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헤어진 후... 그의 전화?

..... |2004.11.20 23:33
조회 1,488 |추천 0

지난 화요일날 이별을 했습니다.

아직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많이 남아 있지만 계속 만나면 더욱 지쳐갈 거 같아서 그냥 가장 좋은 때 이별한다는 생각을 헤어졌습니다.

하지만 역시 마음이 잘 정리되지 않아 생각보다 많이 힘들더군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마음도 편안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새벽의 일입니다.

자고 있는데 발신자 표시 금지라는 멘트가 뜨며 전화가 오더라구요. 저는 당장 든 생각이... 아... 남자친구가 전화를 하는구나...였습니다. 이 사람도 나처럼 힘들어 하다가 이렇게 연락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반갑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물론 목소리는 무뚝뚝하게.... 한동안 아무 말도 없더군요. 도무지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서... 오빠~ 오빠 맞죠? 하고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나더군요. 술을 많이 마시고 전화한 듯한 그런 목소리로 뭐라고 웅얼 거리는데 잘 못 알아 들겠더라구요.

그래서 계속 뭐라구요? 잘 안들려요.. 하고 물어 봤습니다. 가슴은 쿵쾅쿵쾅 두근두근 난리도 아니었죠. 이렇게 다시 연락을 할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으니까... 너무 기뻤습니다.

그렇게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나와 헤어진 게 힘들어서 술을 먹고 전화를 하다니... 그래도 겉으로는 내색 안 하고 담담하게 받았습니다. 저쪽에서 뭐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잘 듣지 못했는데... ....싶어 ...싶어... 라고 반복하는 듯 했습니다. 단박에 "보고 싶어"라고 느꼈습니다.

그 때부터 저도 눈물이 나오더군요. 기뻐서인지 슬퍼서인지.. 아무튼 알 수 없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말했습니다. "나도.. 나도 보고 싶어요" 그랬더니 그 쪽에서도 계속 보고 싶어 를 반복했습니다. 저는 보자고... 보고 싶으면 보면 되지 않냐고... 그렇게 묻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만 전화가 끊어졌습니다. 아마 술이 많이 취해 전화가 끊긴 거 같더라고요.

아니나 다를까 1분정도 지나자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또 발신자 표시 금지가 뜨고 전화가 오길래 재빨리 받았습니다. 또 흐느끼는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조금 또렷한 발음으로 ...싶어 ...싶어... 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근데 목소리가 좀 다르게 들렸습니다. 처음엔 술 취해서 목소리가 잘 구별이 안 갔었는데.. 약간 발음이 또렷해지니까... 뭔가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확인을 해봤습니다. "오빠, 뭐라고요? 잘 안들리는데... 제대로 얘기해봐요..." 그랬더니 저쪽에서는 또 한참 흐느끼는 소리가 나더라구요. 아... 이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면...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또 한동안 그에 대한 미련을 남길만한 사건으로 기억됐을텐데... 불행하게도.. 지금부터 약간 코메디가 시작됩니다.

 

남자친구는 사귈 때도 가끔 술마시고 전화를 해 힘들어하며 운 적이 있어서 그런 전화를 거는 게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던 것도 술이 취했거나 노래방 같은 데를 가서 목이 쉰 거라고 생각하고 거의 10분 가까이를 우는 그를 달래며 나도 찔끔찔끔 울며 통화를 했습니다.

 전화도 여러번 끊겼다 다시 걸고 하는 상황이 반복됐고... 도중에 그가 말하는 ...싶어 라는 말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보고 싶어로 받아 들이고... 정말 10분동안 멜로 드라마 한 편 찍은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 통화를 하니 대충 술이 깨어 정신이 들어 가는 지 점점 발음이 분명해지더라고요.

제가 "보고 싶어"라고 믿고 있었던 그의 대사는 점점 "하고 싶어-_-;;"에 가까운 발음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리고 술이 깬 목소리도 점점 낯선 목소리가 되어 갔고요. 이건 뭔가 이상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대뜸 전화걸어서 "하고 싶다"(?)는 멘트를 날릴 정도로 숫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_-;;

화들짝 놀래 "저기 근데 당신 누구세요?"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10분 내내 보고 싶다, 다시 만나자, 이런 말을 하며 3류 영화 찍다 말고 갑자기 통성명을 하게 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쪽에서도 흠칫... 하는 느낌이 들더니.... 다시 흐느끼는 소리가... -_-;;

 

그때서야 눈치 챘죠. 내가 지금까지 완전 쌩.쑈. 했구나... 한낱 야밤의 장난전화를 즐기는 특이한 습성을 가진 남자와 함께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할 감동의 멜로 드라마를 찍고 있었던 겁니다.

큭..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해서... 괜히 그 남자한테 화풀이 했습니다. "지금 이 전화 발신번호 안 뜬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다 뜨거든요?"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전화가 오지는 않더라구요. 그 남자도 참 황당했을 겁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장난전화를 걸었더니 갑자기 여자가 줄줄 울면서 보고싶다고 하질 않나, 앞으로는 우리 잘 해보자 하질 않나-_-;;

하지만 저 상황 정말 착각할 수도 있었던 상황 아닌가요. 정말 남자친구 전화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실망감이 파도처럼 밀려 오더군요 ㅠ.ㅠ 잠시나마 작은 기대감을 안겨주어 고맙다고 해야할지...

다시 생각해보니 완전 바보짓을 한 거 같네요 -_-;;

 

아무튼... 이별의 와중에도 저런 쇼를 하고 나니 이젠 분위기 잡고 슬퍼하고 이럴 여력도 안 생기네요.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변태의 전화를 남자친구로 착각할 만큼 간절하게 남자친구가 다시 돌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래 생각하고 제가 결정한 이별이지만... 역시 힘든 건 사실인 것 같네요. 하지만 너무 축 처져 있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여기에 글 올리시는 많은 이별하신 분들도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네요.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