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큰시누이 전화가 왔습니다. 아들 결혼한다고....
오늘은 아침부터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생각나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신랑이랑 애들 옷이나
사러갈까 고민하면서 그냥 두서없이 몇자 적어 보렵니다.
지난번에 비슷한 글 올린적 있는데 그 때 읽으셨던 분들 또 적었다고 뭐라 할라나.....
그 때는 제가 어머님 간병기를 적었던셈이고 오늘은 어머님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
남편이 여섯살때 아버님께서 간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술을 너무 좋아해 술병이 났나봐요.
근데 아버님 살아계셨을적에도 가난때문에 딸들은 9~10살만 되면 다 남의집으로 보냈데요.
저보다 나이어린 시누도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나봐요.
언젠가 세째형님(시누)과 밤새 술한잔하며 얘기를 한적이 있는데 남의집살이할때 주인아줌마가
밥을 제대로 안 줘서 돌담벽의 흙을 갉아 먹었다면서 흙을 참 많이도 먹었다며 얘기하는데
같이 울었더랬죠.
연애할때 신랑이 저 많이 속였는데 세상물정 모르는 전 바보같이 결혼까지 했죠.
결혼식때 남들 다 받는 절값도 전 구경도 못하고 신혼여행가서야 남편이 빈털털이란걸 고백하고.
그때의 황당함과 막막함이란....
살고 계신 시골집은 불 지피는 아궁이에 설거지는 마당에서, 두칸방이 하나는 창고이고
혼자계신 그 한칸은 어른둘이 누우면 딱 알맞은 크기인데 벽지는 만화책을 더덕더덕 발라놓았는데
누렇다못해 시커멓고 장판도 불에 타서 꺼맸으며 천정엔 거미줄.... 쥐도 들락거리고....
암튼 전 시댁에서 잠을 잔 건 손가락에 꼽을 정도네요. 저녁해먹곤 친정가곤 했어요.
시누가 여섯인데 막내는 아기때 남의집에 보내고 언젠가 한번 엄마를 찾아왔는데 시어머님은
딸은 자식이 아니라고 여기는 분이라 쳐다도 안 보셨다네요.. 9살 많은 형도 초등학교 졸업후
친척집에서 하는 짜장면집 주방으로 보내고....
저는 결혼후 3년만에 만난 시누도 있었고 8년만에 본 시누도 있었죠.
형제들은 사는게 힘들어선지 서로간에 정도 없었고 어머님도 나 몰라라 했어요.
경기도에 사시는 시숙도 2-3년에 한번 왔는데 형님은 죽는소리만 하고 차비받아 가더군요.
어머님이 남의밭 깻잎따주고 얼마씩벌어 자긴 거의 안쓰고 모아둔 알토란같은 돈을!
우린 아버님제사나 명절때 가끔 경기도 큰댁에 갔습니다.
전 명절때마다 시댁에서 우리끼리 쓸쓸하게 보내는게 싫어 때마다 경기도 가고 싶었지만
시숙과 형님은 제사는 자기가 모실테니 우린 어머님모시고 산소나 관리하라더군요.
신랑은 학교다닐적 단 한번 도시락을 싸 간적도 없고 엄마가 옷을 사 준적도 없대요.
전 그런 신랑이 불쌍했고 나한테 엄청 잘 하는 사람이라 둘이서 성실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줄
알았어요. 어머님은 갇혀 사셨던 분인거 같아요. 남편 일찍 여의고 자식들은 많고 말그대로
입에 풀칠하기 힘들었겠죠. 멀미가 심해서 차를 거의 안 탔고 여행한번 간 적 없었으니까.
이웃과도 내가 줄게 없으니 받는것도 부담스러워하고
친척들도 거의 왕래가 없었으며 어머님이 살고 계신 방금 무너질듯한 집도 어머님 땅이
아니었고 집에 가전제품이라곤 가스렌지와 전화기뿐.
숫자를 몰라 전화도 받기만 하셨네요. 결혼후 텔레비젼을 사 드릴려고하니 유선비못낸다고
못사게 하셨어요. 시골은 유선가입비도 만만찮아요.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게 되고...
남편은 뭐라고해야 하나...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홀로 자란 사람!
전 그렇게 생각해요. 가정교육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 어른들을 공경하고 인사하는거.
남의집에 갈 때의 예절. 너무 함부로 말하는거며 뻥이 심한거... 암튼 남편은 철없는 애였어요.
어머님은 당장 밥 먹고 사는 것만 신경썻을 뿐 아들을 가르칠 줄은 모르셨던 거죠.
두어군데 직장을 때려치곤 영업택시를 모는데 돈을 벌기보단 노름하고 술마시고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곤 없었어요. 자기 엄마 생각도 할 줄 모르고.
그러다보니 저도 홀로 계신 어머님은 소홀해지더군요. 배불러 시작은 작은 가게는 아기낳고
돌될무렵 가게도 너무 안되고 신랑이 돈을 안 벌어주다보니 2년만에 홀라당 털어먹었죠.
그 사이 남편은 음주사고를 냈었고....
친정돈 몇천에 제가 결혼하기전 모은돈이랑 퇴직금 전부를 날렸습니다. 전세금을 빼서 나머지
빚을 갚고 저희는 맞벌이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무도 없는 타향살이의 시작.
그 때 달셋방에서 시작한 거 저희 친정부모님은 아직도 몰라요. 그 때 왜 안봐준다는 15개월된
딸을 버리다시피 친정에 맡겨두고 온지를...
엄마가 가 버렸다고 그치지 않고 우는 아이를 달래다 같이 울며 전화하신 친정엄마.
"에이그 이년아, 돈이 뭐길래 자식 떼놓고...... 우째 그리 독하냐..."
그러고 8년...
그 사이에도 남편은 자기 월급이 얼만지 생각지도 않고 술을 마시고 카드를 긋고....
시어머님이 불쌍한 건 알지만 제가 할 수 있는건 얼마간의 약과 반찬을 사 드릴뿐.
친정에서 쌀이며 김치가져올때 어머님꺼 들어드리곤 했어요.
사실 전 음식솜씨는 없거든요. 음식 잘 만드시는 분들 보면 참 부러워요.
식구들이 다 먹성이 좋아 김치찌개하나만으로도 우린 밥 잘 먹어요. 물론 돈 때문에 더
그럴수밖에 없었지만. 남편은 그러면 안 되는줄 알면서도 술을 너무 좋아했고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어버릴때도 많고 사고도 많이 쳤어요.
친정에서도 그냥 사위일뿐이지 그리 달가워 하진 않았죠. 제가 사는게 넘 답답해보여 기본적인
먹거리는 항상 줬고 필요했기에 차도 사 줄수밖에 없었고 하나뿐인 외손녀는 이뻐라해서
이것저것 나중엔 컴퓨터까지 사 줬어요. 그래도 혼자 계신 사돈은 불쌍하시다며 나무도 해서
한 트럭보내고 가을엔 쌀도 두어말씩 드렸죠.
저는 간간이 어머님께 너무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은 저희집에서 보내라고 했지만
시어머님은 내가 왜 둘째한테 가느냐 가더라도 장남한테 가야지...하시며 끝끝내 안 오시더군요.
그리고 올해 어머님은 폐암으로 마지막 5개월을 저희와 함께 계시다 돌아가셨어요.
폐암이 전신에 퍼지고 머리에 종양이 세개가 될때까지.... 참고 참고 참기만 하신 시어머님!
병원의사 선생님께 자기는 태어나고 병원 처음 오는 거라며 아직도 허리도 꼿꼿하다고 자랑하시던
시어머님! 자기는 평소에도 혈압이 높아 가끔 어지러울 뿐이라고 우기시던 분!
그렇게 어머님 떠나신지도 벌써 5개월이 되어 가네요. 근데 내가 그렇게 잘 하라고 해도
귓등으로만 듣고 술만 마시던 남편이 요즘은 자기자신이 참 밉나봐요.
뜬금없이 어머님얘기도 잘 하고 자기는 정말 정말 불효자라고 합니다.
저도 문득 문득 그렇게 불쌍하게만 살다 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납니다. 왜 그렇게 일찍 가셨을까요.
몇년만 더 사셨으면 저도 좀 더 철이 들고.. 손주들 손잡고 어디 여행이라도 한번 같이 갔다면
이렇게 하염없이 눈물만 짓지는 않았을텐데....
돌아오는 12월 12일엔 어머님의 제일 첫 외손주가 결혼한다고 합니다.
저는 막상 우리 가족들 그 날 무슨옷을 입어야할 지 고민거리지만 또 어머님이 생각나 눈물이 납니다.
살아계실때니 밉니 고우니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막상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후회만 남습니다.
참... 마지막으로
전 제 두 아이 돌때도 시댁쪽에서 아무도 안 왔었고 제 아이들 시누들한테 내복한벌 못 받아
봤습니다. 시어머님한테도 시누들은 가까이 살면서도 김치한번 보내준 적 없었고...
그대로 자식 결혼한다고 전화는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