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를 특징짓는 것은 바로 흰색이다.
순결한 신부를 상징하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는 관습은, 그러나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19세기 이전에는 대부분 신부들이 가장 좋은 드레스나 새로 지은 드레스를 입었다. 우리 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문화권에서 신부복은 가장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이 등장하는 옷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흰색 웨딩드레스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물론 고대 이집트에서는 레이어드 형태의 흰색 린넨 드레스를 입고 순결의 표시로 백합 화환을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고대 로마에서는 신부가 노란색 예복을 입고 불꽃 빛깔의 노란색 베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한다. 신부의 색깔로서 흰색이 등장한 것은11세기 이후이다. 1406년 영국의 필리파 공주가 에릭 왕자와 결혼하기 위해 덴마크로 왔을 때 그녀의 신부복이 흰색 실크가운이었다는 기록이 공식적인 첫 묘사다. 1558년 스코틀랜드의 메어리 여왕은 프랑스로 시집갈 때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당시 프랑스의 왕실에서는 흰색이 장례의 색이었다고 한다.
16세기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신부의 처녀성을 강조, 혹은 증명하기 위해 결혼식 때 흰옷을 입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이유의 노골적 공개성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오늘날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믿음들이 쉽게 유포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부정한 신부가 흰색을 입으면 그 색이 편한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이 풍습은 정착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813년 유명한 프랑스 잡지 "주르날 데 담"에 흰색 웨딩가운과 베일을 담은 그림이 최초로 실린 후 오늘날 웨딩드레스의 기본 스타일이 결정되었고, 1884년 빅토리아 여왕이 흰색 공단에 오렌지꽃으로 장식된 웨딩 드레스를 입은 이후 흰색은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9세기에는 각종 여성 잡지와 유명인사들의 결혼식에 흰색 웨0딩드레스가 자주 등장하면서 패션으로 대중화되어 오늘날에는 거의 모드 웨딩드레스가 흰색이 되었다. 베일 역시 순결과 관련된 풍습에서 시작된 것이다. 순결한 신부는 꽃을 엮어 만든 화관을 썼지만 부정이 발견된 신부는 베일을 써야 했다. 부정의 대상이 신랑일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에는 애초의 이런 의미는 지워지고 아름다움만을 위해 베일을 사용하고 있다. 결혼식 직전까지 신부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베일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웨딩드레스에 빠질 수 없는 부케는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원래는 곡식의 열매를 묶은 곡물다발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꽃다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신랑이 결혼식 날 아침에 들꽃을 따다 꽃다발을 만들어 신부에게 선물하면 신부는 그 가운데 한 송이를 빼내어 신랑의 가슴을 장식했다고 한다.
이것이 신랑의 꽃인 부토니어가 된 것. 결혼식이 끝난 후 신부가 부케를 뒤로 던지는 풍습은 이 부케를 받는 신부의 친구가 곧 결혼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는 믿음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