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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백승권 |2005.09.12 02:50
조회 2,442 |추천 0

만나지 말아야할 사람들이 있고 들리지 말아야할 웃음소리가 있다. 한침대에 누우면 안될 사람들이 있고 서로 나눠선 안될 말들이 있다. 이런 것들이 무너졌을 때 부서지는 것은 저지른 주체들 뿐만이 아니다. 위험부담을 안고 늘 긴장하며 관계에 빠져드는 저네들은 어느정도 충격에 무의식적인 또는 의식적인 준비를 갖추고들 있겠지만 그것이 안되있는 당연히 그럴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신뢰를 지니고 있는 그들의 절친한 반쪽의 분신들은 단한방에 화염에 휩싸여 어찌할 줄 모르고 허우적 거리게 되는 것이다.

상상이 갈까. 난 하지 못한다. 하지 않으니까. 하면 안되는거고 그게 당연한거니까 그게 정의고 그게 맞는 일이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그건 살인과 다름없고 그건 무서운 일이니까 생기지 말아야 할 일이고 생기면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의 붕괴를 가져오는 일이니까. 안되는건 안되는 거니까. 그건 정말 나쁜 일이니까. 견딜 수 없을테니까 미쳐버릴테니까 넋이 빠지고 정신을 차릴 수 없을 테니까 감당이 안될테니까 살아있는게 잘한 것인지 의문이 들테니까 후회가 될테니까 살아있는 것이 사랑한 것이 그 애틋한 감정들이 단번에 전복되어버릴테니까 내가 사랑한사람이 다른 사람이 사랑한 사람과 사랑하는 일은 아무리 사랑이란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잖아 구제받을 수 없는 '짓'이라고.


아니라고 말해도 아닌 것이 아니고 인정하고 싶지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이것은 꿈이 아닌 여기. 먼곳의 진실과 가까운 곳의 잔혹함. 울어도 소리를 질러도 눈을 던져도 우리가 아닌 그들의 목소리는 남아있고 울리고 지워지지 않고 날카로운 괴물이 되어 살갗을 벗겨낸다. 추억과 함께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정리하라며. 우리를 버리라며. 동질감. 가장 위로받고 싶은 순간, 일탈하고 싶고 도망하곳 싶은 순간, 복수하고 싶은 순간 피어오르는 금지된 감정. 허나 이미 저질러짐에 상처받아버린 지금. 머뭇거려도 마음보다 손이 먼저 내밀어지고 입가에 웃음은 어색하나마 눈물을 잊게 만든다. 당신은 나와 같지만 우리는 '우리'가 되지 말았어야 할 사이. 아얘 스치지도 말았어야 하지만 우리의 탓과 달리 원죄는 우리의 '그들'이 먼저 지었으니까 이렇게, 이런게 복수의 방식이라면 그냥 무거워지지 않을래. 다만 위로받고 더이상 혼자 울고 싶지 않을 뿐이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우리가 미친 것은 아닌지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지만 이미 물음 전에 대답은 나와버린 일. 이젠 떠나도 떠나지 못하고 유리에 부딪쳐가는 눈발처럼 보이지 않은 길만 달려갈 뿐. 앞은 보이지 않아도 중요하지 않아. 그냥 이대로. 따지지 않고 조금 벗어나버린 지금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불륜이던 로맨스이던 금지된 관계이고 허락받지 못한 사랑일지라도 남들의 시선따위는 잠시 잊고 자기 자신만이라도 제자리에 추스려야할 시기가 있다. 둘이면서도 혼자의 위치를 잊지 말아야 하고 우리라 스스로 일컫을 지라도 관계의 끝을 망각해서는 안 될 그런 사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 관계에 몰렸을때 비극은 이미 벗어날 수 없고 상황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꼬이고 꼬여만 간다. 그렇지만 불가항력이라고 믿고 싶은 걸. 단추를 끌르는 손길이 떨리지만 옷깃을 매만지는 숨소리가 점점 더 짙어지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 알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동안 그를 사랑한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데 눈물만 흘린다고 해서 모든 감정이 여과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나도 미쳐보면서 너희들의 기분을 느껴가며 복수하고 싶다고 복수가 아니라도 이렇게라도 날 내버려 두고 싶어. 너희가 니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누워서 눈을 뜨지 못하는 당신이 안스럽지만 이건 내탓이 아니야 당신의, 당신과 당신의 그 사람이 자초란 일이라고. 니가 다 이렇게 만든 일이라고. 나도 내가 왜 이런 상황에 몰려야하는지 모르겠는데.


새로운 사랑은 이전의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사랑이 더이상 원형이 변질되어 이전처럼 품지 못하게 되었음을 인정받을 때 타당성을 얻게 된다. 사랑이 이렇게 논리적인 거였나. 마치 공식처럼 떼어졌다 붙여졌다 할 수 있는. 마음의 움직임은 쉬운 일이 아닌데 메마른 날 날벼락 같은 파장이 둘의 심장을 헝클어 뜨리고 새로운 마주침에 빠져들고 또 갈구하게 만들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변명의 여지는 이로써 성립된다. 아픈 일. 안되는 걸 알면서 서로를 품게 되는 그들의 숨소리는 행복하다. 순백의 진심어린 열정과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상처 입은 후에도 서로를 놓지 못하고 같은 방향으로 차를 몰아간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황폐한 두려움을 지닌채.

배우와 감독에 대한 기대치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대사보다 더 가슴을 흔들리게 하던 조성우의 선율, 그리고 오랜만에 접한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낭만적이지 못한 느낌들이 이렇게 많은 말들을 꺼내게 만든 것 같다. 영화를 그냥 영화로 보지 못하고 '영화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아서 좋은 평은 얻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느 누군가들의 그림자 짙은 적색의 심정은 제대로 울려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위험한 추측을 해본다. 충동적일지라도 가끔은 활짝 열고픈 외출의 문고리를 차마 잡아 두어야할 때가 있는 것이다. 늘 바깥이 환한 것은 아닐테니까. 때로는 빛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더 위태로운 것일 수 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독사과는 충분히 먹음직하기에. 사람들은 알면서도 입을 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불나방을 비웃을 일이 아니다. 타 죽을줄 알면서도 덤벼드는 천박한 날개들. 용서는 무지했을 때만 바랄 수 있는 일. 너희도 그들도, 이미 늦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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