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리 쉬운가
삼십대 초반에 7남매를 두고 훌쩍 세상을 떠나신 남편대신 세파를 헤집으며 살아오신 세월이
93세 라는 원하지 않던 혼자만의 시간을 이마에 훈장처럼 남긴 깊은 주름살로 남겨 놓으신 할머니
어제로 6개월째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왔다갔다 하시며
이미 사그라져 버린 의식을 오로지 자손들의 눈과 손길로만 허락하신채 모니터의 이상한 그래프와
간혹 바람소리처럼 들리는 산소 호흡기의 소리로
그래도 아직은 우리곁에 계시는구나 라는 안도감뿐
이제 더이상 병원에 계실 이유가 없을듯 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그게 그리 쉬운가
병원에서 운명하시면 간단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산소 호흡기를 임의로 제거 할수 없고
법원에서 무언가 상황을 설명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단다
그뒤 당신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당신이 굶주림과 혼자라는 아픔으로 범벅된 그 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려야 한단다
당신의 떠남을 찢기는 마음으로 지켜 보고 있어야 하는 자식들과 입안에서 우물거리는
그 무언가를 지켜보던 손자에게 냉큼 물려 주시던 할머니 내 할머니라 부르던 손자들을 남겨 두고
그저 지켜만 보아야 한다
호상이란다
장수 하셨으니 호상이고
자식과 손자 손녀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원도 없을거란다
그러니 아프게 보내지말고 기쁜마음으로 가시게 해야 한단다
그래도 그래도 그게 그리 쉬운가
퉁퉁 부어오른 손마디를 주무른다
깊은 잠이 들땐 손이 차가워진다
귓가에 입을 붙이고 큰 소리로 부른다
할머니 할머니 눈떠봐
이미 촛점없는 눈길이지만 힘겹게 아주 힘겹게 무언가를 바라보는 눈길이 아닌 그저 눈을 뜨고
다시 감고 를 반복할뿐이다.
건너편 침대의 환자가 세상을 버린다
남는자들의 통곡과 아쉬움이 뒤섞인 눈물
이렇게 갈줄 알았으면 으로 시작되는 자성의 외침들
나도 너도 세상을 떠나는건 같은데 언제 어떻게만 다를뿐인데
그래도 남는자들끼리는 예정된 후회를 감추며 아무일 없다는듯이 살아가고
그 누군가를 보내고 난뒤 틀어놓은 녹음 대사처럼
언젠가 한두번 써먹은 대사를 되풀이 한다
이십여년전
당신의 막내 여동생이 생일이라 잔치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늘 허름한 입성에 일에 지친 모습 으로만 남았던 내 할머니의
단아한 숨사위를 보았다
주변의 모든이들이 감탄했던 마치 국악의 달인들이 보여주던 그 춤사위
학처럼 단아했다
대나무처럼 고아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싶어?
아니
왜?
몰라
나중에 할아버지 만나거든 바가지 긁어 아주 많이 알았지
뭐허게
내 신혼 시절 반나절을 차에 시달린 노구를 이끌고 묻지도 않고 집주위 쌀집을 찿아가
한가마 쌀을 덜컥 들여 놓으시곤
먹어야 산다 하신던 할머니
당신의 초년 시절의 굶주림이 그리 아파서 였을까
당신의 주림은 당연하고 자손의 주림은 어림없는 일이였을까
당신의 가슴을 만지작 거리면 형수나 제수씨들은 기겁을 했다
명절때나 뵙던 당신의 얼굴이고 만질수 있던 가슴이었지만
주변의 놀라던 이들이 보던 가슴이 아니라
내게는 할머니의 마음이 가슴에 담겨있어서 였는데
이젠 그 쭈글쭈글한 가슴도 만질수 있는 시간이 없다
내 나이만큼 사랑했던 시간은 어찌 할까
세심한 그 사랑의 손길이 이 나이 되도록 온몸 어디엔들 묻지않은곳이 있을까
이제
당신의 남편 옆자리에 누우시는데
이 차가운 겨울날 얼마나 추우실까
무정한 남편이 미리 자리를 덮히고 기다려주면 좋으련만
갈때도 그리 무정했으니
바램도 무의미한건 아닌가
할머니 내 할머니
귓가에 속삭인다
할머니 먼저가
그리고 기다려 알았지
다음엔 형보다 내가 더 잘생긴 손자가 될거니까 알았지
장손 보다 더 예쁜 손자가 나였다고 잊으면 안돼
잘가
내가 자주 찿아갈께
그래서 할머니 무덤 풀도 깎고 잡초도 뽑을께
그때 흘리는건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흘리는거지
내가 아픈곳이 있어서가 아닌거 알지
할머니 잘가
아프게 떠나지말고
할아버지 만나거든 바가지 많이 긁고
뭐든 할아버지 시켜
등도 긁어 달라고 하고 당신 자식 기르느라 만신창이가 된 팔다리도 주물러 달라고 하고
잘가
할머니 할머니
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