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어 놓으셨나? 밤공기가 찬데…!’
- 드르륵!
“어어 귀, 귀신…!”
- 쿵!
월아는 방 한가운데를 감싸고 있는 흰 연무와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고 거품을 물며 기절하고 말았다.
“월아야, 정신 차려!”
“으응…! 으악, 귀, 귀신…!”
“애가 무슨 소리야!”
“아, 아가씨! 혹시 귀신 못 보셨어요?”
“귀신이라니?”
“부, 분명 귀신을 봤어요!”
“호호호, 네가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헛것을 다보고! 오늘은 장 집사님에게 이야기 할 것이니 푹 쉬도록 해라.”
“아, 아니란 말이에요! 분명히 봤어요. 긴 머리가 사방으로 뻗혀 오른 게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도깨비불까지… 어휴, 진짜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단 말이에요. 아가씬 자느라고 못 받겠지만, 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아, 이 아이가 내가 운기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모양이구나! 운기 하는 모습이 그렇게 흉악한 모습인가? 책에서 읽었을 땐 그런 내용이 없던데. 오히려 영롱한 운무가 피워 올라 환상적인 모습이라고 했어. 앞에 거울을 놓고 볼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따 정 공자님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런데 화령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어제 밤 운기를 하면서 주원이 알려준 몸에 맞지 않은 운기법 때문에 기의 흐름이 엉켜 있어 이상 현상이 발생했던 것인데 그걸 월아가 목격했던 것이다. 물론 본인은 운기를 하는 동안 완전히 황홀경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지난밤에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지 못했다. 화령은 지난밤을 꼬박 운기를 하며 보냈다. 몸에는 차다 못해 넘칠 듯 많은 내력이 있었지만 제대로 갈무리가 되지 않아 있어도 없는 것과 별 차이는 없는 게 아니라 조금은 있었지만,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물론 혈색이 좋아졌고, 보통사람의 몇 배로 힘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몸도 피로를 잘 느끼지 않고 가벼워 졌다. 이런 정도의 변화는 몸에 지닌 내력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밤새도록 운기를 한 탓에 겉돌던 기가 거의 대부분 내력으로 제자리를 잡았고, 몸에 지금까지 살면서 쌓인 좋지 않은 기운들도 완전히 빠져 나갔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앞으론 이런 현상이 없겠지만 조금 괴기스러운 것이 아니라 심하게 흉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연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정민은 아침을 먹고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후원의 정자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데, 지금 그것이 헷갈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가치를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게 의욕상실 중이었다, 단 한 가지를 빼놓고. 그 한 가지, 소록소록 눈 쌓이듯 쌓여가는 화령에 대한 감정을 빼놓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기에, 아니 전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는 게 무료했다. 아니 무서웠다.
이런 생각을 잊어 보려고 화령에게 전수할만한 무공이 있는지 머릿속 수장고를 정리해보았다. 결국 찾아낸 것이…없었고, 그냥 만들어 낸 무공이 빙옥수(氷玉手)와 화염강(火焰剛)이었다. 무공의 성격상 정파 계열의 무공이 아닌 사파 계열의 무공이었지만 정민에게는 정사의 구분 개념이 아예 없기 때문에 별 상관치 않고 만들었다.
처음에는 천부무관 입경이란 책에 있는 무공들을 중심으로 전수할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우선 자신의 몸과 마찬가지로 화령의 몸에 있는 내공이 강호 무림의 내공과 다르다는 것이 문제였다. 방중선의 경우 실제로 정민에게 전해 받은 내공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별 부작용 없이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이지만 화령은 전적으로 정민의 내공을 받아 내공이 증진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에 걸맞은 것을 찾으려 했지만 하나같이 맞지 않는 무공일색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도 모르는 몸이 익히고 있는 무공을 남에게 전수하는 것도 어불성설 이었다. 그래서 아예 화령에게 알맞은 무공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여자가,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설치는 게 영화처럼 보기 좋은 건 아니야. 피가 여기저기에 뭍은 옷을 입고 설쳐대는 걸 보기에 좀 그렇지. 더구나 짝퉁선녀가 핏물에 절은 옷을 입고 설쳐댄다? 이건 아니야…!’
무공이라면 검법이나 도법, 그리고 권법을 우선 생각하겠지만, 여자의 몸으로 칼을 들고 설치는 게 썩 보기 좋은 게 아니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제외시켜 놓았다. 남은 건 권법, 하지만 여자가 주먹으로 사람을 패는 모습도 좀 그랬다.
‘그렇다고 개 패듯 사람을 쥐어박고 있는 모습도 그렇군! 어라, 이것 봐라…, 이게 좋겠어! 에고, 시전방법이 없네.’
여자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깔끔한 무공을 찾다보니 ‘북해빙궁(北海氷宮)’이라는 곳의 무공을 설명하는 글을 발견했다. 정확한 시전 법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빙궁의 무공에 당하게 되면 얼어 죽은 모습이라고 했고, 발출된 기의 성격이 차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적혀 있었다.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초보자가 몸속의 기를 발출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민은 그런 걸 따지지 않았다. 자신의 경우 머릿속에 있는 책의 내용만으로 별로 고생을 하지 않고 각종무공을 쉽게 시전 했기 때문에 무공이란 것을 수련하는 게 어렵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만드는 것도 그렇게 쉽게 생각했기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무공을 창안했던 것이다.
‘하하하, 역시 탐구정신과 창의력만이 나의 살길이다!’
생각방식의 전환은 때로 이런 일도 있게 한다. 만드는 과정 중에 몸이 고생했지만 생각은 간단명료했다. 우선 몸에 지니고 있던 얼음접부채를 생각했다. 기를 주입하면 찬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얼음접부채를 통해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얼음접부채를 그냥 화령에게 주려고도 생각했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우선 자신에게 선물로 준 방중선의 입장을 생각해야했고, 얼음 접부채의 힘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스스로 얼어 죽었던 교응방의 방주 위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얼음접부채의 역할을 따져보고 부채에서 차가운 기가 발출되는 원리를 알아내는데 신경 썼다.
‘햐, 이거였군! 전기를 흘리면 한쪽은 차가워지고 한쪽은 열이 나는 반도체의 원리를 생각나게 하는군. 그럼 이게 그냥 옥하고 금속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반도체의 성격을 이용했다는 말인데…, 어허 참으로 절묘하다, 절묘해!’
가끔 무협지를 읽으면서 황다하게 생각했던 신병이기(神兵利器)들의 기능이 어느 정도 실현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몸속에 쌓여있는 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직접 몸에서 열기와 냉기를 발출하는 방법을 찾은 것의 결과물이 바로 빙옥수(氷玉手)와 화염강(火焰剛)이였다. 이 두 가지는 어디까지나 정민이 만든 무공에 중국말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국말로 했다면 얼음 손과 불꽃 몽둥이가 되겠지만 여기는 중국이라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쓸 수 있다면 균형이 맞아 좋겠지만 성격이 다른 기를 동시에 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발출할 때 한쪽만 발출한다면 몸에 반대성격의 기가 남는 관계로 장시간 무공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가지 기만 몸 안에 쌓이는 것도 썩 좋은 건 아니지만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은 운기를 통해서 회복이 가능한 일이니 그리 나뿐건 아니라 하겠다. 그러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한 운기법을 가진 무공이 흔치 않다. 그래서 열화장(熱火掌)이나 한빙장(寒氷掌) 같은 장법을 쓰는 사람이 이슬비에 옷이 젖듯이 말년에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정민은 이런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법을 발상의 전환이라는 방법으로 아주 쉽게 만들어 냈다.
‘안되면 되게 하라! 특전사 정신으로 해결한다, 크크!’
몸을 움직이면 열이 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열에 반대되는 한기를 몸에서 만든다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전기와 반도체의 원리를 기의 흐름과 사람의 몸으로 끼워 맞춘 것이다. 기를 전기처럼, 사람의 몸은 반도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밤새도록 그걸 찾기 위해 몸을 볶아댔다. 결국 몇 번의 저승길에 발길을 내딛는 모험 끝에 방법을 찾아냈고, 그걸 체계화 시켰다. 빙궁의 무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차가운 기를 발출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차가운 기를 무언가에 실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차가운 기의 덩어리, 즉 강기를 만들어 그것 자체로 상대를 치거나 강기를 쏘아 보내는 무공이었다. 즉 파동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자를 만들어 내는 무공인 것이다.
‘아, 역시 나의 머리는 강호 무림역사에 길이 남을 장소…는 아니군. 하여간 머릿속에 있는 무공서적하고 소림사 수장고 하고 한번 비교해 보고 싶다.’
이렇게 단시간 내에 하나의 무공체계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머릿속에 들어있는 문헌창고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 가지 중에서 여자에게 적합한 것은 빙옥수였다. 남여를 표현할 때 음양으로 표현하는데 그만큼 여인의 몸이 차가운 성질을 많이 띠고 있다는 것이다. 빙옥수를 시전하면서 몸에 남는 열기를 해소하는 데는 여자의 몸일수록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반대로 화염강은 남자에게 더 적합한 무공이었다. 여자의 몸에 냉기가 쌓이면 남자보다 더 큰 해가되기 때문에 몸에 남는 냉기를 해소하기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는데 당장 구하기도 어려웠고, 적어도 정민 정도의 내공과 무공의 성취가 있어야 했다. 때문에 적당한 것이 생길 때까지는 화염강을 화령에게 전수 하기는 힘들 거란 생각에 머릿속에만 담아 두었다.
‘자, 이제 책으로 만들면…흐흐흐, 누구는 하룻밤사이에 천자문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난 무공을 만들었다!’
동이 트자 곧 바로 하인에게 부탁하여 흰 천을 구했다.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급한 대로 천을 생각했던 것이다. 하인이 구해다준 비단 천을 적당히 잘라 책으로 엮었다. 그리고 빙옥수의 수련 방법을 적어 내려갔다. 다 적고나니 아침 먹을 시간이 되었고, 아침을 먹고 다시 책 하나를 더 엮었다. 그 것에는 방중선이 지니게 된 내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검법을 하나 창안하여 적었다. 창안 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검법을 비교하여 이상적인 검법을 정리한 것이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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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이 국경일이 되는 그 날까지… 아자 !
한글을 사랑 합시다.
내글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