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여름 디카가 생긴 이후로 사진이 더 좋아졌습니다. 성능대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산 것을 만족해하며 부지런히 가방안에 넣고 다니며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지우고 또 찍고 지우고 또 찍고 어느새 10000여장 가까이 찍은 듯 하네요. 굳이 전문가라는 것을 밝히지 않아도 충분히 흔들리고 객관적인 시선으로는 한없이 모자람 많은 이미지들이었지만, 즐거웠어요.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채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져 책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조금은 멀리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네요. 참 써내는 것이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글로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이미지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양 조금 더 사진을 만지는 일에 골똘해 있는 요즘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여느 이들의 느낌과는 '다름'을 찾아 적어내려가는 일이 그 한없이 좋아해 마지 않았던 과정이 요즘처럼 더디게 느껴진 적도 드물었어요. 죄책감이 쌓이더군요. 펜을 잡아야 하는데 차가운 카메라가 손에서 떨어지질 않았어요. 집중할 새로운 꺼리를 찾은 일은 무척 흥미로운 것들 중에 하나였지만 두려웠습니다. 쓰는 법이 지워질까봐 난 잘 쓰지 못하는데 난 아직 맞춤법도 잘 못맞추고 오타도 빈번한데 어색한 부분도 많고 소통방식의 오류도 많은데 쉬어도 될만큼 쌓아 둔 것도 바닥날 만한 재능을 지녔던 것도 아닌데.바보같이 조바심만 내가면서 단어하나 덜어내기를 머뭇거렸습니다. 멈춘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반증인데 얼마나 잃어가고 있는지. 아직 난 멀었는데 벌써 이래서는 안되는데... 그러면서도 살아가는 이외의 여정에 묻혀 금새 잊고 또 상기하고 반복과 떨림 속에서 잊지 못했습니다. 써야만 해.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많은데. 사진으로 대신하지 못할 느낌표와 쉼표들이 아직 가득한데.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 글귀가 가끔씩 불에 붙은 듯 눈가를 스칠 때가 있습니다. 얼마전이었죠. "생각하는 데로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된다." 삶이 힘들다는 핑계를 방패삼아 생각을 게을리 하면 이미 지는 게임에서 루저로 남기가 싫어서 조금 더 이를 악 물어보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은 이처럼 정말 아무렇지 않은 동기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불끈 주먹을 쥐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번쯤 재가동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저는 이렇듯 돌아왔어요. 정말 쓰고 싶었는데 얼마나 망설였는지 여전히 소심하고 여전히 심장이 작아질까봐 걱정이 되지만 기분이 나아집니다. 용기라는 단어까지 꺼내지 않아도 '다시' 라는 어휘 정도는 첨가해도 무난할 듯 싶군요. 저는 쓰고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발목이 부서지는 상상보다 손가락이 날아가는 악몽이 더 많은 땀을 흘리게 하죠. 여유는 점점 좁아가지만 이런 느낌 정도는 고이 남겨두고 싶습니다. 할 말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직 살 날만큼이나 생각을 꺼내어 널리 풀어 헤칠날도 적잖이 남아있다고 여겨지기에 숨막히는 일상속에 한숨과 피곤함이 범벅으로 심신을 꽁꽁 묶어 놓아도 그쳐서는 안되는 거겠죠. 이것만큼 내가 살아있음을 마땅히 증명해줄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으니. 내 삶의 두번째로 남겨두겠습니다.
첫번째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토해내는' 작업이 길어져 그동안 얼마나 목이 말랐었는지 스스로를 빤히 쳐다보는 기분이 듭니다. 여자친구에 대한. 그동안 귀를 막고 싶을 정도로 들어주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쓸수 있게 해주는 무한의 배터리 같은 역활을 하고 있는 고마움, 그자체입니다. 지난 화요일 1800일이었습니다. 늘 그렇듯 주말에 빼꼼히 얼굴만 마주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지만 적지 않은 쉽지 않은 나날들에 대한 기념은 축하한다는 말을 어색히 붙여주지 않아도 충분히 깊고 짙은 감정을 지니게 해줬습니다. 좋은 사람, 좋은 날들. 오랜만에 극장을 갔습니다. 선택의 폭이 좁았지만 정겨운 배우들의 지명도를 따라 영화를 봤습니다. 사랑하고 있지만 아직은 쓰지 못하죠. '나의 결혼원정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이뤄지지 말라는 법은 없음을 따뜻하고 풋풋하게 보여주는 기분좋아지는 영상과 대사들 또 미운 사람 하나 없는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아직은 '아직'이라는 말로 달랠 수 밖에 없지만 저도 하고 싶습니다. 결혼. 그래서 쓰고 싶습니다. 결혼 원정기. 언젠가는 나도 쓸 수 있겠죠. 언젠가는 저도 마지막 장면처럼 웃을 수 있겠죠. 길고 멀고 쉽지 않았지만 행복했던 순간과 여정들. 한사람을 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