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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엄마 |2005.08.29 13:35
조회 1,884 |추천 0

이글은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중년 여성으로서 쓴 글입니다.

나이가 어려서.. 생각이 덜 완성된 젊은 10대들의 스쳐지나가는 한마디에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으니

가급적 함부로 답글 달아주시지 말기를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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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는 내 아이들..

그런 내 아이들이, 그 이름도 낯선 아빠라는 사람을...언 2년만에 만났다.

아빠랑 함께 했던 세살, 네살 기억은 전혀 없는 내 아이들로서는...

긴장되고 흥분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아빠를 만나고 돌아온 녀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또 한편으로는 지난세월 한스런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듯.. 미안한 표정으로..

"엄마! 괜찮아?"

"그럼~ 엄마는 우리 ㅇㅇ랑 ㅇㅇ만 좋으면 다 괜찮아!"  "정말이야!"

 

사랑과 믿음의 크기만큼...

미움과 증오의 무게도 늘어나는 법인가?

유난히도 애교많고 가정적인 나는.. 한 남자의 아내로 살면서...

된장찌게 끓이고 와이셔츠 다려가면서...사는게 소원인..

국내 최고 그룹의 소위...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언제나 일만이 전부였던 내게... 이 남자쯤이면... 결혼할 만한 사람이겠구나 싶을 만큼..

순진하고 성실해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이미 결혼을 결심하기에 늦은 나이인터라... 우리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렇게 늦은 서른하나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과 동시에 들어선 아이..

남편은 정말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었다.

모든 신혼이 비슷하겠지만... 나는 말 그대로 공주님이었다!

기다리고 있을 불행의 크기에 비례할만큼..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여자로 태어나서 처음 누리는 행복.. 나는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소박한 우리의

결혼생활에 아내로서 최대한 충실했다.

 

청상과부 홀어머니의 외아들 구조..

게다가 유난히 가족 결속력이 강한 호남권 그의 집안..

그의 엄마는... 세련된 시어머니 였으나, 아내였던 난 언제나 그들 가족이라는 그룹속에서는

낯선 손님인 듯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자동차 앞자리조차도 당연히 아내인 내가 아니라 그 엄마의 몫이었으니...

그 엄마의 지나친 아들 사랑은... 어찌보면 영화 올가미를 연상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문제가 되고도 남을법한 그의 엄마와의 모든 상황들이..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어른들 비위 맞추는 것 쯤은 애교많고 사교적인 내게...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냥 젊은 내가 당연히 맞추면 되는 것인데... 무슨 트러블 있을 일이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날....남편은 러시아 발령을 받았고..

그당시 둘째아이가 20여개월, 큰아이는 35개월.. 우리나이로 세살, 네살

핏덩이들 손 잡고.. 공항에서 눈이 시퍼래지도록 울면서 남편을 배웅한 것이..

우리들의 영원한 이별이 될줄.... 그때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

 

넉달에 한번씩 남편은 한국을 오게 되었고..

나는 유난법썩을 떨면서 남편 환영준비를 하곤 했다.

집에 온갖 풍선을 장식하는 일이며..

꽃다발이며, 샴페인이며... 케익까지 준비해서 남편의 휴가를

가슴뭉클한 가족의 사랑으로 맞이해 주고 싶었고.. 늘 그랬었다.

 

나는 남편의 월급날...

러시아로 국제전화걸어.. 잘쓰겠다는 말도 아끼지 않는 아내였다.

남편 앞에서는 옷 한번 갈아입거나 방구한번 끼어본적이 없는...

그런 세련된 아내였다.

또 나는 결혼과 동시에 단 한번도.... 그의 엄마를 빼 놓고 휴가를 가본적이 없었다.

휴가지에서... 삼겹살에 소주같은것도 한잔 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집에서 먹던 반찬을 그대로 싸 가지고가서 먹는 그의 어머니 습관때문에...

그런일은 내 바람으로만 끝났고, 난 불평한마디 하지 않았었다.

 

야채와 김치류를 입에대지 않고 큰 그는... 어른인데도 입맛이 무척 까다롭다.

그의 엄마는... 목숨보다도 소중한 아들의 입맛을..

한마디로 최고급으로만.... 길들여 놓았다.

생선중에 최고 비싼... 흰살생선류.. 한마리에 몇만원쯤 하는 그런 생선만 아들에게 먹인다.

야채류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람... 당연히 냉장고에 다녀온 밑반찬엔 손 갈리 없다.

후후... 처녀시절.. 소원만큼이나  내 요리실력을 발휘할 남편을 만난 것이다.

첫아이, 둘째아이를 임신해서도 남편의 저녁 밥상을 위해...

퇴근후에 두시간씩을 주방에 투자하곤 했지만, 남편이 맛있게만 먹어준다면..

나는 그로써 기뻐했다.

그당시.... 회사에서는 업무적으로 잘 나가던 내가..

결혼과 동시에 가정에 너무 치우치다보니.. 상사의 눈밖에까지 나곤 했다.

회사에서의 밀리는 입지는... 내 가정의 행복에 비하여... 아무런 무게감도 느끼지 못했었으니..

내가 얼마나 가정에 목숨을 걸고 있었는지 대충 알만하다.

 

그렇게.. 그렇게.. 2년여를..

시어머니 챙겨 가면서, 아이들 키워 가면서, 바쁘게 보냈다.

그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간혹 프리랜서로 일을 하기도 했다.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남편과 함께 살게된... 남편의 영구 귀국일..

며칠전부터 온 집안을 다 들어내 대 청소를 하고...

남편에게 먹일 소 꼬리에, 사골에 다 우려 내 놓고..

그사람 좋아하는 비싼생선 큰 맘먹고 냉장고에 채워두고..

온 집안엔.. 플랭카드며, 풍선이며... 하룻밤을 꼬박새운체 그의 환영준비를 완벽하게 끝냈다.

여섯살, 다섯살 두 녀석들에겐...

아버지를 환영하는 노래까지 연습시켰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나와 내동생 낳아주시고, 고생과 수고로 길러 주시네!"

 

그사람을 픽업하러 가는 길에... 맞추어둔 두개의 꽃다발..

트렁크에 가득한 풍선과, 샴페인...

운전하며 가는 길 내내....아이들과 노래연습을 맞추고..

사랑하는 가족들 곁으로 돌아온 그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런데...

2년만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그는....

우리의 두근거리고 흥분된 가슴과는 상반된 표정과 모습 그 자체였다.

그 어린 아이들이 어버이날 노래를 불러 주어도...그 얼굴에는 반가움은 커녕

짜증과 피곤함만 묻어났다.

마치... 그는 가족들을 만난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은 것 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렇게....2년만에 내 아이들의 아버지도 아닌채... 더이상 내 남편이 아닌채...

우리앞에 돌아온 것이다.

 

그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지금은 자기 자신만 생각하겠다고 했다. 회사일이 복잡해서 머리 아프니..집나가서 따로 살겠다 했다.

마른하늘에서 내려치는 벼락을 맞은 나는...

앞뒷문장이 당연히 이해되지 않아서...

그에게 되물었다. 피곤하고 아프면 당연히 내가 해 주는 좋은 음식들 먹으면서..

집에서 다녀야지.. 또, 그간 못본 아이들 재롱 보면서.. 에너지 충전 받는게 당연한데

어찌 그런 이유로 집을 나가냐고 했다. 그게 말이 되냐고...

 

그는 입씨름도 하기 싫어했다.

단 5분도 나와의 대화를 기피했다.

한국사람 전체가 싫단다. 자식도 자기가 있고 난 다음에 있는 거라는 둥..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해 댔다.

또 어느날은.. 미국가서 살면서 돈만 보내주면 않되겠냐고 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의 마음을 잡아보려고..시댁에 내려간 사이..

그는 자기짐을 모두 빼서 어디론가 옮겨버렸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나는 답답해서 가슴이 터지는줄 알았다.

그러나 내 주변에 친정식구들이며, 그의 가족들이며, 그의 선배며....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 어느누구하나... 도데체 그사람의 본심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그는 귀국바로전에 그의 회사에서 통관업무를 담당하는

스물다섯의 러시아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러는 와중에 한국에 귀국한 것이었으니..

얼마나 한국이 싫었고, 집이 싫었으며, 아내인 내가 싫었겠는가?

한국사람이 다 싫은 것이 아니라, 한국인 아내 내가 싫었을 거다.

그녀는 러시아 무슨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라고... 나중에 그의 엄마가 내게 자랑처럼 떠들었는데 그녀와는 영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되었던지... 아마도 미국가서 살고싶다는 그의 의지도

자유스러운 나라에서 그녀와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뜻이었을 게다.

 

.....................중    략 ..............................................

 

남편과 아이들을 전부라고 믿고사는 아내들은..

대강 이정도가 되면... 어느정도의 충격일지 짐작할수나 있을까?

처절한 고통의 시간들이었다.

 

어린 것들을 재우고.. 거실바닥에 앉아.. 나는 밤만되면 폐인이 됐다.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세병씩이나 마셔댔다.

그래도 정신은 또렷해지기만 했다.

목구멍은 타들어가고, 가슴은 터질것 같은날 연속이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수면제로, 신경안정제로... 버티기 시작했다.

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미칠것만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우연한 기회에 일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고

앞뒤 생각없이 생각을 분산시켜야만 죽지 않을 것 같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님의 뜻이었는지, 나는 밥 먹고 사는데 어려움 없이... 돈은 저절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행복의 시작과 끝은 따듯하고 예쁜 가정..

그 가정이 붕괴된 그 때... 한달에 천만원을 벌어도 나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었다.

여러가지 면에서 아이들에게 치중해야 할 그 어린 시기에..

아이들에게 본능적인 것(먹고, 입히고, 재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2년을 버텨 보았지만, 떠난 그의 마음은... 우리에게 되돌아 오지 않았다.

 

모든것을 포기한채.. 나는 정확한 원인도 모른채..

이혼이라는 것을 선택했고, 내가 결심을 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이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사이... 그는 우리의 보금자리인 33평 일산의 새 아파트까지 팔아버렸고..

내게 남은건 사천마원짜리 전셋방...

대출을 제외한 아파트에 불입된 돈의 출처가 내 주식이며, 나의 퇴직금일진대도..

그는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명의로 되어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는 그 아파트를 처분했다.

그리고 아파트를 처분한 돈은.. 그대로 그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후.. 훗날 위자료로 2천만원을 주었으니.. 일부는 내게 돌아온 셈이다.

 

그는.... 나와 도장을 찍고난후..

러시아여자를 귀국시켰는지... 그들은 나와 이혼 신고후 6개월만에 부부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 한번... 절절하게 찾지 않는 그가 미워서...

이혼후의 세월도 그에대한 증오의 세월로 보내야만 했다.

 

후후... 그런데..

그런 그가 요즘 아이들을 찾는다.

너무 보고싶다고... 만나게 해 달라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집으로 전화를 했던 그사람은 아이들과 통화를 했고..

아빠랑 살았던 기억이 전혀 없는 내 아이들은... 평소 "우리도 아빠가 한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내 가슴을 무너져내리게 했던 내 아이들은... 얼마나 아빠가 반가웠었는지...

아빠를 보고싶다고 내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왔다.

 

아빠없이도 잘 살아가는 우리들인데..

이제 웃음꽃 피우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우리 들인데...

내 아이들한테 전화해서 어린것들 마음에 불 지펴논 그가 또 미워지기 시작했다.

 

오랜 고민끝에.. 아이들 아빠를 한번 만나게 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년만에 부녀간의 감격스런(?) 상봉이 있었던 날..

그는 내 집앞에 아이들을 내려주고는....

고맙다는 문자 한마디로 대신해왔다.

다음달에 있을 큰아이 생일날 선물사서 오겠다는...

 

나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해서 미칠것만 같다.

내가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그사람이 어찌살건 말건...

내 아이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제정신이 돌아온 그가 후에 받을 그 고통을 복수라 생각하고..

그 어떤 물리적인 방법도 가하지 않고 완전한 피해자가 되는것이..

그 사람의 후회의 눈물을 더 뜨겁게 해 주는 것이라 믿었었다.

 

그런데... 그런데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라 하는 것을 보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막을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나는 말도 않되는 메일을 그에게 보냈다.

네가 4년전에 러시아년때문에 자식들을 버렸으니..

이제 다시 네가 자식들을 택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년을 스스로 정리하라고 했다.

그러기 전에는 불결하고 더러운 그 몸뚱아리로 내 자식들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아이들을 위해서 성의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은 자유롭게 만날 수 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아이들 말로는... 니들이 보고싶어서 매일 울면서 살았다고 얘기했다는데...

 

후후...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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