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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가 끌리는 이유 (5)그의 조련사, 그녀

瓚禧 |2005.02.21 22:44
조회 1,427 |추천 0

   

반대가 끌리는 이유

 

 

 


(5)그의 조련사, 그녀




그가 멀어져가는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까지 채련은 그대로 대문 안쪽에 서있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발소리에 맞춰 그녀의 두근거림도 잦아들고 있었다.



“휴”



오늘 하루 동안 우신은 그녀를 놀래키는 묘한 재주를 가진 마술사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채련은 알고 있었다. 겉만 변한 것이지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오늘로써 그 사실은 진실이 되었다. 자신이 그를 변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채련을 묘하게 흥분시켰다. 안으로 들어가자 희숙이 기다렸다는 듯 채련에게 다가왔다.



“생일인데 왜 이렇게 늦었니? 케이크도 못 먹고…….”

“오늘 가장 맛있는 케이크를 먹었어요.”



희숙은 채련의 꿈꾸는 듯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사랑에 빠진 그것과 같았다. 자신이 20여 년 전 남편을 만났을 때와 같이 사랑스럽게 예쁘고, 아름다운 표정이었다. 자신의 딸은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자신 역시 혹독한 반대 속에 결혼한 케이스여서 그런지 자식만큼은 사랑에 말리지 않겠노라 결심했던 희숙이었다. 하지만, 오늘 채련의 모습을 보는데 불현듯 그 결심을 깨버리고 싶어지는 그녀였다. 채련은 아직 어린나이였다. 어려서 상황판단이 안 될 수도 있다. 좀더 깊은 사이가 되기 전에 이만 끝냈으면 하는 게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그런 희숙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아이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새삼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느끼고 있는 희숙이었다. 채련은 방에 들어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버튼을 눌렀다. 최신 가요 컬러 링이 귓가에 맴돌고 나서야 유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현은 채련이 미쳐 말을 꺼내기도 전에 종알대며 쏘아대기 시작했다.



[뭐야? 그런 킹카라고 말을 해줬어야 하잖아!]



핸드폰 너머의 유현은 잔뜩 들떠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치 불공정한 심판에 대들 듯 그렇게 채련을 몰아붙였다.



[아저씨가 킹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있는 것들이 더한다니깐. 그래도 놀라운 발전인데? 그런 목석같은 남자가 꽃까지 선물하다니 말이야. ]

[나도 좀 의외였어.]

[거봐. 남자는 대중심리가 있어서 그런 상황이면 변하게 되어있다니깐.]



우신을 데리고 생과일 전문점에 데리고 가라고 코치 해준 건 유현이었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상황에서는 다른 여자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다감해진다고 귓뜸을 해준 그녀였다. 하지만 채련은 단지 우신이 그런 이유로 자신에게 그리 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유현의 코치가 조금은 효과가 있었지만 말이다. 다음날 학교에서도 유현은 연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채련에게 말했다.



“완전히 로맨스 소설이잖아. 나이 많고 능력 좋은 멋있는 녀석, 싸가지는 없다. 그런 녀석을 평범한 여자가 사로잡는다?”

“너 진짜 그럴래?”

“맞는 말이잖아. 왜 나 같은 퀸카한테는 그런 놈이 안 걸리는 거야!”



유현은 정말 못마땅한 듯 의자 모서리를 살짝 걷어차며 말했다. 그리곤 책상에 앉아 예습하고 있는 채련의 책을 치우고선 자신의 얼굴을 바짝 붙였다.



“진도는 좀 나갔어?”

“진도?”

“그래! 손잡고, 껴안고, 뽀뽀하고, 키스하고 그 다음은 알아서 상상해!”

“망측해. 이봐요. 홍유현씨! 난 생짜 초보라서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요?”

“모른다는 계집애가 그런 킹카를 물었어?”



유현은 채련을 잔뜩 놀리고선 도망가 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우신이 꽤나 매력적이었나 보다.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런 남자를 자신이 탐을 내도될지 슬슬 걱정이 밀려오는 채련이었다. 그날 저녁 다른 때와 다름없이 채련은 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신은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슬슬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그런 적은 없었다. 모든 남들보다 열심히 일에 매달리려 노력했던 그였다. 일은 자신을 배신하는 법이 없었다. 자신이 매달린 만큼, 딱 그만큼 성취감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그를 일에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해 댔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무언가에 미치지 않으면 우신 자신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일보다 채련이 더 눈에 밟혔다. 그녀가 더 소중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철부지 애를 밖에 놔두고 온 것처럼, 그의 신경을 계속 자극하는 그녀였다. 추운 날 오늘도 혹시 그의 오피스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 신경이 쓰이는 지라 우신은 일찌감치 퇴근길에 올랐다. 고속 엘리베이터가 무척 빠름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게임을 하고 싶어 조급해 하는 꼬마 사내아이처럼 마음이 앞서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자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약속을 한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있다고 연신 확신하며 중얼댔던 그였다.



“있어라. 있어라. 있어라.”



주문 아닌 주문을 걸며 모퉁이를 돌았던 우신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모습이 보였으니, 얼마나 반갑고, 좋은지. 우신은 조금씩 박동수가 빨라지는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박동수였다. 우신이 한두 걸음 더 걸어가자 채련이 우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채련 뒤쪽에 나 있는 창문 사이로 지낸 해가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사춘기로 돌아간 것 같군. 여자를 보며 떨리는 가슴이라니.’



우신의 발걸음 소리였다. 채련은 이제 딱 한번만 들어도 그의 발자국 소리를 가려낼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은 꽤나 퇴근시간이 빠르시네요? 한참동안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오늘은 또 무슨 일이지?”



채련을 보고도 애써 담담한 듯 말하는 것이 슬슬 힘에 부치는 우신이었다. 담담한 어조보다 반가운 어조가 먼저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는 것이 힘이 들어가는 우신이었다.




‘벌써 내 마음속은 저 꼬마아이를 인정하는 건가?’



우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채련은 우신을 향해 무언가를 내밀었다. 곱게 포장된 작은 사각형의 선물이었다.



“뭐지?”

“풀러보면 알잖아요! 앗! 잠깐. 저 가고 나서 보세요!”




채련은 풀러보려는 우신을 저지하고는 뒤돌아 엘리베이터로 향하면서 말했다.




“아저씨를 좀더 오래보고 싶지만, 전 입시지옥에 빠져 허덕이는 고3 수험생이랍니다. 오늘은 이만 갈래요!”




항상 천방지축인 여자였다. 자신의 마음대로 들어와 잔잔한 그의 가슴을 멋대로 헤집고 다니는 그런 여자였다. 하지만, 마음대로 들어온 것처럼 또 마음대로 빠져 나갈까봐 겁이 나는 그였다. 채련의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오래토록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조차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그녀가 앉아있었던 차가운 복도에 앉았다. 그녀의 온기가 아직도 벽 속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던 우신은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내가 점점 빠져들어 가는 건가? 이게 뭐하는 짓인지. 이봐. 김우신. 이런 것 안 어울려.”



우신은 자신을 타일르는 듯한 말투로 말하고는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그녀가 준 선물을 풀렀다. 선물은 뜻밖에도 어린왕자였다.



“어린 왕자 책이라.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꼬맹이 아가씨!”




우신은 마치 그녀가 있는 듯 허공에 대고 중얼댔다. 책을 한번 휘리릭 넘기는데 깨알 같은 글씨 하나가 우신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글동글한 서체. 그 글씨체는 그녀의 것이었다.




[어린왕자는 어렸을 때 한번, 어른이 됐을 때 한번, 노인이 되었을 때 한번 이렇게 3번을

읽어야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대요. 읽을 때 마다 다르다고 하던걸요?

제가 이 책 선물해서 놀랬죠? 아직은 놀라지 마요! 이 책 곳곳에 보물을 잔뜩 숨겨 놓았

으니깐요. 그러니깐 이 책은 보물책인거예요. 한번 찾아보세요.]



맹랑한 꼬마 아이였다. 우신은 서둘러 책장을 넘겨보았다. 그녀의 말처럼 책 곳곳에는 그녀의 흔적들이 베어있었다. 어떤 곳에는 짧은 시가 써있는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그녀의 생각들이 적혀있었다. 책 사이사이 빈공간 마다 그녀의 공간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참을 넘기며 읽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린왕자가 아니라 채련이라는 한 공주님의 책에 푸욱 빠져 버렸다. 우신은 답답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불을 켰다. 소파에 앉아 채련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을까? 우신은 다 읽은 책 중간 페이지 쪽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 부분은 채련이 노란 색상지로 접어놓은 부분이었다. 그 색상지위에는



[맨 마지막에 읽으세요! 다 보고 있다고요!]



라고 반 협박으로 써놓은 그녀의 글씨가 있었다. 우신은 노란 색상지를 빼었다. 그 부분은 바로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진다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읽었던 부분이었다. 우신은 그 내용보다는 그녀의 글이 더 궁금했다. 우신은 조급해진 나머지 급하게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한 페이지에 그녀의 글이 자그마하게 적혀 있었다. 다른 글씨와는 달리 너무 작은 글씨라 우신이 넘겨버렸던 것이었다. 우신은 눈을 크게 뜨고 그 글을 읽었다.




[길들여지다 에 대해 이제 알겠어요? 아저씨는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깐, 내가 가르쳐 주려고 이 책을 선물하는 거예요.

아저씨! 아저씨에겐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소중하게 길들인 것이 있나요?

없다고 해요! 없다고. 없다고 해야 이야기가 되거든요.]




그 어이없는 협박성 메시지에 우신은 피식 웃으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있죠. 아저씨에게 장미가 될 거예요. 아저씨가 길들이는 장미요. 여우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여우는 언제든 떠날 수 있잖아요. 떠날 수 없는 장미가 좋아요. 하지만 숱한 장미와는 다른 아저씨만의 장미가 되어서 아저씨의 별에서 아저씨만을 기다리고,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래요. 아저씨! 고마워요! 내 삶에 뛰어들어 줘서.]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였다. 우신은 책을 덮고서도 한참을 소파에 앉아있었다. 정말 특이한 여자였다. 내 삶에 뛰어들어 줘서 고맙다는 채련의 글귀가 귓가에 맴돌 듯 흩어져갔다. 우신은 낮게 읊조렸다.




“내가 더 고맙다. 내 삶에 뛰어들어 줘서.”




마치 교통사고를 당하는 확률처럼, 벼락에 맞을 확률처럼 이렇게 채련 같은 여자를 만난 게 우신은 고맙게 느껴졌다. 하느님이라는 신을 믿어 본적 없는 그였지만, 하늘에 만약 누군가가 있다면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이, 그동안 그토록 자신을 방치해 두셨던 신이 채련같은 여자를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에 대해 자신의 곁에 내려 준 것에 대해 미치도록 고마워 지고 있는 우신이었다. 우신은 테이블 위에 놓여진 책을 들어 책상 위에 소중히 올려놓았다. 그때 우신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메시지가 왔다고 알려왔다. 우신은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채련이었다.



[책은 다 읽으셨나요? 앞으로 좀더 재미난 일이 기다릴꺼예요. 우리의 약속된 백일이 지나도 아저씨가 저를 놓치기 싫을 정도로 재미난 일 말이예요. 앞으로 나 아저씨를 변화시킬꺼예요. 두고 보세요! 좀더 감성적인 남자로 만들테니깐요-조련사 채련]




그 메시지를 읽던 우신은 조련사 채련이라는 글씨에서 웃고 말았다.




“하하하하하하”





철들고 나서 처음 웃어보는 큰 웃음이었다. 박장대소가 이런 뜻이었던가? 우신은 그녀의 앙큼한 짓에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었다. 우신은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변하고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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