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대중반 대학생이구요, 저보다 두 살 어린 여학생과 2004년에 만나게 되어 1달정도 아주 잠깐 사귀다가 헤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그 애는 그리 이쁜 애도 아니고, 살갑고 여성스러운 애도 아니지만, 그렇게 제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좋은 애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이죠..
집 앞에 살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위치였는데, 불꽃축제도 데려가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공연도 보러가고 해서 호감을 쌓아가다가, 어느날 꽃을 주고 '만나는 데 좀 더 의미를 두고 싶다'는 등의 말로 대쉬했었죠. 그래서 잠깐 사귀었었는데(겨우 1달), 사귈 동안은 저에게 너무나 사랑스럽게 잘하더군요. 그러나 연애에 대한 사고 차이와, 그 여자애가 워낙 바빠서 저에게 신경써주기가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한번 크게 싸웠다가 헤어졌습니다. 그땐 제가 며칠 매달려도 보고 전화도 계속 했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너무나 크게 상처받아 있는 중, 몇 주 후에 제가 교통사고까지 당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문득 그 애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존심 꺾고 문자를 보내봤더랬습니다. 시일이 좀 지나서 보내선지 답이 오고, 걱정하는 말을 했지만, 와주진 않았습니다. 저는 자른 일에 정신을 쏟아 그 애를 잊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군요. 저도 너댓 번 어설프게 여자를 만나 보긴 했지만, 아무에게도 미련이 없는데, 오직 걔만 8개월이 지나도록 끝까지 생각났습니다.
저는 올해 7월쯤부터 다시 연락을 시도해보았습니다. 다행히(?)도 반갑게 받아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예전처럼 만나서 밥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고 제가 드라이브도 시켜 주고, 어깨가 아프다고 해서 제가 어느 날 약속을 잡아 집 앞 공원에서 어깨도 주물러 주고 했습니다. 사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애가 저에게 먼저 전화나 문자를 주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지만, 일방적으로 제가 먼저 전화하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으로서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별로 섭섭해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그렇게 좀 자주 만난 것도 다 제가 먼저 말해서였죠. 제가 연락을 끊어보면 걔는 나를 궁금해 할 것 같지도 않아서 항상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 것은, 밥먹을 때 마다 거의 자기가 사는 거였습니다. 제가 밥을 사 주면, 후식은 걔가 사고, 그런식이었습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그건 그 애가 아직 대학생인 제 호주머니를 생각하는 배려라고도, 너한테 신세지지 않겠다라는 나에대한 무관심의 표시라고도, 최소한 나를 이용해 먹는 애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의 증명이라고도 생각되었지만, 더 크게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전화를 하면 세시간씩 즐겁게 통화하고, 피곤해도 전화를 받고, 문자를 보내면 자주 즐겁게 받아주는 답을 보내거나 하루 10번씩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누가 봐도 저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마음은 있는 상태로 분석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렇게 3개월이 지난 후, 그 애가 너무 보고싶다던 공연을 보여주려고 엄청나게 비싼 공연표를 질렀습니다. 솔직히 저는 절대 보러갈 일 없는 공연이었지만, 그 애가 좋아하는 거면 뭐든지 해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좋은 책 하나를 사서 그 속에 표를 끼워서 건네 주었고, 무진장 비싼 표라는 것을 알면서 은쾌히 같이 가자고 하며,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그 애는 너무나 좋아했고,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제가 차로 집 앞에까지 바래다주고, 집 앞에서 1년전처럼 다시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지금까지의 누가봐도 긍정적일 상황과는 전혀 딴 대답을 하는 겁니다. 지금은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다, 졸업연주회(그 애는 음대생입니다)를 마치면 중간 기말고사를 거쳐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야하며, 하고싶은 일들이 너무 많고 해야하는 일들이 너무 많고 바빠서 다시 연애를 해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써줄 자신이 없다는 겁니다. 그 애는 바로 거절하지는 않았고, 잠깐 가만히 있다가 '좀 보류해보자 답을 나중에 주면 안되겠냐'는 말을 하는 그 애에게 되도록이면 오늘 그 얘기를 듣고싶다고 잡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더 부담스럽게 해서 그 애의 마음을 더 나쁜 쪽으로굳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쁘다는 말은 흔히 거절할 때 쓰는 변명이기도 하고 또한 연애를 함에 있어 바빠서 사람을 못만난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그래서 제가 싫은 것은 아니고, 누가 자기에게 오더라도 다만 지금 애인을 만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의상의 변명인지, 정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하지만, 저는 그 애를 잘 알기에, 오히려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애는 정말 실제로 너무나 바쁜 애였고, 이번 공연도 없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간 것이었으니까요. (그 애는 바로다음날 오전에 또 교양과목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애가 내가 아니라 몇년 전 1년 사귄 오랜 남친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서로 너무 좋아했는데도 불구하고도 이와 같은 이유로 헤어졌다고 저에게 얘기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비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얘기가 이렇게까지 가고 만 상태에서 저는 '나한테 기회를 줘 봐라. 나를 만나는 것 때문에 그게 부담이 되고 네가 일에 지장이 된다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면 그때 나는 너를 깨끗히 놓아주겠다.'고 이야기해도 그 애는 안되겠다고 하며 제가 준 꽃은 결국 돌려주면서 '자존심을 나같은 애에게 던지지 말아라. 그냥 좋은 오빠동생으로 지내자. 이런 일로 더 이상 오빠에게 상처주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집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저는 같은 애에게 정말 큰 상처를 두번씩이나 받고, 너무 괴로워했습니다. 그 애는 모를 겁니다. '바쁜데 늦게까지 불러세워 그런 말 해서 미안하다 그냥 친구로 지내자'는 문자를 보내보았고, 답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평소 들어오지도 않던 메신저에 올만에 들어와있길래 제가 또 말을 걸었습니다. '어제는 미안했다. 내가 또 널 부담스럽게 했구나. 시험은 잘 봤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오빠가 미안할 일은 없는듯..', '나도 너무 경황이 없었다. 공연보여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도 못했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밥을 굶다가 갑자기 먹어서 속이 쓰리다는둥, 몸은 아픈데 레포트는 많다는둥, 지금 레포트 쓰고 있다는둥의 일상적인 말을 해왔습니다. 저는 계속 말하면 또 방해될 거같아서, 또 서먹할 거같아서 '그럼 나중에 얘기하자^^'하고 대화창을 나왔습니다. 그렇게 하고 연락을 안한지 오늘이 사흘쨉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좋은 친구로 고백하기전처럼 가다가 곧 있을 졸업연주에 가서 축하해주면서 다음 기회를 노려볼 가치가 있을까요.. 아니면 이 애와는 잘 될 수 없으니 완전히 잊어버리고 다른 더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할까요..
그리고 이 애는 저한테 마음이 정말 있긴 했던 걸까요, 아니면 저를 진짜로 이용해먹은 걸까요, 아니면 제가 좋다니까 그냥 만나준 것일 뿐일까요.. 옛날에 잠깐이나마 사귀었던 남자친구에게 이럴 수 있는걸까요? 제가 계속 부담없이 잘하면 돌아올 수도 있는 걸까요? 도와주세요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