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직장에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원래 임시직 비슷하게 고용되었던 처지라 만류하는
사람도 없었다.
남은 월급을 정산한 후 직장을 나왔다.
적성에 맞는 곳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구설수에
오르기가 싫었다.
서영과의 생활이 자리를 잡은 후에 새 직장을
잡을 결심이었다.
며칠 후 주말을 이용해 서영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미래는 외가에 놀러 가 있었다.
그전까지 한 번도 집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고급 주상 복합 건물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집 안을
들어가보자 머리가 멍해졌다.
50여 평이 넘는 공간은 고급 수입 가구와 장식품으로
꾸며져 있었다.
신발장은 여러 개 층으로 나뉘어져 움직여지게 되어 있는데
어림잡아도 구두가 30여 켤레는 넘는 듯 하다.
얼핏 브랜드를 살펴보니 발리나 테스토니, 페레가모등 이탈리아
산 구두가 대부분이다,
“이 신발장 구두만으로도 내 집 세간들을 다 사고도 남겠다.”
내 말에 서영은 담담하게 말한다.
“다 예전부터 있던 것들이야. 요즘에 새로 산 건 아무것도 없어.”
전 남편이 사준거냐는 질문이 마음 속에서 맴돌았다.
그렇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복도식 마루를 지나가자 닫아놓지 않은 방문을 통해 드레스 룸처럼
보이는 방이 있어 들어가 본다.
샤넬 정장이나 크리스찬 디오르 같은 내가 알만한 브랜드도 몇 벌이나
눈에 띈다.
방 한쪽 선반에는 가죽 백이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구경을 하느라고 내 뒤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몰랐다.
서영이 뒤에서 나를 껴안는다.
“지현 씨..........뭘 그렇게 보는거야?”
나는 둘러댄다.
“이 넓은 집 청소하려면 힘들지 않아? 일하는 사람을 써?”
서영은 고개를 젓는다.
“아니. 평소에 내가 그냥 다 청소해. 한달에 한번 정도 대청소를 하거나 할때만
파출부 아주머니를 불러...........근데 왜?”
“아니........그냥.”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랜다.
내가 알고 있던 서영과 다른 느낌이 난다.
이제껏 내게 서영은 그저 연약하고 눈물을 잘 흘리는
여린 여인일 뿐이었는데...............
오히려 요즘은 나보다 더 과단성 있어 보인다.
아주 짧은 순간 내 등 뒤에 붙어 있는 서영의 몸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