. “예!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린다고 뭐가 잘못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하십시오!”하였더니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더! 금방 갈께에 쪼그만 기다려 주이소 미안합니더!” 하고 전화는 끊겼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면 저를 만나러 달려올 것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웃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등기우편물 한 통을 배달하러 약 30분 정도 지체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30분 동안 처음 보는 빨갛고 예쁜 꽃도 만났고 팥알 크기만 한 진한 잉크 색 열매를 보았고 콩알처럼 생긴 하얀 열매도 만나고 그리고 갈색 옷을 입은 메뚜기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짙어가는 가을과 이야기를 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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