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춤(影舞) 73 - 제3장 다시 세상으로 9 - 내글 -
- 세월은 만남의 기쁨을 더하기도 하지만, 쌓아놓은 세월의 무게도 무시할 수 없다.
9
정연은 이런 소동에도 끄떡없이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그는 지난 20일 동안 여섯 개의 목각 중에 3개를 완성하고 네 번째 목각을 깎고 있었다. 정연이 목각을 깎기 시작한 처음에는 7일 만에 하나를 깎았지만, 두 번째는 6일이 걸렸고, 세 번째는 5일 만에 깎았다. 여섯 개의 목각 중 네 번째 것은 4일 만에 깎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정연이 어리기 때문에 도구를 다루는 것이 서툴렀지만 반대로 손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빨랐다.
정연은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목각을 완성했다. 정민이 동방상제에게 받은 재료는 동방상제의 신목(神木)이였기 때문에 검은 거목의 기를 받기위해 뿌리에 묻어 두었지만, 정연은 신단수의 그림자인 검은 거목으로 직접 깎은 목각이기 때문에 바로 정연이 힘을 쓸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정연은 목각을 완성한 후 처음 사용해 보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직은 정연의 몸에 완벽한 동화가 되질 않았기 때문에 크게 변화되는 것은 없었으나,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은 정연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정연은 목각을 깎는 동안 그런대로 자신 뜻대로 하얀 봉에서 나오는 칼날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정연은 신수 산다와 영의 검을 다루는 다음단계인 극양, 극음, 그리고 중의 세 가지 기중 하나로만 칼날을 만들어 내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수련을 시작했다.
정연은 매일 신수 산다와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통해서 영의 검에 점점 적응하고 있었지만,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준성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준성의 눈에 비치는 정연과 신수 산다의 수련은 문자 그대로 하늘을 가르고 땅을 뒤집는 것이었다.
준성은 정연이 목각을 몸에 차고 영의 검이라는 흰 손잡이에 검푸른 빛을 내는 칼을 들고 사람의 힘을 뛰어넘어 만화에나 나옴직한 믿을 수없는 큰 힘을 가지고 신수 산다와 수련하는 것을 거목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준성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연이 자신의 힘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네가 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단순하게 사회에 적응 하기위한 것들만을 가르쳐서는 안 되겠어…!’
신수 산다의 말로 인해서 준성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 후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
준성은 신수 산다가 정연과 겨루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읽어 내고 있다는 것에 당황했다.
- 작은 주인님의 힘은 오로지 그들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다른 일을 위한 것이 아니다. 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작은 주인님의 머리에는 식구를 무참하게 죽음으로 이르게 한 그들에 대한 증오가 가득하지.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작은 주인님에게 절대적인 주모님이 그런 짓을 하도록 가르치시지 않으셨다.
“주모님은 어떤 분인지 말해 줄 수 있는가?”
준성은 신수 산다가 말하는 주모라는 여인에 대해 궁금해졌다.
- 그분은 주인님을 살리려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 육신을 버리신 분이다. 지금도 주인님의 회복을 위해서 참기 어려운 고통 속에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주인을 더욱 엄하게 훈육시키시는 분이다. 천 일에 한 번씩 오셔서 작은 주인을 가르치고 계시지만 조금의 틈도 작은 주인님에게 보이신 적이 없다.
“참으로 대단한 여인이시군! 성녀라 불려도 되겠는 걸….”
- 글쎄, 그 말은 주모님께는 어울리지 않아. 주모님은 단지 지독한 사랑에 빠져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지. 자기희생이란 아주 이기적인 선택들 중 하나일 뿐이지, 결코 남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없다.
준성은 신수 산다가 의외의 말을 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정연을 대하는 태도나 주인이라는 정민에 대한 충성심을 볼 때 신수 산다에게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준성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복잡한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그건 무슨 소리인가, 어찌 부하된 자로…?”
- 나는 주인님의 종이지 주모님의 종은 아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난 주인님의 충실한 종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허, 놀랍군!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 사람들은 그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때때로 망각하고 있다. 나는 주인님의 종으로서 주인님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의 선택은 주인님이 하겠지만 잘못된 것에 대해 알려드려야 한다. 이것이 나의 위치다.
준성은 신수 산다의 말속에 자신이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이 뼈 있는 말을 할 때면 겉으로는 웃으며 듣지만 속으로는 ‘건방진 놈, 학점을 주나 봐라. 넌 권총이다!’라고 욕을 해주던 생각이 났다. 신수 산다는 상대의 생각을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주인의 생각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준성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후우, 그렇군!”
- 주모님은 자신의 사랑을 위해 몸을 버렸다. 때문에 작은 주인님도 살아남지 못할 뻔 했다. 그리고 두 번이나 주인님이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할 뻔했다. 물론 다른 영의 의지가 개입되어 그렇게 만든 거지만,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 준 것은 그만큼 주모님이 이기적인 영혼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준성은 정연과 대련을 하고 있는 신수 산다를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렇게 말할 수 있겠어…!”
정연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수 산다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수 산다는 정연의 약을 올리기라도 하듯이 여유롭게 공격을 피하며 때때로 정연의 허점을 집어내서 인정사정없이 공격을 가했다. 정연은 번번이 신수 산다의 공격을 받고 바닥에 넘어져 다치고, 신수 산다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 상처가 나서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정연은 신수 산다와의 대련을 멈추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 본 적이 없는 정연은 끝까지 신 수 산다를 이기려고 쉬지 않고 달려들었다.
준성은 정연의 모습을 지켜보기가 민망하여 거목 안으로 들어가 신수 산다가 구해다 준 유물들을 살폈다. 신수 산다가 구해 준 유물들은 신화나 민담으로만 치부되는 것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증명해줄 수 있는 단서를 가진 것들이었다. 준성은 지금까지 실력은 있으나 학문적 성과가 없어 인정받지 못했던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유물에 대한 연구를 틈틈이 하고 있었다. 준성이 연구에 참고할 문헌이 없는 것은 신수 산다가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녁때가 되자 신수 산다가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돼서 끙끙거리는 정연과 함께 준성이 있는 거목 안으로 들어 왔다. 신수 산다가 이미 치료를 했는지 정연의 몸을 흐르던 피는 멈추었고, 보기 흉하던 핏자국도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 작은 주인, 이제부터 교육시간이다. 부탁한다, 나는 먹을 것을 구하러 갔다 오겠다.
“몸이 이래가지고 무엇을 배우겠어?”
- 후후, 약속은 약속이니 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작은 주인?
“마, 맞아! 해…, 아고 아파라!”
- 작은 주인, 엄살피지 마라! 이미 안 아프게 했는데 뭐가 아프다고 그러는가?
“헤헤헤, 알았구나! 하여간 산다에겐 못 당한다니까.”
준성은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신수 산다는 저녁때가 될 무렵이면 대련을 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정연을 치료를 해서 짐짝처럼 준성에게 넘겨주고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가 곤했다. 그 때마다 정연은 꾀병을 부렸다. 준성이 가르쳐주는 것이 어른을 대하는 예의범절이 주가 되다 보니 처음에는 잘 따르던 정연도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 예의범절은 이제 그만 하여도 될 것 같은데, 다른 것을 작은 주인님에게 알려 다오. 가장 필요한 것은 네가 잘 알고 있을 것 아닌가? 그럼 부탁한다.
신수 산다는 준성에게만 자신의 뜻을 전하고 밖으로 나갔다.
“헤헤헤, 아저씨! 오늘은 뭘 알려줄 거야?”
“으음…!”
준성은 정연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정연의 얼굴을 보는 준성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연아,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
“네가 커서? 음…, 그건 말할 수 없는데!”
“왜 그렇지?”
“분명, 아저씨가 들으면 아저씨는 말도 안 된다고 할 테니까?”
준성은 정연이 어떤 때는 순진하게 생각되다가도 어느 순간 영악한 아이로 돌변하여 자신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할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들어봐야 알지, 미리 단정 짓는 건 안 좋은 거다. 그걸 편견이라고 하지.”
“흥, 그건 아저씨가 처음 나를 만날 때 그랬잖아. 날 버릇업고 막 되먹은 아이라 생각하고, 오로지 어른들을 대하는 예의범절만을 지금까지 가르치고 있으니까.”
“그, 그건…!”
“아저씨 말대로, 아저씨는 편견을 가지고 날 대하고 있는 거야!”
준성은 신수 산다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말도 못하고 정연이 하얀 봉으로 영의 검을 다루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 작은 주인, 오늘은 특별한 것을 준비했다.
“뭔데?”
- 후후, 작은 주인이 이제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으니 사람들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밖으로 나가자, 작은 주인.
정연은 그날부터 수저를 쓰는 법을 배워야 했고 신수 산다가 뱃속에서 만들어 주는 농축된 음식이 아닌 일반음식을 먹는 훈련도 받아야 했다. 정연은 음식 먹는 일이 고역이었다. 준성은 익숙하지 않은 음식으로 인해서 고생하는 정연을 지켜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