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의 나이차이로 주위의 걱정과 축복을 동시에 받은
우리는 올해 태어날 닭띠 아가를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무뚝뚝의 결정체인 경상도 남자와 애교만점 경상도 여자의 닭살행각은
주위를 경악에 금치 못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나마 젊음편인 제친구들은 좀 나았지만
점잖은 오빠의 친구들은 거의 테러수준이라 명하곤 했죠.
닭띠 아가의 엄마,아빠가 되기위해 그랬는지
유난히 닭살행각이 돋보였던 우리의 러브스토리 들어보실래요?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처음 그 설레임..
물론 그를 사랑함에는 변함없지만
처음 그 두근거림을 느끼긴 힘들죠..
아직도 그렇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긴 하지만요^^
친한 친구의 도련님인 그는 친구집과 같은 대문을 쓰고 살았습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는 친하기도 했고,
한 동네에 살고 있었던 터라 하루에 한번씩은 꼭 들리는 사이였죠.
시간이나면 친구집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소주도 한잔씩 했답니다.
그러던 지난 겨울날..
전 실연의 아픔과 가족과의 불화로 술을 찾는 일이 잦아졌답니다.
자연스레 친구와도 많은 술자리를 가졌고,
오다가다 자리를 갖게 된 그의 모습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9살이나 많았지만 무뚝뚝한 반면
자상한 모습에 호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영락없는 경상도 사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강사라 그런지 잠깐잠깐 보여지는 위트가
더한 매력을 갖게 했습니다.
하지만 실연의 그림자도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
죄책감과 자괴감에 누구에게도 내색할 순 없었죠.
게다가 이 곳은 부산인데 그 사람은 곧 하동으로
일자리를 옮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가 들어와 얘기를 청했습니다.
"저 오늘은 저하고 소주 한 잔 하실래요?"
실은 친구의 눈치도 보였지만 좋은 감정이 있던터라
못 이기는 척 따라나갔죠^^*
근처 대학로로 나간 우리는 조용한 분위기의
일식집에 들어가 마주 앉았습니다.
어색한 침묵은 잠시 서로의 얼굴에 홍조가 띄게 되었고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너무나 어이없어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마디...
"내랑 하동 갈라요?"....헉!!
관심있단 말,사귀어보자는 말은 어디로 출장을 보냈는지,
아무리 스피드 시대라지만
내 생각이나 당신에 대한 감정따윈 철저히 배제시켜버린..
어쩌면 장난이라 믿는 게 더욱더 말이되는....
그런 프.로.포.즈.
조금후 저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오빠,저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요?"
그의 대답 "성격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것 말구요"
"그럼 말해보소,하나부터 열까지..."
여하튼 제 언어구사능력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그 다음 만남에 제가 튕기듯 말을했죠.
"오빠..그럼 한달 후엔 오빠 하동가니까
그 때까지만 만날래요?"
조금의 고민 끝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고,
우린 계약과도 닮은 그래서 별로 이쁘지않은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아쉬움속에 그렇게 떨어져버린
우리는 주위의 예상을 뒤업은채(?)
멀고도 가까운 사랑을 지켜나갔습니다.
왕복 6시간의 거리가 멀긴했지만 한 숨에 달음박질치듯
달려와 만나고가고,
저 또한 친구들에게 졸라 함께 놀러가곤 했습니다.
지금도 채팅,편지,전화..뭐하나 가릴것 없이 활용하며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느끼며 지냈답니다.
하동이란 지리적조건덕에 우리의 만남은 그 자체가 여행이었구요.
섬진강 반짝이는 물빛과 지리산의 싱그런 녹음...
남해의 출렁이는 파도와 전라도의 맛깔스런 먹거리...
그래서 매일 볼 수 없음이 아쉽긴 했지만 여느 연인보다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더 많은 행복을 느꼈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애틋한 감정은 지금의 이쁜 추억이 되었어요..
오빠는 곧 부산으로 내려왔고 우린 여기서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꾸몄답니다.
앞으로도 우린 173Km의 거리를 뛰어넘어 사랑했듯이
소중한 사랑을 영원히 지켜나갈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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