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화장대 거울에 반쯤 열리고 있는 방문이 비친다.
순간적으로 문 쪽으로 몸을 돌린다.
손을 등 뒤로 돌려 목걸이를 원래 있던 자리에
살짝 떨어뜨린다.
학생시절 운동선수였던 덕에 이런 반사 신경이 남보다
빠른 편이다.
그와 동시에 서영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하체만 타월로 가린 채 화장대에 엉거주춤하게 기대고
있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내 입에서 부자연스러운 발음이 흘러나온다.
“아.........난....저기.......로션을 찾으려고...........”
서영은 말없이 몇 초간 나를 바라본다.
이윽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찾을까봐 욕실에 미리 갖다 놓았었는데.”
“아, 그랬었구나..........못봤었어.......”
나는 슬쩍 서영의 옆을 지나 방문 쪽으로 다가간다.
“옷 입어야 하니까.........나갈께.”
방문을 나서다가 흘낏 뒤를 돌아본다.
서영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한다.
“지현 씨 속옷을 사왔어......... 방에 놓았으니까 갈아입어.”
내가 잠잤던 방으로 돌아왔다. 서영이 두고 간 듯한
새 속옷과 양말이 단정히 접혀져 놓여 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서영의 비밀을 몰래 훔쳐 본 탓에 마음이 불편하다.
왠지 모르게 그 사진에 대해 물어볼 수가 없다.
털어놓고 물어보고 싶은데 가슴 속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자꾸 제동을 건다.
서영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무언으로 나를 추궁하는 것 같다.
서영과 눈이 마주치면 그녀가 내 마음 속을 모두 들여다 볼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들자 더더욱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지현 씨. 아까 왜 그렇게 놀랐어?”
“어?...........그게 무슨 말이야?”
서영은 내 반문에 답하지 않고 한숨을 쉰다.
뭔가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현 씨, 우리가 만난지 얼마나 됐는지 알아?”
“글쎄...한 일년 쯤 되나?”
“맞았어 이제 보름 만 더 있으면 우리가 주차장에서
만난 지 딱 일년이 되는 날이야.”
나는 정확한 날짜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좀 미안해진다.
“응. 그랬구나............그런데 갑자기 왜?”
“지현 씨, 실은 나 어디 가야할 데가 있어.”
“무슨 얘기야?”
“내가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가야하는 곳이야.”
“..........”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바로 그날이야.”
“도대체 어딜 간다는 거야?”
“.................미국.”
갑작스런 얘기에 당황해 다급하게 되묻는다.
“미국? 갑자기 거길 왜 간다는 거야?”
“미안해......... 일년에 한 번씩은 가야해. 실은 지현 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바로 며칠 전에 다녀온 후였어.”
“얼마나 있다가 오는데?”
“일주일 안에는 돌아와..........”
“미래는?”
“외가댁에 잠시 맡길 거야.”
“미래도 일주일이나 놔두고 갈만큼 중요한 일이야?”
그녀가 곁에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허전해졌다.
서영은 잠시 아무 말이 없다.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난다.
거실로 나가 창가에 다가간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뒤에 다가가 선다.
서영은 시선을 바깥에 고정한 채 나지막히 말했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지난 추억들이 모두 그곳에 잠들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