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 저는 서른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며 언제쯤 성인이 될까 크면 꼭 복수하리라 맘을 먹었더랬습니다. ㅠㅠ 이제와서 이런글을 쓰는건 누군가에게도 속시원히 말 못했던 사연을 털어놓고 싶어서입니다. 상처가 치유되진 않겠지만 이젠 이 맘에 짐을 조금이라도 덜수 있을까 해서입니다.
엄마얼굴도 기억을 못할만큼 4살쯤이었나 부모님을 이혼을 하셨습니다. 제겐 남동생이 하나있었구요. 그래서 아버지는 어떤 여자분과 재혼을 하셨죠. 시골에서 내려와서 먹고살겠다고 별별일을 다 해본
거친분이었습니다. 억세다고 표현하는게 맞겠네요. 말로만 듣던 콩쥐팥쥐였죠. 아버지 출근하시고나면 눈흘기고 꼬집고 밥 입에 막 쑤셔넣고 먹다가 토하면 발로 배까지 걷어차이고 정말 인간으로서 그리 못하죠. 경상도 시골에서 자란 새엄마는 맵고짠 음식만 했습니다. 요리를 원래 못하는거였죠.
6살되는 남동생은 그때부터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반항이라고 해야할지.... 유치원 회비 몰래 빼돌려 다 쓰고 돌아오거나 제 서랍에서 돈을 몰래 꺼내서 하루종일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럴때면 새엄마는 남동생을 손과 발을 묶고 손잡이에 거꾸로 매달아놓고 낚시대로 때렸습니다. 가끔 혁띠로도 때리더군요. 그걸 보면서 힘없고 어린 저는 몰래 숨어서 울었습니다.
하루하루 구박과 폭행은 늘어갔고 저는 새벽에 일어나 혼자 밥을 차려먹고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밥을 차려 동생과 먹는것을 볼때면 도둑고양이처럼 언제 일어나서 밥차려 먹냐고 화를내고 밥 늦게 먹는다는 이유로 다락방에 가둬두고 외출하기 일쑤였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1학년때도
턱걸이로 겨우 학교에 가거나 지각하는 날이 많았죠.
방학이 되면 할머니댁에 놀러가는것이 동생과 저는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물론 할머니댁에 가서
잠을 잘때면 꿈속에서 조차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댁에서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새엄마가 때리고 괴롭혔으니까요. 어김없이 집으로 가야할때면 새엄마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갔고 내려가면서 할머니의 얼굴을 수십차례 뒤돌아 보면서 울어야했습니다. 그런 저와 동생을 보면서 한번씩 왔다갈때면
할머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죠. 할아버지 역시 가슴이 무지 아프셨겠죠. ㅠㅠ
그러다 할머니댁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2학기때쯤이었죠. 하루하루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시방석이었을껍니다. 한겨울 동생과 저를 꼬집고 소리지르고 발가벗겨서는 찬물에 세수하게 했으니까요. 그리고 할머니가 저희를 두둔하시거나 어린애들을 춥게 왜 그리 하냐고 하실때면 저를 살짝 불러내서 협박까지 했었죠. 아무리 어른들이 계셔도 문제를 일으키거나 이른다면 몰래 끌고가서 패주던지 죽여버릴수도 있다구요. 정말 섬뜩하죠.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옆에앉아서 계속 꼬집고 동생과 저는 눈물을 뚝뚝흘리며 눈물밥을 먹었답니다. 잠깐 물가지러 새엄마가 나갈때면 할머니가 동생과 제 밥을 몰래 덜어서 드시곤 했었죠. 억지로 눈치보면서 꾸역꾸역 먹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앞에서 뭐라 하시면 두둔해서 애들이 버르장머리가 없어진다고 없는곳에서 저희를 괴롭혔으니까요.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보다못해 아버지를 불러놓고 애들에게도 신경을 좀 쓰라하셨습니다. 없는곳에서 애들 주눅들게 하고 그럴수 있으니 항상 앞과 뒤를 보라고말이죠.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악처하나가 나은듯 하였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면서 애들에게 얼마나 지극정성 잘하는데 그러냐면서 애들이 속썩여서 맨날 힘들어한다구요. 만약 돈도 없지만 돈 다가지고 도망간다해도 억울하지 않다고 했더랍니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 남매에게 아무런 방패도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함에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늙으시고 가진게 없는게 죄라서 우리를 떠맡아 키우겠단 말씀을 못하신거죠. 그러다 새엄마는 임신을 하였고 따로 집을 얻어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남동생만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고 저는 죽어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댁에서 그냥 학교를 다니겠다구요. 동생이 맘에 걸리긴 했지만 죽기보다 같이 사는게 싫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는 돈을 벌러 외국을 나가게 되었고
몇년후 아버지는 한국에 돌아오게 되어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한달전 새엄마는 저를 데려가기 위해 갖은 협박을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쭈욱 본인이 저와 제동생을 맡아 키웠다고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이 안가겠다면 할머니 할아버지 생활비도 안줄테니 너가 벌어서 먹여살려라~ 나중에 아빠가 차사더라도 너는 없는자식치고 절대 태워주지도 앞으로 볼수도 없다~ 라는둥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고민끝에 그 돈때문에 결국 새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도시락을 싸가던날 뚜껑을 열자 밥사이사이에 하루살이 벌레들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못먹고 빵을 사먹고 집에 가져갔습니다. 그때 새엄마는 물을 떠오라고 하더니 그위에 물을 부었습니다. 죽은 하루살이벌레들이 둥둥 떠다녔고 밥을 말아서 그걸 보는앞에서 먹으라고 하더군요. 정말 지옥같았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말이죠. 옆집 아줌마들한테는 저와 동생때문에 속상해서 못살겠다고 거짓눈물까지 보이며 하소연하기 일수였고 아버지 역시 새엄마 말만을 100% 믿고 저와 동생에겐 관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물론 인문계 보낼리가 없었죠. 선생님과 상담을 하러 새엄마가 오셨을때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실업계 고등학교를 보내달라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고 나중을 위해 열심히 자격증을 따고 틈틈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썼습니다. 분식점에서 배달도 했고 혹 누가볼까 무서웠지만 제겐 용돈을 주지 않는 새엄마와 싸우느니 제가 버는게 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저역시 폭팔하는 날이 왔었습니다. 도서관간다고 밤새는 도서관이요. 2000원 달라니깐 없다면서 화를 내더라구요. 그리곤 방에서 몰래 엄마 친딸인 막내동생에게 뭔가를 열심히 먹이더군요. 그동생이 하는말이 더 웃겼습니다. 내가 먹다가 남기면 언니도 먹어~ 라구요. 제가 그일이 있기 몇일전 엄마 저도 빵먹고 싶어요~ 라고 했을때 왠일로 빵을 사와서는 실컷 쳐먹어라~ 하면서 제얼굴에 던져놓고는 막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주먹을 쥐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새엄마인것을 알면서도 남동생에게 또는 할머니께 피해가 갈까 최대한 공경하고 생신때 생일상까지 차려드렸습니다. 손에 데이면서까지 튀김이며 잡채며 미역국 그리고 케잌과 선물 등등이요. 제가 분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기때문에 곧잘 만들었는데. 동네방네 그걸 음식이라도 했냐는둥 하면서 욕을 하고 다녔더군요. ㅠㅠ 정말 친자식이었음 아마 업고 다녓을텐데 그리하는것을 보고는 그날 대들었습니다. 새엄마라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거 아니냐구요~ 제가 뭘 그리 잘못했냐구요. 단 한번도 말썽안피우고 시키는데로 빨래면 빨래 청소면 청소 새벽에 일어나 동생 도시락까지 모두 싸서 가고 주말이면 실내화,가방 운동화 빨아서 널고 온갖 집안일 다 했는데... 제게 딱 한마디 웃으면서 그러더군요. 너가 아무리 악쓰고 눈물흘리면서 내게 대들어도 난 눈하나 깜짝 안한다. 그래봐야 너만 손해구 바위에 계란치기라면서 넌 내게 부딪혀봐야 깨지기만 할뿐이라구요. 그날 바로 뛰쳐나가서 약을 샀습니다. 그날밤 전 도저히 그렇게 그런집에서 살 용기도 자신도 없었습니다. 두통약과 잠안올때 먹는 타이밍이란 약을 한통씩 사서는 그날밤 먹었죠. 전 티비에서처럼 약을 먹으면 편하게 잠드는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장기들이 꼬이고 뒤틀리고 참을수 없을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지만 죽지는 않고 괴로울뿐이었습니다. 어차피 눈을 뜨고 있는한 학교는 가야겠기에 학교를 나서는데 길이 뿌옇게 보이더군요. 버스에서 겨우겨우 버티다 내리면서 쓰러졌습니다. 응급실로 실려갔고 선생님께서는 엄마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아버지 전화번호를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알고있지 못했고 알고있어도 집에 전화기에 자물쇠를 달아놓았기때문에 새엄마가 없을때 그 누군가에게도 전화를 할 수 없었습니다. ㅠㅠ
하지만..... 주말에 아빠가 지방출장을 갔다 돌아오셨고 안방에서는 새엄마와 아버지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저는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밥도 제데로 못먹은채 식물인간처럼 일주일을 누워있었습니다. 제가 시험공부하느라 약을 먹었는데 그것때문에 아픈거라고 아버지께 말을 했더군요.
정말 무심하고 무능력한 아버지가 너무 미웠습니다. 제말에 귀길이지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딱 한번 제가 울면서 새엄마가 말만하면 때리고 구박한다고 말했더니 당장 무릎꿇고 빌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절대 아버지는 제편이 아니란것을요. 그때부터 철저히 저는 혼자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살아있는 한 살아야했기에 틈틈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돈을 필요할때마다 조금씩 썼습니다. 아르바이트 역시 몰래 했습니다. 알게된다면 돈을 모두 빼앗았을꺼니까요.
그렇게 저는 힘든 삶을 뒤로한채 성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구박은 없어지질 않았죠.
회사에서 늦게 끝나서 집에 돌아올때면 누구와 뒹굴다 왔냐면서 정말 황당한 얘기를 했습니다.
아침에 밥이 먹기싫어 라면을 끓여먹으려고 하자 임신했냐면서 .. 그게 딸에게 할 말입니까?
제게 그런말을 했을때에는 아버지께는 얼마나 많은 이간질과 욕을 했을지 안봐도 알수 있었습니다.
힘들게 3~4년을 번돈으로 대학을 가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자 시집이나 가지 왠 공부냐면서
그동안 돈관리를 맡겨놨던걸 제가 하겠다고했더니 난리를 치더군요. 알고보니 1~2년 벌어놓은건 다 썼더라구요. 딱 한개 적금이 끝나지 않은것만 빼구요. 친자식인 막내동생은 과외다 피아노 학원이다 보내고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그 적금통장만은 제가 찾아서 대학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걸로 담보대출을 받자는둥 돈을 자기한테 맡기라는둥 제가 말을 듣지 않자 몇날몇일을 괴롭히더군요. 그렇게 저는 겨우 전문대라고 졸업할수 있었습니다. 학교가 버스로 가기 힘든 곳이라 중고차를
뽑아서 다녔습니다. 아무래도 오래되고 낡은차라 고장이 잦았고 잠깐 타이어라도 대신 갈아줄때면
돈 내놓으라고 하면서 아버지와 절 이간질 시켰습니다. 한푼도 너한테 쓰지말라고 아버지께서 그러셨으니 너한테 들어가는돈 다 달라면서요. 방세 안받는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이 아파트는 우리집이 아니라 내집이라구요. 그래서 그날 제가 악을쓰면서 대들었습니다.
왜 무엇때문에 아버지와 날 이간질 시키냐구요. 정말 아버지께서 나를 그렇게 막되먹은 딸이니 한푼도 주지말고 도와주지도 말라고 하셨는지 직접 3자대면하자구 말이죠. 그러면서 이건 자기자식이 아니라 옆집 사람이라도 이럴수는 없다구요. 역시나 손이 먼저 올라가더군요. 따귀를 힘차게 때리더니 그걸로도 분이 안풀렸는지 부엌에서 후라이팬을 가지고는 제 머리를 내리칠려고 하더라구요. 아버지가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지만 잠시 이성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남동생과 아버지 방에서 나오시더니 조용히 하라면서 더이상 아무말씀 안하시더라구요. 저는 그날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서럽게 눈물이 납니다. 운전을 하며 회사에 가는 길에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제가 남동생이었다면 26나이에 왜 큰소리 한번 안치고 누나인 제가 그리 당하는걸 보고도 가만히 있는지를요. 정말 미웠습니다. 아버지도 동생두요. 그렇게 회사에 출근했다가 도저히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무서웠습니다. 늘 맞고 자랐고 구박과 미움을 받고 자랐기에 그리고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알기에 할머니댁으로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계셨고 할머니 혼자 계셨기에 갈곳이 그곳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동안도 제게 무조건 참으라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봐서 동생을 봐서 말이죠.
하지만, 할머니도 더이상은 힘들듯하니 나오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할머니가 저를 못받아주는데는 힘없고 생활비 받아쓰는 이유때문이었죠. 무슨 협박을 할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전 다세대에 작은전세를 얻었습니다. 졸업후 직장을 다녀서 1000만원이 되는 돈으로 겨우요.
그렇게 집에서 짐을 작은 제 차 뒷자석에 짐이 꽉차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운전을 하면서 내내 울었습니다. 짐을 가지고 나오는데도 새엄마는 돈이 많은가부지. 나몰래 얼마나 모았길래 그러냐면서 꼴도 보기싫으니 짐차 불러서 한번에 가져가라고 윽박질렀습니다.
혼자 태어나 처음 사는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외진곳이라 도둑이 들기 일쑤였고 밤마다 무서워서 뒤척이는 날이 많았죠. 어렵게 어렵게 아버지께 돈이 없어서 외진데 살다보니 도둑이 들어 무섭다구요. 돈 단돈 몇백이라도 300이라도 있음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새엄마와 32평 아파트에서 살았으니 그돈이 없진 않았을텐데요. 없다고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더군요. 제가 집에서 그렇게 나오는데도 아버지는 단돈 10만원도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도둑이 들었다고 하자 새엄마는 돈이 많아서 찾아놓은 돈이 많으니 도둑이 들지 않냐면서 욕을 하더군요. 할머니께서 제 얘기를 들으시고 제가 사는곳에 한번이라도 찾아가보라구 아버지께 말씀하셨지만 벌어놓은돈 많이 집나가서 사는걸 내가 왜 신경쓰냐면서 나쁜년이라고 했다네요. ㅠㅠ 아버지 맞나요? 정말루요? 전 묻고 싶었습니다.
단 한번도 제말을 들으려 믿으려 하지도 않았고 아버지 당신 한분때문에 그리고 그 여자때문에 저와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고통받고 많은 눈물을 흘리셨는지를요.
지금은 차라리 혼자 살게되어 편합니다. 그나마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명절이나 생신, 그리고 어버이날등 기념일은 모두 챙겨 드립니다. 제가 집에서 바로 나왔을때는 정말 인연 끊고 두번다시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그 집나온 해에는 어버이날 역시 전화한통 않했다면서 제욕을 그렇게 하더랍니다.
입장 바꿔놓고 그렇게 때리고 구박받고 그것때문에 나온 제가 웃으면서 과연 전화를 할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무리 구박하는 새엄마지만 엄마로서의 대우는 해드렸습니다. 어릴때부터 쭉이요. 그게 예의고
해야할 도리라 생각했기 때문에요. 제가 겪은 고통을 지금은 할머니께서 겪고 계십니다.
연세가 너무 많이 드셔서 혼자 거동을 못하시기에 결국 함께 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전에 돌아가셔야 한다면서 노래를 부르셨는데. 아프시다보니 결국 그리되셨지요.
할머니를 모셔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왜냐하면 할머니께 남겨진 집때문이었죠. 완강히 거절하시다가 거동도 못하시고 밥도 못해드시고 해서 결국 모시고 왔지만 집은 이미 본인명의로 바꿔놓고
지금은 목적을 달성했으니 구박이 말도 아닙니다. 저야 나와있으니 안보면 맘이야 편하지만 가서 보면 말도 아닙니다. 90세 노인에게 반말을 하는가하면 딱딱한 맛없는 반찬을 안드신다고 까다롭다고 구박하고 여기저기 끌고다니구요. 병원에 가는날이면 병원비는 고모들이 주신 용돈을 계산을 한답니다.
그리고는 할머니께 밥사달라고 조르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구요. 정말 저는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시시콜콜 얘기하자면 밤새워도 못합니다. 하지만 문제는요. 아버지가 그런사실을 모른다는겁니다. 알아도 듣지도 않고 욱하고 화만 내시니까요. 속이 터지고 문드러집니다. 제가 한마디 하면
할머니한테 오히려 해가 되니까 말도 못합니다. 구박할테니까요. 제가 가면 엄살이 심하고 심술많고
짜증난다고 욕을 하더군요. 제게 왜 아버지와 할머니욕을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하지만, 그여자의 친딸역시 똑같습니다. 저는 그냥 나이 드셔 그런듯하니 이해하라는 말밖에는 못합니다.
저는 지금도 힘이 들지만 만약 할머니께서 돌아가신다면 앞으로의 관계를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못났어도 제아버지이기에 인연이란걸 끊을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이런 관계를 가식적으로 이어나가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원래 그 상황에서만 미워하고 뒤돌아서면 금방 잘해드립니다. 저보고 바보같다고 친구는 그러더라구요. 자기같았음 복수했을꺼라구요. 한가정을 지킨다는건 아버지 뿐만 아니라 저역시도 해당되는 말이니까요. 제가 만약 일을 터뜨리고 말한다면 집이 시끄러워지고 어지러워진다고 할머니께선 무조건 참으라십니다. 하지만, 한 맺힌 할머니 돌아가시기전에 꼭 할말 하고 돌아가시리라 말씀하시지만 저는 살아계실때 편하게 해드리고 싶거든요. 제겐 어머니와 아버지 이상인 분이기 때문에요. 제가 어찌 해야할까요? 그렇다고 제가 자취하면서 아프신 할머니를 모셔올수는 없기 때문에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 한다고해도 고모들과 작은아버지께서 허락하시지 않을테지만요. 저는 요즘도 가끔 악몽을 꿉니다. 잊었다고 이젠 상처가 없어지진 않아도 아물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꿈쏙에서 새엄마에게 쫒기거나 맞고 구박받아 두려움에 펑펑 울거나 무서워 하는 꿈을요. 이 나이에 아직도 그런꿈을 꾸고 깰때면 정말로 눈물이 흘러 이불이 축축해 있습니다.
꿈에서 깨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설움에 한참을 울곤 한답니다. 저도 행복해질 이유 있죠?
어릴때 그리 고생하고 힘들게 살아왔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왜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힘들어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요. 하지만, 이런 저를 이해하는 사람은 몇 안됩니다. 안좋은 기억 과거를 자꾸 생각해서 뭐햐냐구요. 하지만, 평생 잊혀지지 않는 상처가 될듯해요. 힘든일이 있을때마다 기억이 날테니까요. 남동생은 아주 그집에서 잘 지낸답니다. 남자라 그런가 복잡한거 싫어하고 새엄마도 나중에 동생이 모시고 살테니 굳이 밀어낼 필요는 없을테니까요. 저는 딸이기땜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미운털이었으니 더욱 구박이 심했던거 같아요. 막내동생은 아직도 모릅니다. 굳이 말할필요도 없고 죄없는 동생을 미워할 필요는 없으니 잘해주고 있지만 역시 엄마를 많이 닮아서 ㅠㅠ
저 말고도 아마 새엄마 밑에서 힘들게 큰 사람들이 많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두 성인이 되고 잘 살아가겠지만 그 힘든 상처뒤에 항상 행복과 사랑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글을 옮기지 말았으면 합니다. 혹시나 저희 가족이나 누가 본다면 또다른 상처가 될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