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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동막골

백승권 |2005.09.01 16:22
조회 1,244 |추천 0
갈 수 없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마음먹고 찾는다고 찾아지는 곳도 아니었고   기다린다고 알아서 찾아오는 곳도 아니었다. 개인의 노력과 욕망에 관계없이   그 나라는 시작을 알 수 없었고 따라서 그 마지막도 예측할 수 없었음이다.   머리와 몸통은 하나, 팔과 다리는 두개씩. 보통의 우리와 다름없이 생긴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지 않았지만 평화로웠고 평범한 걱정 속에서도   낙관적인 시선을 놓고 있지 않았다. 땀을 흘려 일을 하여 의식주를 해결했으며   사랑을 하고 아이를 갖고 어른들을 모시고 사는 작은 동네를 이루고 사는   오래전 우리나라 시골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 곳은 다른 세상이었고   자연이라는 벽을 통해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곳이었다. 그곳에 사는 그들은   필요하다면 산을 넘어 여기저기를 오갔고 그것은 순전한 걸음을 통해서 였다.   그들에겐 콘크리트 건물도, 상점도, 자동차도, 가로들도 필요없었고 없다한들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자연과의 협약을 이어간채   그들은 자신들의 몫과 권리를 누리는 중이었다.  
이방인. 서로 다른 군복을 입고 산을 헤매이다 한곳에 다다른 그들은 외부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놀라는 것은 이방인들이었고 원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총부리 앞에서도 밭을 망쳐놓은 멧돼지의 대처방안에 대해 염려하는 태연함을   보였다.  아는게 힘이다 라는 격언은 수많이 널린 변수에 얼마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아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손을 높이 들어 두려움을 표시하는   것이고 무지함은 시뻘건 피를 쏟으며 살갗을 파고들 수 있는 바깥세상의 기준으로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태연한 표정으로 비를 피하고 순수한 농담을 나누는 여유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핵무기 안에 실린 탄두보다 만년필에 들어있는 잉크의 힘이   더 크듯이 총알 몇발보다 그저 한데 어울리는 넉넉함이 더 많은 이들을 움직일 수   있음을 알게 된 이방인들은 극단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발을 들인 공간의   푸근함에 순응하게 된다.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입은 과거의 그날들을 잊지 못하며 악을 쌓아갔는데 바람은   푸름은 웃음은 그리고 꽃은 그들에게 믿기지 않은 생활의 행복을 발견하게 해주고   돌아가기를 거부하고픈 동화同化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동화童話는   거기까지다. 이방인들의 나라는 샴쌍둥이같이 닮아 있는 서로를 죽이려는 해괴한 짓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이방인들의 복장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악의 잔여물이었다.   화약냄새가 들이닥치고 나라에 위기의 순간이 다가온다. 갈 수 없는 나라에 발을   들인 죄는 모든 것이 한줌의 재로 소멸된 다음에야 용서의 유무를 가릴 수 있었던 것.   아니다. 이건 악에 세뇌되었던 우리도 용납할 수 없는 일. 이젠 적이 아닌 하나가 되어   처음의 아군과 원래의 적을 맞아 지켜내야 할 일. 그리고 이것은 곧 다시 떠남을   의미 하는 일. 떠나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일. 다시 그곳을 누구도 갈 수 없는 나라로   보존하는 일. 추억을 새기며 죽어가는 일. 웃을 수 있는 일. 마지막 순간에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일. 갈 수 없는 나라와의 안녕. 영혼이라도 다시 조우할 수 있기를.   그 곳은 마주보며 총을 겨눌 일은 없으니까. 그곳에서는 슬프지 않아도 될테니까   그 곳은 혼자가 아닌데도 어느 누구의 제약도 받지 않고 모두가 있음에도 같은 색의   웃음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니까. 꿈을 꾼다면 그 안에서 다시 길을 잃는다면   그때라면 다시 갈 수 있을까. 이런 바람이 욕심이 아니라면 이젠 괜찮아.   그 나라 지켜줄 수 있다면, 꿈을 꿀 수 있다면, 다시 갈 수 있다면 눈을 감아도   웃을 수 있어. 갈 수 없는 나라에 갈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그래도 괜찮다면.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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