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선화공주는 정말 신라의 공주였을까?

바람 |2005.09.29 14:05
조회 44,145 |추천 0

서동요 재미있게 보는데,

그동안 드라마/영화에 나온 공주들의 이미지와는 다르더라구요.

근데 선화공주가 사실 신라의 공주가 아니라고 하던데요?

 

(1) 선화공주는 신라 진평왕의 딸이다.

▶거짓이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에 따르면 진평왕은 정비인 마야 왕후에게서 두 명의 딸만 얻은 것으로 되어 있다. 첫 딸은 천명 공주(김춘추의 어머니)이고, 둘째 딸은 덕만 공주(선덕여왕)였다. 하지만 선화 공주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마야 왕후가 죽은 뒤에 진평왕은 또 한 명의 왕후를 뒀는데, 승만 왕후이다. 그녀는 아들을 한 명 낳았으나,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그리고 딸을 낳았다는 기록은 없다.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다.

화랑세기에 선화공주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선화 공주가 진평왕의 딸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다. 김대문의 화랑세기가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 때에 쓰여졌다고 하므로, 선화공주가 살았던 시기와 대략 100~130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선화공주의 존재 사실에 대해 잘 몰랐을 가능성이 있다.

 

(2) 백제의 무왕은 신라 진평왕의 사위이다.

▶거짓이다.

무왕이 진평왕의 사위로서 그의 총애에 힘입어 왕위에 올랐다면, 무왕 즉위 이후에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한층 호전되어야 한다. 그런데 무왕이 즉위하자마자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그 이전보다 훨씬 악화되었다. 무왕은 전 병력을 동원하여 무려 13차례에 걸쳐 신라를 공격했고, 심지어는 신라에 속한 성들을 장악하고 그 성주들의 목을 베는 극단적인 상황도 몇 차례 벌어졌다.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서동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진평왕의 사위였으나, 왕위에 오른 후에는 장인-사위 관계가 틀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무조건적으로 장인과 사위관계라고 하여, 백제와 신라가 화평해야 한다는 단정은 잘못된 것이다.

 

(3)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가 아니라 익산지역 토착세력의 딸이다.

▶신빙성이 있다.

불우한 시절을 보내던 무왕이 정국의 중심이 되고 국왕으로 즉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선화공주와 결혼하고 난 다음인데 이는 선화 공주의 집안이 상당한 세력 임을 뜻한다. 이런 사정과 미륵사 창건을 연결시켜 보면 선화공주는 익산지역에 상당한 세력을 가진 토착세력임을 뜻하는 것이 된다. 과거에 공주라는 칭호는 국왕의 딸에게만 쓸 수 있는 용어가 아니었다는 점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4) 결국 '서동요' 설화는 신라인들이 조작한 것이다.

▶신빙성이 있다.

설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내용이 사라지고 덧붙여지는게 보통이지만 아마도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의 적극적인 의지가 개입되었을 것이다. 신라와 백제 사이의 공방이 가장 치열했던 진평왕과 무왕을 장인과 사위로 만들고, 신라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바꾸어 멸망 직전 백제의 중요 지역이었던 익산과 백제 유민들의 마음을 달래려 한 것이다.

 

(5) 의자왕의 친어머니는 선화공주이다.

▶신빙성이 있다.

친아들이다. 의자왕이 태자책봉을 받을 당시(632년)의 연령은 대략 30대 중반일 것으로 여겨지는데,  황제와 귀족간의 권력암투가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의자왕은 많은 견제를 받았었다. 그러나 결국 선화공주의 지지로 태자책봉을 받을수 있었다. 선화공주가 친아들이 아닌데 그토록 숨가쁘게 얽혀있는 권력쟁탈의 정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의자왕을 지지했을리는 없다.

 

(6) 의자왕의 어머니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이다.

▶신빙성이 있다.

백제가 망하는 요인은 내부의 배신이었다. '임좌'라는 친신라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김유신 장군과 내통해서 백제가 망하게 되는데, 결국 백제에는 친신라세력이 존재했었다는 말이 된다. 선화공주가 진평왕의 셋째딸이라면, 당시 신라의 왕위서열이 1위이다. 따라서 동서통일이 된다면 통일된 왕국의 왕으로 의자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아버지는 백제의 왕, 어머니는 신라의 공주) 따라서 당시 망해가는 백제의 귀족까지도 쉽게 친신라경향으로 빠질 수 있었을 것이다. 선화공주가 신라의 공주가 아니라면, 당시 백제 내에 친신라세력이 성장할 이유가 없다.

 

(7) 서동요의 내용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신빙성이 있다.

첫째, 외간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공주를 귀양보낸다는 것 자체부터 설득력이 없다. 과연 어느부모가 (설사 계모 의부라 할지라도) 그런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할 수잇을까?

 

둘째, 그 시기의 백제무왕은 한가하게 신라를 유람하며 사랑놀음이나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당시 백제에서는 위덕왕이 죽자 왕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권쟁탈전이 벌어진다. 그 것은 1년이 멀다하고 왕이 바뀌는 것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무왕은 불과 위덕왕 사 후 3년만에 왕위에 올라 강력한 왕권을 휘두르는데 그가 왕위에 올라 가장 먼저 단행한 것이 신라 침공이었다. 어지러운 시기에 장인이 되는 신라의 도움을 받아도 마땅찮은 터에 산라를 전면공격했다는 것은 그와 신라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었다는 증거이다.

(8) 서동요는 사실은 김유신의 부모의 이야기다. 

▶신빙성이 있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가야파를 대표하는 각간 김무력의 아들이다. 김서현은 만명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만명공주의 어머니 만호태후는 둘의 사랑을 극렬히 반대해서 만명공주가 궁밖에 출입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만명공주는 밤에 몰래 궁궐의 담을 넘어 서현랑과 정을 통하곤했는데 그 소문이 세간에 퍼지면서 아이들의 입에서 노래가 될정도였다.

이 사실을 안 만호태후는 진평왕(만호태후의 아들)에게 대책을 논의했고, 이에 진평왕은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김서현을 변방 만노군의 태수로 발령하여 서라벌을 떠나게한다. 한편 만호태후에 의해 반연금 상태가 된 공주는 그 소식을 듣고 결단을 내린다. 그녀는 암암리에 궁중의 호위무사들을 매수하여 경계를 느슨하게하도록 한 후 마침내 궁궐을 탈출하여 임지로 떠나는 서현을 뒤쫓아 사랑의 보금자리를 차렸으며 김유신을 낳는다.

서동요랑 너무, 너무 비슷하다.

 

(9) 서동요 설화는 후세인들의 착각에 의해서 잘못 해석된 것이다.

▶신빙성이 있다.

백제의 역사는 거의 소멸되고 없다. 유독히 무왕의 사랑놀음만이 구전될리 없다. 삼국통일의 주인공은 신라이고 그 주역은 김유신이다. 그러므로 김유신에 얽힌 갖가지 설화와 일화는 구전에 구전을 통하여 민초들에게 전해졌다. 서동요는 김서현과 만명공주의 사랑이야기가 무왕이라는 단 한 단어 때문에 크게 와전된 것일 수 있다.

출처: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이덕일.이희근 지음)

한권으로 읽는 백제 왕조 실록 무왕편. 박영규 저, 웅진닷컴

추천수0
반대수0
베플닉네임|2005.09.30 03:33
읽기 싫다 너무길다

공감많은 뉴스 연예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