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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기술

백승권 |2006.01.18 16:05
조회 2,031 |추천 0

 

맞는 것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얼굴 곳곳에 피멍이 들고 다리를 절뚝거리고 입가에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고 항상 긴징하고 있는 눈빛. 그런 것을 마치 생활의 일부처럼 여겨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폭력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저항의 여력을 잃고 그것을 당연시하게 받이들이는 습관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전체의 균열을 부른다. 그것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게 매스미디어이고 엔터테인먼트지만 판타지로 포장된 피와 살점이 튀고 뼈가 꺾여지는 상황이 스크린을 뚫고 나온다고 생각하면 떨리는 것은 심장뿐이 아닐 것이다. 커지는 것은 동공 뿐이 아닐 것이다.

 

일탈과 모험이 적었던 학창시절을 가끔 멋적게 여긴 적이 있었다. 나도 참 재미없게 살았네 라며 못내 아쉬웠던 과거가 종종 떠올랐었다. 꽃을 꼽지 않아도 미남이란 칭호를 달고 다니는 연예인들의 전 그냥 얌전하고 소심한 학생이었어요 라는 방송용 멘트를 접하며 나도 저랬었는데.. 라고 공감하다가 현재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는 자신을 구박하곤 했다. 또래의 나이대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방송국 스튜디오에 난 무릎 늘어난 추리닝으로 자취방에 있었으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심심하기 그지 없게만 느껴졌던 필자의 과거가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진 것은 눈과 주먹을 어디에 둘지 모르게 하는 화면가득한 폭력 때문이었다. 혹자는 근육질 다부지게 잡힌 헐리우드 스타의 주먹질에 저건 범죄가 아니라 예술이야 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싸움의 기술' 안엔 아트는 멀고 실제는 가까운 날 것의 먼지들로 자욱했다. 바람부는 부둣가에서 스트리트 파이터의 류, 켄처럼 싸우는 주인공은 온데간데 없고 그곳엔 이유없는 욕설들과 억울한 짓눌림만이, 가해자의 근육보다는 피해자의 말못하는 착잡함만이 가득했다.

 

"넌 많이 맞아봐서 상대가 어디를 때릴지를 알아"

 

넌 전쟁터에서 부상을 많이 당해봐서 총알이 어디에서 날아오는 지 알아 라는 말과 어디가 다른지 묻고 싶은 다구리 과목 쪽집게 과외선생의 명대사 였다. 이제 그만 초사이언으로 변신할 때가 됬는데..라는 기대를 져버리고 엔딩크레디트 올라가기 5분전까지 정말 죽도록 맞는 주인공에게는 도움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주인공보다 더 많이 맞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불씨에 물엿을 붓는 장면이었으리라. 기술 좀 배우려고 왕의 동성애도 안보고 극장을 찾았건만 맞아본 애들은 때리는 데를 알아라니. 모든 주먹과 발길질을 눈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는게 아닐텐데 말이다.

 

안싸우고 이기는게 진짜 기술이다라는 말이 얼마나 당연한 지는 것은 문맹율이 1%에도 못미치는 국내 실정을 비교할 때 만 5세이상의 학습력을 지닌 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외국대학수준의 수학문제들을 고등학교때 정규과목으로 마스터하는 나라에서 저런 소리들은 삼국지나 손자병법을 일부러 들추지 않아도 주먹 쥘 만한 나이면 다 인지하고 있을텐데. 과외선생이 정말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과거와 허물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겠지. 모든 배움에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할테니까. 어제 배웠다고 오늘 써 먹을 수 있는 지식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 말이다.

 

여자도 다르진 않겠지만 남자가 사회화 되어가는 수많은 과정 중에는 모델들이 하나둘 세워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기준 삼아 현재 위치를 정립하고 그와 닮아가기 위해 준비할 것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주인공 소년의 모델은 아버지나이의 형뻘은 되보이는 도인같은 사람이였고 그가 지니고 있던 것은 자신이 그렇게도 염원하던 '기술'이었다. 맞기 싫어서 배우고 싶다고 입 열었지만 사실 비오는 날 먼지나게 패고 싶어요 내가 당한만큼 그 새끼들한테도 똑같이 갚아주고 싶어요 하는 말이 백번도 더 치밀었을 것이다.

 

과외선생은 엔딩에 이르러 싸움의 기술이 끝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손수 몸으로 때워가며 보여준다. 수천년전에 기록된 성경에는 복수에 대한 비유를 들어가며 죄는 죄를 낳는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어미를 잃은 강아지는 자신의 어미를 죽인 개의 새끼를 물어죽이기 마련이다, 옭고 바른 것보다 순환이 훨씬 원활한 폭력의 연쇄반응은 어떤 기술의 승자도 없이 죽은 자와 불구된 자를 남길 뿐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을지 모르겠지만 초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이유 없는 구타와 쉼없는 욕설 속에서 건져내고 싶었던 것은 이 하나였다. 폭력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것. 그것의 의도가 선과 악 어떤 것을 지니고 있더라도 피를 흘리는 자는 반드시 생긴다는 점이다. 과외선생은 이미 알고 있었을테고 그 앎의 과정이 지독했기에 은둔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자신의 인생을 이젠 뒤돌아볼 시간조차 없게된 것에 회한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데이터 수집기관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사람이 일생동안 치명타에 가까운 물리적인 폭력을 겪을 확률은 평균적으로 40년에 한번꼴이란다. 주먹을 쥐는 법과 발길질의 기술을 익힌다면 그 언젠가가 될지도 모를 아얘 안올지도 모를 순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기술을 익힌 후에 그러한 순간만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망상으로 가득찬 기대감 속에 살 수도 있다.

 

무엇이든 한가지에 학습욕구를 불태우고 매달리는 것은 분명 좋은 모습이지만 그렇게 획득한 것이 긍정적인 면은 커녕 상대방의 피와 자책감, 후회와 악몽만 불러온다면 애초 시작하지 않음이 낫다. 세상엔 배울게 많다. 맞지 않는 법이나 싸우는 법에 매달려 궁상을 떠는 것보다 폭력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공부해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알려주는 편이 누구에게든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죽은 지식이라고들 말하지만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엔 의외로 많다. 싸움도 마찬가지다. 인중에 동전 꽃는 법을 연습하느니 그 시간에 차라리 연애의 기술을 배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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