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 둘..스물이 갓 넘어 처음 그를 만났고, 스물셋부터 사귀기를 5년여..그리고 결혼하지 만4년..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도 하나 얻었다.
어릴적 흔히 말하는 결손가정에서 자라 화목함이나 따뜻함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살아온 탓에 연애나 결혼에 대해서도 난 무척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사람에게서 사랑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애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시아버지의 부도로 사귀는 내내 남편의 상황은 무척이나 어려웠다. 내가 먼저 졸업하여 직장생활을 하면서 데이트를 하고 남편의 용돈, 책값, 학원비..를 충당해야 했으므로 사실상 수중에 목돈을 만들지 못한 채 그렇게 남편이 졸업하고 취업하던 해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한 후 1년여의 본가생활..생각보다 너무나 힘들었다. 경제적상황은 내가 짐작했던 것 그 이상이었고, 시누이 둘에 집안의 장손인 남편, 그 중 시누 한명과 시부모님, 남편, 임신한 나 이렇게 신혼생활이시작되었다. 식구들과의 갈등, 1년에 10번가까이 되는 제사, 마을버스 없이는 슈퍼에 가기도 힘든 집의 조그마한 방안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설상가상 아이를 낳고 건강이 안좋아 고생을 하던 중 내 수중에 있던 얼마를 털어 단촐한 빌라에 세를 얻어 분가를 하게 되었다.
분가후에도 여전히 시어머님과 시누들과의 갈등에서 자유롭진 못했지만, 정말 이제부터 나의 신혼이 시작되겠구나, 내가 이렇게 편안해져도 될까 싶을 정도로..소박하지만 행복했던 시간이 딱 한달..아이 백일무렵 어머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그렇게 다시 힘든 시간이 시작되었다.
몇번의 수술을 받으시며 어머니는 의식을 잃어가셨고 처음 6개월간은 거의 매일같이 병원에 출퇴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몸상태가 많이 안좋았지만 위독하신 어머님에 비하면 말할 수도 없는 것..결혼하기 전보다 7키로가 빠지며 하혈과 스트레스성 두통, 악관절통증까지..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하며 노력했지만 시누이들과의 갈등과 어머님이 쓰러지시면서 모두 내 차지가 되어버린 집안 대소사때문에 미칠것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제사나 명절때면..시댁 작은 어머님과 사촌숙모님도 여러분이지만 늘 준비는 나 혼자의 몫이다. 친정새엄마와 함께 청량리시장을 돌며 시장을 봐서 혼자 음식준비를 해놓으면 20명이 넘는 식구들이 당일날 와서 밥만 먹고 떠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도와주지 않는 혼자만의 행사..시누이가 둘이나 있지만 지금껏 한번을 도와준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때는 대단하셨던 집안의 어른인 아버님의 자존심을 생각하여 참고 있지만, 이젠 남편마저도 점점 고마움을 잊어가는 것만 같다.
그래도 적응하기 마련이라고 3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름 인내하며 한 가정의 아내, 엄마, 장손며느리로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조금씩 저축을 하여 이사도 한번 하였고(여전히 셋방을 면치못하고 있지만..^^), 직장생활도 다시 시작하였고, 바쁜 와중에도 주말이 되면 아버님과 어머님을 번갈아 찾으며 자식된 도리도 열심히 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요즘..정말 많이 힘이 들고 괴롭다.
언제부터인가 남편과 점점 멀어지고 이해와 배려보다는 아집과 이기심으로 서로에게 상처만을 내고 있다. 그가 본성이 착한사람이라는 건 알고있다. 사실 그 점 하나만 보고 이 사람을 선택한 거니까..하지만 집안의 장손으로 항상 대우만 받고 자라서인지 근본적으로 아내의 어려움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직장일에 집안일에 육아에, 며느리 노릇에, 또 친정에서도 막내이지만 변변하게 살지 못하고 마음씀씀이마저 철없는 언니 오빠탓에 늘 맞이 역할을 해야하는 나...인생이 이리도 버거울 수 있나 싶다.
남편에게 말 한마디라도 위로받고 싶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싶은데 늘 제자리걸음..똑같은 그..배려랄까 이해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버님을 빼어닮아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예전에 없던 주사도 생겼다. 예전 아버님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철없다 여겨질 정도로 가정과 아이에게 소홀하지만 자신 부모님에게만은 각별하다. 효자임을 탓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님께는 그리 잘하면서 힘들게 살고있는 아내가 원하는 것 하나 들어주지 않는 그가 원망스럽다.
평일엔 힘들게 직장생활하고 휴일엔 밀린 집안일에 아버님이나 어머님 찾아뵙고 오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때론 삶이 너무나 벅차고 고되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늘 마음고생..한번이라도 편안한 날을 보낸 적이 없지 싶다.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고 도움받고 싶은데 그저 배부르고 잠잘자면 끝이지 여기고, 예전 자신이 보아온 부모님모습 그대로 살아가길 원하는 그와 얘길 하다보면 커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 가슴이 답답해진다. 술마시고 연락없이 새벽에 귀가하거나 심지어는 외박하는 일도 여러번, 제발 마음고생만 시키지 말라고 하는 내 외침은 늘 허공에서 메아리친다.
알고있다. 남편이 아니라 누구라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내 고통을 십분 이해할 수 없겠지. 친정에서나 시댁에서나 늘 편할 수 없는 나란 존재..단지 그가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고 보듬어주길 바랄뿐인데, 늘 회사때문에 힘들다하고 나의 고통을 알려하지 않는 그가 이제는 너무나 원망스럽다. 가장 절망스러운 건 남편이 의도적으로 도와주지 않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라온 환경, 가정을 아낄 줄 모르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지금껏 그를 위한답시고 내가 해온 모든것들이 화살이 되어 내게 꽂히는 심정이다. 늘 집안에서 받기만 하고 부족함이 없이 자랐던 그,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만나 내가 모든 걸 참고 대신해주었기 때문에 정작 이젠 너무나 당연시여기는 것만 같다.
그와 만나는 시간동안 때론 겁이 나 그의 곁을 떠나려고도 해보았지만 사람의 정이란 것, 신의란 것을 저버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모두가 말리던 가시밭길 속으로 걸어들어오면서 그래도 그 끝에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고 있을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왔지만, 이젠 너무나 힘이 드는 것 같다.
가장 겁이 나는 건.. 경제적인 고통이나 육체적인 힘듦도 그 무엇도 아닌, 세상 유일한 나의 버팀목이었던 남편에게 실망하고 또 실망하다못해 포기해버리지는 않을까...내가 그 사람을..그리고 나 자신을 포기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가 변한 것일까..아님 내가 변한 것일까..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겠지.
평탄치 않은 인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버둥거리는 슬픈 내 자신의 문제일 뿐이겠지만..
누군가의 말처럼..언젠가 내 인생에도 봄날이 올런지...누군가 나에게 손 내밀며..너 많이 힘들지..그래도 참 대견하다..조금만 참자..참자.. 하면 금새라도 눈물이 후두둑 내릴 것만 같다.
하지만..지금 내 곁엔 손 내밀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슬프고..한없이 외롭기만하다..
그저그런 나의 넋두리..넋두리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